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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학살피해자 명부>③한일관계에 악재 작용할 듯

송고시간2013-11-24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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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만에 빛을 본 희생자…과거사 규명에 중요 자료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

(서울=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1953년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9천781명)' 등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은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 2013.11.19 << 국가기록원 제공 >>
photo@yna.co.kr

(도쿄·서울=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이율 기자 =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 학살 피해자 명부가 발견되면서 참혹한 학살의 진상이 대거 공개돼 앞으로 한일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번에 발견된 3개 명부 가운데 '3·1운동 피살자 명부'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는 처음 공개된 것이다.

진재시 피살자 명부는 관동(關東·간토)대지진 당시 학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3·1운동과 관동대지진 학살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를 구체적으로 대거 확인하고 학살의 참상을 담은 기록이 공개되면서 한일 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명부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가 배상 문제로 일본을 압박하고, 일본이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이유로 거부하고 나서면 양국 간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

◇ 관동대지진 학살 희생자 이름 90년 만에 햇빛

"이광국, 이광명, 이판개, 이산개"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에게 살해당하고 90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 이름이다. 한 가족이 몰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

(서울=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1953년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9천781명)' 등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 2013.11.19 << 국가기록원 제공 >>
photo@yna.co.kr

명부는 관동대지진 학살로 사망한 한국인 290명의 이름을 담고 있다. 여기엔 일본인이 쇠갈퀴, 총, 곡괭이, 죽창 등을 사용해 한국인을 학살했다는 상세한 기록도 있다.

이번 명부 발견으로 관동대지진 학살 피해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관동대지진 한국인 학살은 사망자 정보가 적어 정부 문서나 언론의 보도를 바탕으로 조명해 왔다"며 "피해자 측의 신고 기록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조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관동대지진 학살 희생자 가운데 유독 조선인의 인적사항 등이 미궁에 빠진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해 온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은 희생자를 '특정'했다는 점에서 진실 규명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강 관장은 "한국 정부는 유족의 목소리를 대변해 일본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3·1운동 유공자 추가 인정될 듯…사료로서 큰 가치

'3·1 운동 피살자 명부'와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기존의 희생자 명단을 보완하는 자료가 될 전망이다.

명부에 새로 등장한 3·1운동 피살자는 경기, 충청 지역만 174명이다. 분석을 거쳐 강제징용 또는 잘못 기재된 이름 등을 제외하더라도 다수가 새로운 3·1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65권의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도 기존 징용자 명부를 '보완'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

(서울=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1953년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9천781명)' 등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 2013.11.19 << 국가기록원 제공 >>
photo@yna.co.kr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정혜경 조사2과장은 "새 징용자 명부는 1957~1958년 왜정 때 명부보다 훨씬 정확하고 내용이 풍부하다"며 "체계적인 전수조사가 이뤄졌고, 한 사람이 전부 받아서 썼으며 귀환 여부와 동원지까지 나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록의 정확성이나 작성 경위를 좀더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면 진재시 피살자 명부에 등장하는 한 피해자는 사망 시점이 단기 4251년(서기 1918년)으로 간토 학살(1923년)과 시기가 다르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연구소 연구위원은 약 200명은 간토 학살 희생자일 개연성이 높고 나머지는 확인이 필요한 것으로 잠정 판단했다.

◇ '아슬아슬'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 줄 듯

이번에 발견된 명부를 토대로 일본의 배상을 주장하는 여론이 비등하면 한일관계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끼쳐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을 상대로 잔혹한 학살이 확인됨으로써 국내에서 반일 감정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과 마찬가지로 새 명부에 대해서도 외면할 가능성이 커 양국 관계의 악순환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 NHK는 "한국에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선 3·1운동과 관동대지진 학살 피해자는 한일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된 것이 아니어서 일본의 배상은 당연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반면 일본은 그런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여서, 배상 문제가 한일 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3·1운동·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 공개
3·1운동·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 공개

(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박경국 국가기록원장과 직원들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 정부가 1953년에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를 공개하고 있다. 2013.11.19
srbaek@yna.co.kr

사실 일본에 대한 배상 요구는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고 대가를 치르라는 얘기와 같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아직까지 사죄하지 않아온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반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장 이후 미일 동맹 긴밀화를 바탕으로 집단자위권 행사 범위 확대는 물론 평화헌법 개정 야욕을 노골화하는 등 우경화 가속 페달을 밟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할 것으로 기대하는 건 '넌센스'에 가깝다.

일본은 현재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우경화 바람 속에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퇴행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신중하게 대응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이 "이번에 발견된 명부 성격과 내용 등에 대한 상세한 분석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한데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번 명부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을 새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어서 양국관계에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을 구체화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틀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일본 내에서 이번 명부 발견이 한국 정부에 정치적 부담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아사바 유키(淺羽祐樹) 야마구치(山口) 현립대 교수는 "일본 입장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 희생자의 이름과 사례 등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에 대해 책임질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야겠지만 일차적으로 한국정부에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해당 자료를 활용해 과거 청산 문제를 제대로 따졌는지가 관건"이라며 "한국 정부의 부작위(不作爲)가 확인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sewonlee@yna.co.kr,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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