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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서 펑크록으로 불태운 청춘…우린 시한폭탄이었죠"

송고시간2014-09-17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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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1세대 밴드 크라잉넛·노브레인, 협업 앨범 '96'…대표곡 바꿔 불러 "클럽 드럭의 추억 솔솔…외롭지 않게 앞으로도 함께 가길"

노브레인-크라잉넛, 콜라보 앨범 '96' 발매
노브레인-크라잉넛, 콜라보 앨범 '96' 발매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록그룹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이 1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4.9.16
ksu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밴드 음악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은 참 헷갈린다고들 한다.

인디 1세대 펑크 록밴드인 크라잉넛(박윤식, 이상면, 한경록, 이상혁, 김인수)과 노브레인(이성우, 정민준, 황현성, 정우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두 밴드는 1990년대 중반, 홍대 인디신(scene)을 상징하는 클럽 '드럭' 무대에서 첫발을 뗐고, 1996년과 1997년 드럭이 제작한 앨범 '아워 네이션'(Our Nation) 시리즈로 잇달아 데뷔했다. 시원한 펑크 사운드에 혈기 충만한 가사, 무대에서 방방 뛰는 모습도 언뜻 닮은꼴이다.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쟤네, 말달리자(크라잉넛의 대표곡) 아니야?'라고 수군대죠."(노브레인)

"저희한테는 영화(노브레인이 출연한 '라디오 스타') 잘 봤다고 인사한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네, 저희도 잘 봤습니다'라고 답했죠. 하하하."(크라잉넛)

20년 가까이 선의의 경쟁자로, 둘도 없는 '음악 지기'로 홍대를 주름잡은 이들이 록 팬들을 설레게 하는 스플릿 앨범(두세 아티스트의 음원을 한 장에 모은 앨범) '96'을 발표했다. 동명 신곡인 '96'을 함께 부르고, 서로의 대표곡을 바꿔 연주했다.

"홍대서 펑크록으로 불태운 청춘…우린 시한폭탄이었죠" - 2

"홍대서 펑크록으로 불태운 청춘…우린 시한폭탄이었죠" - 3

지난 16일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밴드는 아홉 명의 멤버를 한데 모아도 마치 한 팀처럼 자연스레 섞였다.

"아홉 명이니 멤버 수는 (12인조) 엑소에 버금간다"고 '키득' 대는 모습이 영락없이 개구쟁이들이다. "요즘 아이돌 그룹들이 헷갈리던데, 저희를 구분 못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고 박장대소다.

이번 앨범의 구상은 올해 초 EBS '스페이스 공감' 10주년 공연 때 함께 콜라보레이션(협업) 무대를 꾸민 게 계기가 됐다. 뒤풀이에서 "공연만 하기엔 아깝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앨범 제목 '96'은 두 밴드가 인디 펑크 붐을 이끈 드럭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시기를 뜻한다. 한경록은 "1996년은 인디 펑크가 지상으로 떠오른 해였고 우리가 반항으로 청춘을 보낸 시기"라고 설명했다.

또 모양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숫자인 '9'와 '6'을 조합해 두 밴드의 닮은 듯 다른 개성을 강조했다.

한경록이 작사·작곡한 타이틀곡 '96'에서 크라잉넛의 보컬 박윤식과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는 '작은 클럽에서 청춘의 밤을 태웠지, 우린 마치 시한폭탄 같았어~'라고 노래한다. 이 노래를 통해 동시대 친구들이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린 정말 시한폭탄 같았어요. 술 마시고 있다가 싸우고 상을 뒤집고 지뢰밭이었죠. 그때 박윤식 '술 꼬장'은 람보도 못 말린다고 했어요. 하하하."(한경록)

서로의 대표곡을 바꿔 불렀지만 신기하게도 자신들의 옷처럼 딱 들어맞는다.

노브레인이 크라잉넛의 '말달리자'와 '룩셈부르크', '비둘기'를, 크라잉넛이 노브레인의 '바다사나이', '아름다운 세상', '넌 내게 반했어'를 재해석했다.

노브레인의 황현성은 "'말달리자'는 탐이 났고, '룩셈부르크'는 공연서 우리 곡인 양 써먹으려 했고, '비둘기'는 미친 노래 같았다"며 "특히 '비둘기'는 묵직한 노래여서 경건하게 부르고 싶어 도입부에 성가를 넣어 편곡했다"고 설명했다.

