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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연극 '농담'

송고시간2013-04-2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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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만도 못한 인간들의 세상' 그려작품의 난해성, 무대와 음향이 보상

<공연리뷰> 연극 '농담' - 2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사람들은 간혹 무서운 악몽을 꾼다. 그런 꿈속엔 얼토당토않은 장면들이 많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렇다고 완전히 허황된 것만도 아닌 듯하다. 현실의 풍경과 인물이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평소 심리적 압박을 주는 것들이 엉뚱한 형태로 반영되기도 한다. 꿈속의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안간힘을 다해 빠져나오려고 하나 옴싹달싹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꾸는 악몽의 기본 구성 요소다.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 위에 올려진 '농담'은 이런 악몽을 무대 위에서 펼쳐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의 연극이다. 이야기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장면 하나하나의 이미지는 또렷하다. 황당한 것 같지만 분명히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다.

<공연리뷰> 연극 '농담' - 3

이것이 만약 악몽이라면 꿈의 주체는 누구일까?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만 억지로 분석해 보자면 극 중 인물로 이름도 부여되지 않은 '남자'다. 연극의 첫 장면에서 그는 낡은 트럭 안에 상수를 태운 채 급박하게 현장을 벗어나려고 하나 몇 시간이 흘러도 차의 시동은 걸리지 않는다. 이 연극은 똑같은 장면으로 끝이 난다.

꿈속의 현장은 음산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투견장이다. 어둠침침한 공간에서 물고 뜯는 투견의 울부짖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고막을 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거나 뒤틀린 이미지를 갖고 있다.

돈 욕심 때문에 투기꾼 부인의 부탁을 받고 큰아들을 마약사범으로 신고하는 불법 투견장 주인 이씨. 그런 아버지 이씨를 '정화'하기 위해 소금을 부은 큰 대야에 아버지를 넣어 죽이려는 작은아들 상수. 투견장 주변을 기웃대며 사는 '유기된' 인간들. 한 때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으나 쫄딱 망한 후 투견장까지 흘러들어와 이곳에서도 빚을 지고 결국 자살하는 '사내'. 사내와 주식을 공동투자했던 인물로 투견장에서 개들을 몰래 나르는 일을 하다 '사내'가 죽자 죄책감을 느끼는 '남자'. 불법을 눈감아주고 뒷돈을 받는 경찰.

가장 신비감에 싸인 인물은 칼멘이다. 북한 출신 여인인 칼멘은 매독균 때문에 배가 임신한 사람처럼 불러 있다. 그는 몸속에 무서운 균을 품은 채 추악한 세상을 정화라도 하려는 듯 투견장 주위에 소금을 뿌린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중얼거리듯 "싸람이 싸람을 수랑에 옇는다(사람이 사람을 수렁에 처넣는다)"고 한다.

<공연리뷰> 연극 '농담' - 4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이야기 속에 극중 인물들은 투견장의 개처럼 상대가 죽을 때까지 몰아세우며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끝없는 경쟁과 탐욕, 추악한 인간성을 '투견'의 이미지와 중첩시킨다.

투견장, 반드시 끝장을 봐야만 하는 싸움, 끝없는 탐욕 속에 갇힌 삶,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장 인생 등의 이미지를 시각화한 철창 무대가 돋보인다. 작품의 난해성을 무대와 함께 울부짖는 개 소리, '삐걱~'하는 둔탁한 철창 여닫는 소리 등 강렬한 시청각적 이미지가 보상해 준다.

대학로에서 활발히 무대에 서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연기조화를 잘 이뤄낸다.

작품의 제목은 "어쩌면 인간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신이 내뱉어 놓은 농담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공연리뷰> 연극 '농담' - 5

◇ 연극 '농담' = 남산예술센터의 2013년 시즌 자체제작 첫 번째 작품.

만든 사람들은 ▲작 정영욱 ▲연출 김낙형 ▲드라마터그 김주연 ▲무대 손호성 ▲조명 주성근 ▲의상 이명아 ▲음악 김동욱 ▲소품 박현이 ▲분장 김근영 ▲움직임 김선권 ▲무대감독 정다운 ▲조연출 송길호.

출연진은 선종남·김학수·정인겸·하성광·백익남·백진철·신안진·우미화·이재인·이창수·노희석·조윤경·안창환·송길호.

공연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오는 28일까지. 공연문의는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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