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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방문한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송고시간2014-09-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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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피케티 교수와의 대화
토마 피케티 교수와의 대화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EHESS)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의 사전행사로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이민지 박초롱 기자 = "'21세기 자본론'을 써서 얻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프랑스 정부를 향해 지금 75%인 최고 소득세율을 더 많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자본론'의 한국판 출간을 맞아 서울을 찾은 피케티 파리경제대(EHESS) 교수는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책 판매에 따른 인세 수입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 묻자 세금을 더 내겠다고 답했다. 집세 내고 아이들과 휴가갈 돈 정도만 있으면 자신은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소득불평등' 그 자체이지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내 주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왜 소득불평등 문제에 천착하게 됐나.

▲ 좌파와 우파가 양쪽으로 팽팽하게 나뉘어 소득불평등에 대해 다른 시각을 내놓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연구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동안 소득불평등과 관련한 역사적 자료가 단 한 번도 제대로 집계된 적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자료를 모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나는 포스트 냉전 세대다. 18살이던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대학시절 공산주의 정부가 무너진 동유렵을 여행하기도 했다.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다. 단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바보스러울 정도로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 배경에는 지나친 소득 불평등과 자본주의가 있었다.

-- 어린 시절에는 유복한 편이었나.

▲ 운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돈 걱정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집세를 내고 아이들과 함께 휴가를 갈 돈 정도가 있다면 만족하면서 산다. 이게 내게 필요한 전부다. 물론 지금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이 있기는 하다. 집세 정도만 낼 수 있다면 나머지는 기쁘게 세금으로 내거나 기부할 마음이 있다.

-- 한국 사회에서 '21세기 자본론'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주의가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당신의 논리를 비판하는 세미나도 열렸는데.

▲ 내 책이 소득 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다니 기쁘다. 내 생각을 설명하려고 '21세기 자본론'을 쓴 게 아니다. 아주 많은 데이터를 보여주려고 썼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제시하면 독자들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극심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조세는 소득과 부에 대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세율이 낮더라도 최소한 사회의 각 계층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서로 알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투명성마저 거부한다. 그래서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소득 불평등이지 내 책이 아니다. 나는 소득불평등을 분석하려고 할 뿐이다. 내가 소득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 당신이 주장하는 자본세를 한국에 적용하면 불평등 완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 소득불평등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한국·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개도국이 언제까지나 연간 5%, 10%대의 높은 성장률을 지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한국과 중국도 일본, 유럽, 미국처럼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고, 소득불평등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 한국에서 삼성과 현대그룹은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경제의 큰 한 축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 경영'으로 부를 세습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삼성이나 현대그룹은 한국의 큰 자산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가족이 회사를 경영할 수는 없다. 회사 주인은 '갱신(renewal)'돼야 한다. 워런 버핏도 "2000년 올림픽 팀에 참가한 선수의 자식들로 2020년 올림픽 팀을 짜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재벌기업이 유지되고, 이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기업의 소유주는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소수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 모델은 취약해질 우려가 있다. 핀라드의 노키아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은 더 다양한 기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한 사회에서 부의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재벌가족들에게 증여세가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되는지, 부의 대물림 과정이 투명한지, 제대로 세금을 내는지를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 재벌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상속·증여세 등 세금을 많이 물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 국제적으로 비교해봤을 때 한국의 상속세가 높은 편은 아니다. 독일, 영국, 미국, 프랑스는 40∼50%의 상속세를 낸다. 미국은 세율이 한때 70∼80%였다. 높은 상속세율은 사회의 계층 간 이동성을 높여주며 매년 새로운 사업가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내가 알기로 부유층이 언제나 상속세를 내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감세 논의를 하기 전에 한국의 세율과 다른 나라의 세율을 먼저 비교해봐라. 부의 세습 과정을 좀 더 투명하게 정비하는 것은 어떨까.

--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꼽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 게 좋다고 보나.

▲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는 한국만 겪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프랑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포용적인 방향으로 노동법을 개혁하고 노동시장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아시아 지역 국가의 소득불평등을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 아시아 신흥국 중에서도 특히 중국에 관심이 많다. 중국 연구를 시도했으나 자료가 충분치 않았다. 중국 정부가 대학과 연구기관이 수집·분석한 자료를 발표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재정·금융시스템과 관련한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신뢰성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주장이 난무하면 사회·정치적 갈등만 커진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지금은 책 출간 일정에 맞춰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기에 바쁘다. 11월엔 중국에 가고 일본,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방문 일정도 잡혀 있다. 방문국에 대한 더 많은 통계자료를 수집하는 게 목표다. 아프리카로도 연구 지역을 확장하고 싶다. 최근 남아공과 서아프리카의 소득세 자료를 수집해 식민지배 이전과 독립 이후 소득불평등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고 있다.

evan@yna.co.kr, mil@yna.co.kr,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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