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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 배경엔 '중국화'에 대한 불안과 반발

송고시간2014-09-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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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분수령 가능성…'점령 시위' 예고일과 공휴일 겹쳐

시위대로 꽉 찬 홍콩 중심가
시위대로 꽉 찬 홍콩 중심가


(AP=연합뉴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마련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29일(현지시간) 홍콩 금융 중심가 센트럴(中環) 지역을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중국 당국이 내놓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으로 촉발된 홍콩의 시위 사태가 심상치 않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 말 격화됐던 시위는 30일 현재 주춤한 상태지만 다음 달 1일 중국 국경절 휴일을 계기로 다시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달 말 발표한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대한 반발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전인대는 2017년 직선제로 치러질 홍콩 행정장관 선거 입후보 자격을 1천200명 규모의 후보추천위원 중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은 2∼3명으로 한정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홍콩의 범민주 세력은 추천위원들이 대부분 친중(親中) 성향으로 구성될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반중(反中) 인사의 출마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미라 진정한 보통선거로 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들이 중국 당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기 위해 금융 회사가 몰려 있는 센트럴(中環) 지역의 도로를 점거해 이 지역을 마비시키는 '센트럴을 점령하라' 운동을 선언함으로써 이번 시위가 촉발됐다.

그러나 행정장관 선거 안이 이번 시위의 촉매제가 되기는 했지만, 시위의 배경에는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중국화' 되어가는 홍콩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안감과 반발이 자리 잡고 있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반환받을 당시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하에 50년간 홍콩의 기존 체제 유지와 자치권 보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국양제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은 2003년에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다 수십만 명이 거리 시위에 나서자 포기했고 2012년에는 국민교육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다 '정치적 세뇌'라는 반발에 부딪혀 역시 지정 계획을 포기했다.

두 사안 모두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홍콩 사회에 중국 당국이 홍콩의 사회·정치 체제에 개입하려 한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이런 불안감은 지난 6월 중국 정부가 주권 반환 이후 처음으로 발간한 홍콩 백서를 통해 홍콩의 관할권이 중국에 있음을 강조하자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인대가 행정장관 선거안을 확정하기 이전에 수십만 명이 거리 행진을 통해 후보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진정한 보통선거를 요구했지만, 전혀 시민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도 이번 시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시위에는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에 대한 강한 불신도 한몫하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거짓말' 논란에 휩싸이며 조기 레임덕까지 거론됐던 렁 장관은 중국 정부의 견해를 대변한다는 비판 속에 홍콩 인들의 신뢰를 잃은 상태다. 이 때문에 홍콩 당국을 통해서는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도 시민이 직접 거리로 나서는 이유가 되고 있다.

홍콩 기자협회는 지난해 홍콩의 언론 자유가 사상 최악의 상태였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홍콩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언론 자유 등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인식도 홍콩인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위를 과거 영국 지배 시절을 그리워하며 홍콩 독립을 꾀하는 세력과 결부짓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번 시위가 과거 영국 통치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이런 시각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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