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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부터 퍼거슨까지…미국 인종 갈등 역사

송고시간2014-08-2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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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윌슨을 체포하라'
'대런 윌슨을 체포하라'

(A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한 여성이 대런 윌슨 경관을 체포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런 윌슨은 지난 9일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백인 경찰이다.

(퍼거슨<미국 미주리주>=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미국이 인종 갈등에서 촉발된 폭력 사태로 신음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로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이 사망한 뒤 시위와 약탈을 동반한 소요 사태가 발생해 몸살을 앓았다.

해마다 곳곳에서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으나 이를 해결하려는 사회 전반적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다음은 1980년대 이후 주요 인종 관련 사건 일지다.

▲ 1980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폭동 = 백인 경관 4명이 과속으로 오토바이를 몰던 흑인 아서 맥더피를 붙잡아 집단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했으나 전원 백인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의 결정으로 모두 무죄 방면되자 흑인 밀집 지역인 마이애미의 오버타운과 리버티시티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주 방위군 투입으로 12명 이상 사망하고 165명이 다쳤다.

▲ 1992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폭동 = 1991년 과속으로 붙잡힌 흑인 로드니 킹이 백인 경관 4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됐다.

그러나 백인 위주 배심원단의 결정으로 재판에서 백인 경관 모두 무죄 평결을 받자 공분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53명이 사망하고 2천명 이상이 다쳤다.

1992년에 있었던 LA 폭동 현장 (AP=연합뉴스 자료사진)

1992년에 있었던 LA 폭동 현장 (AP=연합뉴스 자료사진)

6일간 이어진 폭동을 막고자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은 물론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이 투입됐다.

흑인들은 당시 한인 상점이 밀집된 코리아 타운을 집중 공격하는 등 수십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안겼다.

▲ 2001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폭동 = 비무장 흑인 청년 티머시 토머스가 백인 경찰의 총격에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이번 퍼거슨 사건과 흡사하다.

로스앤젤레스 폭동 이후 발생한 대규모 폭동으로 당시에도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당시 신시내티 인구 33만명 중 46%에 달하던 흑인은 물건 약탈과 백인 공격 등으로 도시를 마비시켰다.

▲ 2009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폭동 = 2009년 1월 지하철에서 벌어진 몸싸움을 진압하던 백인 경찰이 흑인 청년 오스카 그랜트의 등에 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 장면을 담은 영상이 유튜브를 타고 삽시간에 퍼지면서 이를 본 흑인들이 폭동을 주도했다.

이듬해 테이저 총을 쏘려다 권총을 잘못 쐈다는 백인 경관에게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죄가 적용되자 다시 소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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