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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 무죄의 교훈

송고시간2014-02-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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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에서 법원이 13일 강기훈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강씨가 운동권 동료 고 김기설씨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1992년 7월 징역 3년의 확정 판결을 받은 지 22년 만이다. 이 사건은 1991년 5월8일 서강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자살한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씨의 유서를 강씨가 대필했다며 검찰이 강씨를 기소한 사건이다. 그 무렵은 노태우 정권의 잇따른 비리사건에 반발한 재야와 운동권의 시위와 분신이 이어지던 때였으나 유서대필 사건으로 운동권의 도덕성이 타격을 받아 학생운동의 위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유서를 누가 썼느냐다. 1991년 당시 검찰은 숨진 김씨의 유서와 강씨의 필적이 같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결과를 증거로 삼아 강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강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007년 국과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의뢰로 한 재감정에서는 다른 결론을 내놨다. 김씨 유서의 필적이 사건 발생 이후인 1997년 발견된 김씨의 노트·낙서장의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강씨는 과거사위가 진실규명을 결정함에 따라 2008년 재심을 청구했고 이후 6년만에 마침내 누명을 벗게 됐다. 간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강씨에게 이제라도 이런 결과가 나와 다행이다. 검찰의 대법원 상고 여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번 재심 결과로 보면 이 사건은 잘못된 증거에 기초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검찰은 물론 법원도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0여년을 유서대필의 누명을 안고 살아온 강씨의 억울함을 국가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이날 법정을 나온 강씨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관여한 검사들은 나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며 검찰이 어떤 형태로든지 유감의 표시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11일 주례 간부회의에서 "최근 특수사건, 공안사건 등의 구분없이 여러 중요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어떤 사건이든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와 자료를 구비한 다음 기소를 해야 하고, 기소했다면 상급심과 하급심의 모든 재판에서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국정원 축소수사 의혹' 등으로 검찰이 기소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고 저축은행 사건에서도 정치인 등에게 무죄 판결이 잇따르는 것에 대한 걱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이어지는 것은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죄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증거로 무리하게 기소했거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수사를 제대로 못한 무능한 검찰 때문에 진짜 범죄자가 풀려나서도 안 되지만 무리한 기소로 누명을 쓰는 억울한 사람이 나오는 것은 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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