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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약탈문화재 숨긴 이유가 `양국 신뢰 훼손 우려' 때문?

송고시간2014-07-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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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1960년대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의 일환으로 진행된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한반도 강점기에 약탈해간 문화재 목록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일본 정부의 진술서를 통해 밝혀졌다. 또 당시 일부 돌려준 문화재들도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품목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일본 정부는 자인했다. 의심은 갔지만 증거가 없어 긴가민가 했던 일들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 시민단체인 `한일 회담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 관련 일본측 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의 항소심 판결 과정을 연합뉴스가 단독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오노 게이치 외무성 동북아 과장이 일본 정부를 대리해 도쿄 고등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희소본'으로 평가된 서적들의 목록이 공개되면 한국이 이후 대일 협상에서 '희소본'을 양도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이제까지 한국에 돌려준 서적의 선정 방식에 대해 비난할 수 있다"며 목록의 비(非) 공개를 주장했다.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궁내청 쇼료부 소장 서적 목록,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일람표 및 미술품 리스트, 한국 관계 중요 문화재 일람, 데라우치 문고 관련 기록 등을 공개할 경우 한국이 중요 문화재에 대해 반환 요구를 해올 것이 우려되니 공개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취지다. 진술서는 또 "서적 반출 경위에 대해 한국이 납득하기 어려운 경위가 쓰여있다. 이를 공개할 경우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한 강한 비판적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정당하지 못한 반출'(사실상 약탈)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강탈 문화재를 되돌려줄 생각을 하기는 커녕 그 사실 자체를 숨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없는 것은 도쿄 고등법원이 이런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12년 1심인 도쿄 지법이 관련 문서들을 공개하라고한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도쿄 고법은 또 문화재 관련 기록뿐 아니라 독도 관련 한일 교섭과 한일 청구권 협상 관련 기록 등 모두 48건의 문서에 대한 1심 법원의 공개 명령을 취소했다.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 배상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국교정상화 협상의 전모를 밝히려 했던 일본 시민단체의 양심적인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판결인 것이다. 아무리 국가기밀이라 해도 대개 20∼30년의 비밀 보존 기한이 지나면 문서를 공개하는 것이 대부분 국가의 관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미 50년이 다 돼가는 문서들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있고, 도쿄 고법은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개를 결정했던 1심 법원의 판결까지 뒤집으면서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정부는 문서를 공개할 경우 한일간 신뢰관계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법원에 강변했다. 그러나 지난번 고노 담화 검증 당시 외교 관례를 깨고 한일간 외교 교섭 과정을 공개한 것은 바로 일본 정부였다. 마치 고노 담화에 우리 정부의 의사가 상당부분 개입돼 있는 것처럼 오도하기 위해 응당 지켜야할 외교 관례까지 깨버리면서 양국간 신뢰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공개하지 말아야할 문서는 법원 판결 없이도 자발적으로 공개하면서 정작 자국의 시민단체가 양국간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며 공개를 요구하는 문서에 대해서는 법원 판결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는 이율배반적 행동을 하는 것이 일본 정부다. 불리한 것은 감추고 이로운 것만 드러내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실체적 진실을 가리고 오히려 왜곡하는 수준이라면 이는 정상적 국가가 취해야할 행동 반경을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약탈 문화재 반환요구를 피하려고 목록을 은폐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만큼 강탈 문화재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자료와 기록의 공개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또 이를 바탕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한 재교섭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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