크라잉넛의 한경록과 이상면은 "노브레인의 초기 곡을 두곡 골랐다"며 "그중 '바다사나이'는 같이 활동하며 많이 부른 곡으로 가사에 쓰인 반어법이 무척 멋지다"고 덧붙였다.

한두 해 인연이 아니니 지난 시간의 에피소드도 화기애애하게 쏟아졌다. 1994년 문을 연 드럭의 추억을 말할 때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어 왁자지껄했다. 드럭을 찾던 관객 중에는 현재 갤럭시익스프레스, 킹스턴루디스카 등의 밴드로 활동하는 이들도 다수다.

한경록은 "당시 홍대 라이브 클럽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밴드 공연이 불법이었다"며 "1999년 라이브 클럽 합법화가 되기 전까지 일반음식점에서 2인 이상이 공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럭이 상수동과 서교동의 경계에 있어 양쪽 경찰서에서 번갈아 방문해 망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밴드들이 뭉쳐 클럽 합법화를 위한 서명 운동도 하고 공연도 벌였다"고 말했다.

이상면은 "드럭은 당시 청년들에겐 어떤 실험도 가능한 대안의 공간이자 1980년대와 단절하고 새로운 걸 찾는 세대가 침투한 곳이었다"며 "그곳에서 초기 개런티가 멤버 당 짜장면 한 그릇 값이었는데 그때 냉장고에서 맥주를 공짜로 꺼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웃었다.

"드럭에는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넘쳤어요. 크라잉넛은 박윤식이 공연을 재끼고 메탈리카 공연을 보러 가면 3인조로도 무대에 오르고, 베이스 한경록이 안 나타나니 박윤식이 베이스를 치면서 노래했죠. 심지어 멤버가 펑크를 내면 밴드 간에 품앗이 연주도 했어요. 한 기타리스트가 두세 밴드의 무대에 오르기도 했죠. 하하."(이성우)

이제 어느덧 멤버 대부분이 30대 후반이 됐지만 서로의 20대도 또렷이 기억해주고 있었다.

"드럭 시절 크라잉넛의 이상혁이 우리 머리카락도 잘라주고 염색도 해줬어요. 그런데 한번은 제 귀를 잘라버렸죠. 박윤식은 기타와 양주 선물을 받을 정도로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한경록은 반항적인 시인을 꿈꾸는 소년이었죠."(이성우)

"마산서 상경한 이성우가 1995년 신촌의 한 연습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빨간 머리를 불난 것처럼 세우고 있어 '불대가리'라고 불렀죠. 집이 없던 성우는 크라잉넛 멤버들의 집을 호텔처럼 옮겨 다니며 살았어요."(한경록)

'개구진' 말투지만 서로를 향한 정이 뚝뚝 묻어난다. 각자의 음악에 대한 '리스펙트'도 있기에 이번 앨범이 가능했을 터.

크라잉넛의 김인수는 "우리 음악은 낭만적인 듯한데 직설적이고, 노브레인은 직설적인 것 같은데 낭만적이다"고, 노브레인의 정민준은 "크라잉넛 형들의 음악은 거친 펑크지만 들을수록 디테일한 맛과 멋이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를 '얌체공' 같다"고 칭찬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본능적이고 반항적인 펑크록의 길이 처음엔 외로웠다고 했다. 그러나 서로를 의지해 걷다 보니 어느덧 홍대 음악계의 든든한 '맏형'으로 우뚝 섰다. 심지어 한경록의 생일은 '경록절'로 불리며 동료들이 모여 공연하고 즐기는 홍대의 '명절'이 됐다.

한경록과 이성우는 "친구로서 선의의 경쟁으로 시작해 오랜 시간 살아남는 록밴드가 됐다"며 "함께 한 기억이 있으니 앞으로도 외롭지 않게 함께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앨범을 내서 사람들이 더 헷갈리게 생겼다"고 웃었다.

후배 밴드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도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 마무리한다.

"후배들요? 연주 실력이 는 건 장점이고 술을 못 먹는 건 단점이죠."(김인수)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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