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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에 아버지 이름 있는 한 우리 가족은 아직 식민지"

송고시간2014-07-0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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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에 합사된 한국인 징병피해자 유족 2명 도쿄법원서 증언

'야스쿠니 합사 취소하라' 한국인 유족들 법정투쟁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야스쿠니(靖國) 신사 합사 취소 소송 공판이 9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도쿄지법에서 열렸다. 공판을 앞두고 원고인 남영주(75·오른쪽에서 2번째)씨와 박남순(71·오른쪽에서 3번째)씨가 도쿄지법 앞에서 변호사, 일본내 지원단체 관계자 등과 함께 유족의 사진과 항의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2014.7.9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jhcho@yna.co.kr

'야스쿠니 합사 취소하라' 한국인 유족들 법정투쟁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야스쿠니(靖國) 신사 합사 취소 소송 공판이 9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도쿄지법에서 열렸다. 공판을 앞두고 원고인 남영주(75·오른쪽에서 2번째)씨와 박남순(71·오른쪽에서 3번째)씨가 도쿄지법 앞에서 변호사, 일본내 지원단체 관계자 등과 함께 유족의 사진과 항의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2014.7.9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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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재판장님, 이 늙은이의 한을 풀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합사 취소 소송 공판이 진행된 9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도쿄지법 103호 법정. 일본의 침략전쟁이 짓밟은 두 가정의 기막힌 사연이 100여 방청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원고 자격으로 증언대에 선 남영주(75)씨는 일본어 통역을 옆에 둔 채 떨리는 목소리로 가족사를 증언했다.

8대 종손의 외아들인 남씨의 오빠 고(故) 남대현씨는 1942년 일제에 징병됐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자식 잃은 슬픔에 남매의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한 채 시름시름 앓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세상을 떠났다고 남씨는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도 모두 대현씨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차례차례 사망했다.

남씨는 "우리 집에서 오빠는 희망이었고 행복 그 자체였다"며 "오빠를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인다"며 울먹였다.

오빠의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태평양전쟁 피해자 단체에서 활동해온 남씨는 2003년, 오빠가 1944년 8월10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 '혹시나'했던 오빠의 사망을 확인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오빠가 '침략전쟁 미화'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사실이었다고 남씨는 밝혔다.

그는 "2012년 오빠가 세상을 떠난 파푸아뉴기니에 찾아갔을 때 오빠의 이름을 꼭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내고야 말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며 "그리고 이역 땅에 찾아주는 이 없이 묻혀 있는 오빠의 유골을 꼭 찾아서, 한을 품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 앞에 비석이라도 하나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방청석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뒤이어 증언석에 선 박남순(71)씨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아버지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고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자 오늘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하자 방청석은 숙연해졌다.

'야스쿠니 합사 취소하라' 한국인 유족들 법정투쟁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야스쿠니(靖國) 신사 합사 취소 소송 공판이 9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도쿄지법에서 열렸다. 공판을 앞두고 원고인 남영주(75·앞열 오른쪽에서 2번째)씨와 박남순(71·앞열 오른쪽에서 3번째)씨가 도쿄지법 앞에서 변호사, 일본내 지원단체 관계자 등과 함께 유족의 사진과 항의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2014.7.9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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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합사 취소하라' 한국인 유족들 법정투쟁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야스쿠니(靖國) 신사 합사 취소 소송 공판이 9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도쿄지법에서 열렸다. 공판을 앞두고 원고인 남영주(75·앞열 오른쪽에서 2번째)씨와 박남순(71·앞열 오른쪽에서 3번째)씨가 도쿄지법 앞에서 변호사, 일본내 지원단체 관계자 등과 함께 유족의 사진과 항의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2014.7.9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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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친이 1942년 11월22일 태평양제도로 끌려갔다면서 "어머니가 나를 임신한지 9개월이 됐을 때 아버지를 일본에 빼앗겼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할머니는 '아들을 기다린다'며 평생 대문을 닫지 않은 채 잠을 잤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는 기독교 방식으로 추모를 드려왔다"고 소개한 뒤 "그런데 우리 집안의 종교와 다른 야스쿠니 신사에 마음대로 합사를 해 놓았다니 정말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짓"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죽어서 야스쿠니의 신(神)이 되었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나는 아버지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한,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우리 가족 모두가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토해내듯 말했다.

남씨와 박씨는 모두 일본 정부가 한국인 전사자의 신원과 사망일자 등을 파악한 채 야스쿠니에 합사까지 하면서 유가족에게는 왜 사망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원고측 변호인인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는 "군위안부 문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는 '상대'가 있는 문제이지만 야스쿠니 합사 취소는 일본이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하면 해결되는 문제"라며 "야스쿠니 신사는 침략전쟁이 옳았다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두 사람을 포함해 한국인 강제징병 피해자 유족 27명은 작년 10월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가족의 야스쿠니 무단합사 취소와 사과, 유골봉환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이희자(71)씨 등 가족·친지가 합사된 한국인 8명과 생존해 있음에도 야스쿠니에 합사된 김희종(89)씨 등은 2007년 1차로 합사 취소 소송을 했지만 일본 1,2심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잇달아 기각했다.

작년 10월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원고는 신사의 종교적 행위로 감정이 상했다는 것을 문제삼고 있지만, 타인의 종교의 자유에는 관용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도쿄 지요다구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 6천여 명이 합사돼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작년 12월26일 일본 현직 총리로는 7년만에 야스쿠니에 참배해 파문을 일으켰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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