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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순신 전도사'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송고시간2014-08-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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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째 이순신 정신 알리는데 매진…"이순신은 완벽한 참 스승""전 국민이 배워야" 부산·서울서 '아카데미' 운영, 학교 설립도 추진

'이순신 전도사'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이순신 전도사'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이순신 정신에 흠뻑 빠져 '이순신 전도사'라 불리는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면서 자신의 저서를 설명하고 있다. 2014.8.21 <<인터뷰 기사 참조>>
ready@yna.co.kr

(부산=연합뉴스) 심수화 기획위원 = 이순신 정신에 흠뻑 빠져 '이순신 종교'의 교주로까지 불리는 김종대(66·삼일회계법인 고문) 전 헌법재판관.

그는 공군 법무관으로 재직할 때인 1975년 서울의 한 책방에서 만난 성웅(聖雄) 이순신에 푹 빠져 39년째 이순신 정신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21일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그가 꼽은 이순신 정신은 '지극히 정성스럽고(誠), 사랑으로 충만한 성품(愛)에, 제 힘으로(自力), 바른길로 성공한(正義) 완벽한 인격자이자 공직자의 사표.

이 정신을 널리 알리려고 그는 바쁜 공직생활 중에서도 책을 여러 권 펴냈고 지금도 누가 부르면 마다하지 않고 전국 어디라도 찾아다니며 강연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순신 정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고 판단, 영화와도 인연을 맺었다.

개봉 21일 만에 관객 1천500만명을 돌파, 국내에서 역대 모든 영화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 만나 이순신 정신을 교감했다.

김 감독은 김 전 재판관에게서 이순신의 정신을 경청했고 그가 지은 책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헌시'를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영화제작에 임할 정도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이순신 정신을 전할, 자신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해줄 강사들을 양성하고자 최근 부산과 서울에서 '이순신 아카데미'를 출범시켰다.

그의 또 다른 희망은 전 국민이 이순신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서울, 부산, 아산, 통영에 '이순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새마을연수원에서 새마을정신을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이순신 학교가 국민정신을 확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다음은 김 전 헌법재판관과 일문일답.

--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 2년 전에 인천에서 이순신 정신에 관해 강연했는데 김 감독의 형(변호사)이 찾아와 동생이 '최종병기 활'을 감독한 영화인으로 이순신 영화를 준비하고 있으니 꼭 만났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이 불과 13척으로 왜적선 133척을 물리친 명량해전을 일본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쓴 책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의 맨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이순신에게 바친 시'를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듣고 의기투합하게 됐다.

"영화를 잘 만들어 1천만명 관객을 돌파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한민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이 영화로써 이순신 정신을 알린다니 너무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공직에 있을 때나 퇴직하고 나서 이순신 정신을 알리고자 십수 년에 걸쳐 수백회 강연을 다녔지만 내가 만난 사람은 2만여명에 불과하다. 영화 한 편으로 1천5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순신을 만났으니 김 감독이 나를 대신해서 엄청난 일을 해 준 것이 아니겠는가.

'명량'을 크랭크인 할 때 찾아가서 축사를 해줬고 광양만 등지에서 촬영할 때 1시간 동안이나 지켜보기도 했다. 10초 분량 영상을 위해 1시간 이상 촬영에 몰입하는 것을 보고 성공할 것이라고 예감했다.

1천500만 관객 돌파 앞둔 '명량'
1천500만 관객 돌파 앞둔 '명량'

(서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이 1천5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극장에서 시민들이 '명량'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14.8.19
xanadu@yna.co.kr

김 감독을 만난 뒤 이순신 강연을 가는 곳마다 강연을 마치기 직전에 3~5분을 할애해서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영화 '명량'을 촬영하는 데 개봉하면 꼭 봐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7월 21일에는 헌법재판소장 등 전·현직 재판관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를 열도록 했고 같은 달 24일에는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시사회에도 참석, 10여분간 강연도 했다.

