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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체제 개혁론 부상…"정치권·정부 개입 차단해야"

송고시간2014-09-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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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 막고 내부승계 프로그램 정착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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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종 홍정규 이지헌 기자 =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퇴진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의 직무정지로 최악의 국면을 맞은 'KB 사태'는 금융지주 체제의 근본적인 허술함에서 비롯했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은행 중심의 지주사 체제가 회장과 행장의 반목을 태생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는 가운데 정치권과 관료의 영향력에 좌우되는 '낙하산 인사'와 부실한 내부 승계 시스템이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뭔지 모를 배경으로 징계 수위가 자꾸 달라지는 금융당국의 제재 시스템과 고질적인 '관치' 문화로 금융회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배양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도 개혁 대상으로 꼽힌다.

◇KB 사태 '낙하산 인사·후진적 지배구조'가 근본 원인

전문가들은 이번 KB 주 전산기 갈등 사태가 불거진 배경에 '낙하산 인사' 관행과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지주 사업구조가 은행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수장마저 외부에서 영입됨에 따라 불협화음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KB와 마찬가지로 낙하산 인사 논란이 큰 우리금융[053000]도 회장-행장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박해춘 우리은행장은 당시 금융권 실력자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측 인사로 분류됐고, 박병원 회장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금융권 4대 천왕'으로 꼽히던 이팔성 회장이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했으나 이종휘 행장과 이순우 행장이 대(代)를 이어 반발해 이를 끝내 무산시켰다.

윤병철 회장과 이덕훈 행장도 KB 사태와 마찬가지로 우리금융의 차세대 전산시스템 도입을 놓고 이견을 드러낸 바 있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도 전산 갈등 사태 이전부터 불화설이 꾸준히 제기됐던 것도 출신 배경과 무관치 않다. 임 회장은 재정경제부 2차관을 지낸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이고 이 행장은 '연피아'(한국금융연구원 출신)로 불린다.

은행 비중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국내 금융지주사 현실에서 낙하산 인사로 온 회장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려 하고, 은행장은 이에 반발하는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KB 사태 원인은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 권한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지주사는 그룹 전체의 장기적 발전 전략과 포트폴리오를 짜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데 한국에서는 아직 역할분담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한국 금융시장 여건상 금융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이 겸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은행장이 지주 회장을 겸직하면 은행 쏠림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윤 교수는 "이제 전통적 은행업 이외에 증권업 등 다른 분야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금융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라며 "겸업 추진과 비은행 분야 강화는 성과보상 설계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부승계 프로그램으로 안정적 후계구도 만들어야"

KB금융[105560]의 '잔혹사'는 황영기·어윤대 전 회장에 이어 임영록 회장까지 사실상 외부 출신이 줄곧 회장직을 맡으면서 반복됐다.

정치권과 관가(官街)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외부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꽂히다 보니 회장은 '정권이 바뀌면 어찌 될지 모르는 사람'이 됐고, 은행장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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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들이 잇따라 회장을 맡으면서 내부 승계 프로그램은 유명무실한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나름대로 승계 프로그램은 만들었지만, 실질적인 운영에서 '외풍'이 작용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주인 없는 회사는 CEO를 뽑는 관행이 잘 확립돼야 경영이 안정된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정·관계발 외풍만 고스란히 받는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KB 사태에서 임 회장과 이건호 행장이 사사건건 반목한 배경에도 각자 '다른 줄'을 잡고 회장과 행장을 맡게 된 게 자리 잡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결국 KB 스스로 건전한 후계구도를 양성할 능력도, 환경도 없는 탓에 외부 출신 CEO끼리 치고받는 볼썽사나운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금융 지배구조를 순수 민간에 돌려줘야 한다"며 "바람직한 지배구조와 후계구도의 규범이나 시스템은 당국이 큰 틀을 제시하더라도, 운영은 순수 민간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회사의 임원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엄격히 해 낙하산 인사를 걸러내고 내부 출신의 CEO 승계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사 임원의 자격 요건을 소극적 요건에서 적극적 요건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가령 '징계 이력이 없어야 한다'는 식에서 '금융권 종사 경력이 몇 년 이상이 돼야 한다'는 식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의 회장·행장 선출 시스템도 한결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바꿀 필요성도 제기됐다.

임수강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매우 독립적인 회장·행장 추천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며 "현재는 회장의 영향력에 있는 사람들이 추천위원으로 선임돼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책임도 커"…관치금융·부실제재 시스템 개혁 목소리

이번 KB사태에 대해 금융당국의 책임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관치금융, 부실한 제재시스템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금융권 인사에 끊임없이 개입하려는 관치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CEO를 누구로 앉히느냐에 대한 낙하산 인사에서부터 심지어 경영에까지 금융당국이 끊임없이 간섭해 온 결과라는 것이다. 금융회사를 정책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정부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금융회사는 자율적인 경영 능력을 키울 수 없고, 이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면 자체 해결은 못 한 채 외부 도움에만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관치금융의 유혹을 정부와 금융당국이 완전히 떨쳐 버려야만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큰 틀에서의 발전, 규제 방향을 제시할 필요는 있지만, 일상적인 경영까지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시스템으로는 금융회사가 내부 역량을 키울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만 놓고 본다면 금융당국이 오히려 분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KB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금융당국의 섣부른 간섭으로 문제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전산 시스템 문제는 내부적으로 알아서 해야 할 문제이지 모든 국민이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며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부실한 제재시스템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제재심의위원회와 금감원장, 금융위의 결정이 각각 달라 금융당국의 제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제재는 무엇보다 예측 가능해야 한다"며 "징계의 잣대가 이렇게 들쭉날쭉 하면 금융회사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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