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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공연.담배.부동산중개..18세기 한양풍경

송고시간2013-03-05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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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공연.담배.부동산중개..18세기 한양풍경
원숭이공연.담배.부동산중개..18세기 한양풍경

(서울=연합뉴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박제가(1750-1805)가 정조의 명을 받아 지은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박제가는 젊은이들이 매사냥하는 장면, 애완용 집비둘기를 수십 종 을 기르고 새장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 등 18세기 당시 한양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사진은 청나라 학자가 간행한 '정유고략'에 실린 박제가의 '성시전도시'. '성시전도시'를 발굴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박제가 작품이 중국에까지 널리 읽힌 증거"라고 말했다. 2013.3.5 << 문화부 기사 참조, 미국 버클리대학 소장. 안 교수 제공 >>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청년들 한 무리가 떼 지어 몰려갈 때/팔뚝 위 보라매는 털과 부리 으스댄다./집비둘기 이름만도 수십 종을 넘기니/화려한 새장들은 바람에 흔들흔들./오리 거위 한가롭게 제멋대로 쪼아대는/물가 주막에는 술지게미 산더밀세./눈먼 장님 호통치나 아이놈들 깔깔대고/건널까 말까할 때 다리는 벌써 기우뚱./ 개백정이 옷 갈아 입으면 사람들은 몰라봐도/개는 쫓아가 짖어대며 성을 내며 노려본다./우스워라, 급제 알리는 남궁(南宮)의 사령(使令)아!/네게 뭐가 급하다고 옷을 거의 벗었느냐?"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박제가(1750-1805)가 정조의 명을 받아 지은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중 일부다.

박제가의 시를 '말할 줄 아는 그림'(解語畵)이라고 했던 정조의 평가처럼 박제가의 시는 18세기 당시 한양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젊은이들이 매사냥하는 장면, 애완용 집비둘기를 수십 종 기르고 새장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 주막 아래 오리와 거위가 한가롭게 물에 떠있는 장면….

박제가의 시 등 '성시전도시'를 발굴해 소개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이러한 장면은 당시의 사회현실, 취미생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면서 "박제가는 장면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평했다.

다리를 건너려는 눈먼 장님을 놀리는 아이들, 사람을 향해 짓는 개, 웃통을 벗어 던진 채 내달리는 사령(使令)의 모습 등 18세기 한양의 풍경이 마치 눈앞에서 보듯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안 교수는 박제가가 시에서 "제왕적 권위의 상징으로서 권위적인 한양보다는 인구가 조밀하고 물자가 풍부하고 활력이 넘치는 한양", 한양이라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과 인정세태"를 표현했다고 분석했다.

박제가는 광대, 사당패, 원숭이 공연 등 조선 후기 공연 문화도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다.

실학자 박제가가 묘사한 18세기 한양의 풍경은
실학자 박제가가 묘사한 18세기 한양의 풍경은

실학자 박제가가 묘사한 18세기 한양의 풍경은
(서울=연합뉴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박제가(1750-1805)는 정조의 명을 받아 18세기 조선의 수도 한양의 풍경과 풍물을 생생히 묘사한 시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를 지었다. 사진은 옥로산방(玉露山房)이란 원고용지에 필사한 박제가의 시집 권3에 실린 '성시전도시'. 2013.3.5 << 문화부 기사 참조, 단국대 퇴계기념도서관 연민문고 소장. 안 교수 제공 >>
photo@yna.co.kr

"상품 거래 마쳤으니 연희(演戱)를 청해볼까?/배우들 옷차림이 해괴하고 망측하다./동방의 장대타기는 천하에 없는 거라/줄타기와 공중제비 하며 거미처럼 매달렸다./한 곳에선 꼭두각시 무대에 올라오자/동방에 온 칙사(勅使)가 손뼉을 친다./원숭이는 아녀자를 깜짝 놀라게 해/사람이 시키는 대로 절도 하고 꿇어도 앉네."

안 교수는 "박제가야말로 한양의 새로운 이미지를 잘 표현해냈다"면서 "정조는 박제가의 시를 차석(2등)으로 평가했지만 최우수작은 박제가의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신관호, 신택권이 지은 '성시전도시' 작품도 한양의 내밀한 풍경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가련타! 꽃게 파는 인천 아낙네는/봉두난발 대광주리를 빗겨 안고/가련타! 숯 파는 사릉(思陵) 사람은/비쩍 마른 말 끌고 나뭇짐 지고 걷기에 지쳤구나./가련타! 광통교 색주가(色酒家)는/별자(別字) 쓴 등을 걸고 탁자를 늘어놓았네./가련타! 구리개 약 파는 늙은이는/망건 쓰고 어슬렁어슬렁 주렴 안에 머무네."(신관호의 시 中)

"동방의 물화(物貨)로서 제일로 치는 남초(南草)는/진안(鎭安)과 삼등(三登) 지역에서 흘러온다./고을마다 마을마다 절초전(切草廛)이 우두머리라/시장의 범상한 가게야 뉘 감히 맞서랴?/위로는 정승판서부터 아래로는 가마꾼까지/안으로는 규방서부터 외방 고을의 기생까지/입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가 즐기지 않으며/귀천(貴賤)과 현우(賢愚)를 가리지 않고 한 가지로 휩쓸리네."(신택권의 시 中)

"특별히 집주름이 나타나 생업을 꾸리니/큰 집인지 게딱지인지를 속으로 따진다./천 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값으로 받으니/동쪽 집 사람에게 서쪽 집을 가리킨다."(신택권의 시 中)

안 교수는 특히 신택권의 '성시전도시'는 정승판서부터 가마꾼, 양반집 여인, 기생에 이르기까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인기를 끌었던 담배(남초), 한양의 부동산을 좌지우지한 공인중개사 '집주름' 등 한양의 이미지를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냈다고 소개했다.

안 교수는 "18세기 후반 한양은 주택 사정이 좋지 않았다"면서 "집주름의 활동이 아주 활발해 이들에 의해 주민들의 거주이동이 빈번했고, 심지어 불필요하게 자주 집을 옮기도록 유도하는 중개가 성행했다"고 설명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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