명량이 대박을 치자 김 감독과의 인연을 아는 지인들로부터 축하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 그렇지만 나는 '경제적(수입)으로' 이 영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국민과 가까이 가는데 영화가 큰 역할을 한 매체라는데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김 감독이 또 다른 이순신 영화를 꿈꾸는 것으로 아는데 기대를 걸고 있다.

-- 영화 명량의 개봉이 세월호 참사 때문에 무기연기 될 뻔했다고 들었다.

▲ 세월호 사고가 터진 뒤 김 감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제작사 측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국민 정서가 좋지 않으니 무기 연기하는 게 어떠냐고 한다면서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국민이 이렇게 맥 빠져 있고 우울해할 때 이순신 정신이 치유에 도움을 주고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라고 했다. 이순신 정신이 가득 담긴 이 영화가 세월호 아픔을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개봉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김 감독이 제작사를 설득해 7월 30일 개봉할 수 있었다.

-- 이순신과 어떻게 만났으며 이순신 정신이란 무엇인가

▲ 공군 법무관 시절 우연히 서울의 한 책방에 들렀다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은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을 접하고 깊이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법관 생활과 병행한 이순신 공부, 이순신 정신 선양으로 엮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순신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서 꿋꿋하게 국민 사랑, 국토 사랑, 나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모든 국민이 그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비리로 얼룩 진 공직사회, 싸움질이나 하는 국회, 지역간 계층간 갈등 등 양극화가 심해지는 이 사회를 바로 잡으려면 이순신 정신을 배워야 한다.

-- 이순신이 성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 이순신은 국민, 국토, 조선 사직(社稷)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그는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 공직에 늦게 진출했지만 정신수양을 통해 인격의 틀을 확립했다.

어디에서도 허점을 찾을 수 없는 대인격을 이룬 완벽한 인간이며 개인의 이익보다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모름지기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한치의 예외도 허락하지 않는 공직자의 사표이기도 하다.

그는 또 최악의 조건 속에서 인류 해전사(海戰史) 초유의 23전 23승을 일궈낸 가장 성공한 지도자다. 뭇 영웅 중에서 오직 그만이 성웅이나 성장(聖將)으로 불린다. 그에 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감동은 더 커지며 '참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 '이순신 아카데미'를 열었다고 했다. 어떤 과정을 거치며 강사들의 역할은.

▲ 부산에서는 사단법인 청목문화회가 주관해서 지난 6월 23일부터 21명을 대상으로, 서울에서는 재단법인 충무아트홀이 주관해서 7월 14일부터 31명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수강생들은 약 8주간 교육을 받는데 그들은 미래의 '이순신 강사'이자 나의 동지들이다. 내가 직접 1주일에 한 번씩 강의하면서 이순신 정신을 가르치고 있고, 수강생들은 이순신 관련 서적을 읽고 토론한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 아카데미를 이끌고 갈 주춧돌 역할도 할 것이다.

이순신은 학교 인성 교육의 표준인물로 삼으면 좋다.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으로 각급 학교가 인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데 우리 아카데미 수료생들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이순신 관련 책 상당수가 이순신을 잘못 소개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순신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어서 너무 안타깝다.

-- 서울, 부산, 아산, 통영 등 4곳에 이순신학교 건립도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 이순신이 태어나서 자랐거나 전쟁을 치렀으며 유적이 있는 4곳을 골라서 이순신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학교는 정규 교육과정이 아니라 새마을 정신을 배우는 새마을연수원과 같이 운영할 것이다. 누구든지 입소해서 이순신 정신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 학교 건립에 동기 부여의 역할을 맡고 싶다. 지금의 온갖 사회 병리현상은 단시일에 고쳐지지 않는다. 사회를 이렇게 만든 데는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크다.

'이순신 전도사'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이순신 전도사'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이순신 정신에 흠뻑 빠져 '이순신 전도사'라 불리는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4.8.21 <<인터뷰 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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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 때부터 이순신학교에서 선공후사, 책임완수, 솔선수범, 소통, 유비무환, 창의력과 열정 등 이순신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어린이는 이순신 정신이 담긴 '당의정'을 먹고, 어른은 '주사'를 맞아야 한다.

공동체의 이익과 가치가 사리사욕보다 항상 앞에 있어야 하는데 이 학교가 이를 바로 잡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을 것으로 본다.

몇 년전 관련 중앙부처에 이순신학교 건립 지원을 요청하자 돌아온 답은 "훌륭한 생각이나 두고두고 연구해 보겠다"라는 내용이었다. 공무원이 연구하겠다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지 않은가.

-- 영화 명량 개봉 이후 저서 판매가 늘었다고 들었다. 인세수입은 어디에 쓰나.

▲ 지금까지 개정판 2쇄를 포함해서 12쇄가 출판됐다. 명량 개봉 이후에 책이 더 나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늘 책을 가까이하면서 부족한 내용이 있으면 보충하고 오탈자를 바로잡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오는 경제적 이익은 없다. 책 수익금 전액은 사단법인 청목문화회로 들어가서 충무공사상 선양기금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 우리 공직자들이 이순신 정신에서 배워야 할 점은.

▲ 우리나라 공무원의 가장 큰 문제는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점이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이순신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소신껏 일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다. 참된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확립,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 이순신 정신 고양을 위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 평소 판사를 그만두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서울의 법무법인 등에서 상당한 조건을 제시하며 영입하겠다고 했지만 거절했고 헌법재판관을 마치고 부산에 내려간다고 하니 후배들도 개업을 말렸다.

삼일회계법인 고문으로 가는 조건이 이순신 강연을 맘 놓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가장 큰 법무법인 국제의 고문을 맡았는데 이를 수락한 이유는 따로 있다.

부산, 경남, 울산지역의 개인이나 기업이 시스템적으로 가동하는 서울 변호사를 쓰려면 10배에 가까운 수임료를 줘야 한다. 학교도 서울로, 직장도 서울로, 병원도 서울로 가는 현실에서 고급 법률 서비스를 받으려고 서울까지 가야 한다면 억울하지 않나. 걸음마 단계이지만 서울 서비스 수준을 따라가려고 팀 가동 등 전문 시스템을 갖추는 데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건을 맡지는 않지만 예의 차원에서 부산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등록은 했다.

-- '이순신교 교주'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데.

▲ 이순신 책을 낸 뒤 강연을 다닐 때 경험한 일이다. 모 기업에서 강연을 했는데 강연료가 다른 데보다 월등히 많았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중 그날 저녁에 꿈을 꿨는데 충무공이 나타나서 "자네가 나를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느냐"며 꾸짖었다. 그래서 당장 이튿날 비서를 시켜 돌려 보내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이순신 신'이 내린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이순신은 모든 면에서 우리의 참스승이 될 수 있는 분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 1948년 경남 창녕 태생으로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 부산지법 판사를 시작하며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대구고법 판사, 부산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산지법 부장판사, 부산지법 울산지원장, 부산고법 부장판사, 부산지법 수석부장판사, 부산지법 동부지원장,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창원지원장 등을 거치는 등 주로 지방에서 활동했다.

2006년 향판 중에서는 처음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그는 헌법재판관 재직 때 지역출신 판사답게 감사원의 지방자치 사무감사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등 지역을 대변하는 소수의견을 많이 냈고 특히 서울시 행정사무 전반에 대한 행정안전부의 감사는 위법하다는 결정(6대 3)을 끌어내기도 했다.

김 전 재판관은 부산지법 동부지원장으로 재직할 때인 2002년 10월 '이순신 평전'을 낸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이순신 관련 책 4권을 펴낸 이순신 전문가이다.

sshw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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