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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치고 재도약…김영애·이경영 눈부신 종횡무진

송고시간2014-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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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사회적 물의 딛고 제2의 전성기…영화·드라마 캐릭터 열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배우는 '광대'라고 한다. 광대는 관중의 박수에서 힘을 얻어 재주를 피운다.

죽음의 고통에도, 바닥을 치는 쓰라림을 맛보았어도 박수를 받으면 다시 일어선다.

여기 두 명의 중견 배우가 있다. 한 명은 사선을 넘나들었고, 한 명은 사회적 지탄으로 나락에 떨어졌었다.

하지만 둘은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섰다. 각기 63세와 54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피끓는 청춘들이 지금 이들보다 더 뜨겁다고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두 배우의 열정은 용광로보다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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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췌장암 이겨낸 김영애

2012년 3월 절정의 인기 속 막을 내린 MBC TV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노회한 대왕대비를 연기했던 배우 김영애는 그로부터 며칠 후 수술대 위에 올랐다.

그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유서도 썼다. 그 수술에서 깨어나지 못할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췌장암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해를 품은 달' 촬영 도중에도 그로 인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쓰러지기도 했지만 이 독한 배우는 촬영 기간에는 병을 숨겼다.

배우로서 약한 모습 보여주고 싶지도, 드라마에 누가 되고 싶지도 않았던 그는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몰래 병원을 왕래하며 고통을 참으려 허리에 끈까지 조여매고 연기했다.

하지만 하늘은 아직 그를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9시간의 대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다시 태어났다.

그런 그가 지금 드라마와 영화를 불문하고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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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일 개봉하는 영화 '현기증', 이어 13일 개봉하는 영화 '카트'와 지난 1일 시작한 SBS TV 새 주말극 '미녀의 탄생'의 공통점은 김영애가 출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할이 다 선명하게 다르다. 흔한 누구의 엄마 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의 절박한 상황을 그린 '카트'에서 그는 수십년 청소부로 일하는 순례 역을 맡았다. 젊은 시절부터 우아하고 시크한 이미지로 어필해온 김영애다. 그러나 영화 속 김영애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하층 계급'인 청소부 역할에 제대로 어울린다.

'현기증'에서는 아예 그의 이름이 배우들 중 가장 먼저 언급된다. 치명적인 실수로 자신의 가정을 파괴해버린 장본인이 된 할머니 순임 역이다. 딸 내외가 오랜 기다림 끝에 낳은 아기를 어처구니없이 죽음으로 이끄는 사고를 낸 순임은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면서 점점 이상해져간다. 연기파 김영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 그가 '미녀의 탄생'에서는 시치미 뚝 떼고 코믹하고 얄미운 시어머니로 변신한다. 뚱뚱하고 미련해 보이는 며느리를 대놓고 천대하면서 아들이 바람을 피우자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허영심 가득한 코믹한 캐릭터다. 그는 2일 방송에서는 성악에까지 도전해 우스꽝스러운 음치 연기를 펼쳤다.

이들 세 작품이 동시다발적으로 세상에 공개되면서 김영애는 이보다 바쁠 수 없는 배우가 됐다. 지난 10월에는 영화 '변호인'으로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까지 거머쥐었다.

누가 그를 보고 암투병을 한 배우라고 생각하겠나. 하지만 그는 2년 전 수술 당시 몸무게가 40㎏까지 줄어들고 밥을 넘기지 못하는 고통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섰다.

'카트'의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4일 "1970~80년대 최고 인기 스타였던 김영애 씨가 중년이 돼서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들을 만나면서 제2의 르네상스를 맞는 듯하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얼마 전 뵈었을 때도 '조금만 더 젊었으면 좋겠다. 작품 욕심이 너무 난다'고 했는데 연기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새로운 세대의 감독과 제작자들을 만나서 빛을 발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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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 이미지 실추 딛고 일어선 이경영

1980년대 청춘스타의 선봉 대열에 섰던 이경영은 2002년 난데없이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우수에 찬 눈빛, 따뜻하고 선한 캐릭터의 대명사였던 이경영이 이같은 혐의로 구속되자 충격은 엄청났다. 그간 쌓아온 이미지는 산산이 파괴되었고 그는 곧바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당시 그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그런 그가 올해 출연한 영화만 8편 이상이다. 단순히 편수가 많은 게 아니라 대부분 화제작이고, 그 자신의 캐릭터 역시 '미친 존재감'으로 방점을 찍는다. '해적' '타짜' '군도' '제보자'가 이미 개봉했고 '협녀' '은밀한 유혹' '허삼관' '암살'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한국영화는 이경영이 나온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구분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에게는 지금도 시나리오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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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이미지 실추로 몇년간 연기를 쉬어야했던 이경영은 2008~2009년께부터 다시 이름값을 한다. 그사이 맑고 밝은 이미지의 청춘스타는 온데간데 없어졌지만 중년이 된 이경영은 자신이 겪은 세월의 풍파만큼 더 깊어진 연기력으로 새로운 필모그라피를 개척해나갔다.

그러한 '아픈 세월'은 이미지 변신으로 이어져 돌아온 이경영은 이제 악역에서 빛을 내고 있다. 과거 같으면 이경영에게 가당치도 않았을 악역이 이제는 아주 잘 어울리는 옷이 돼 작품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그가 악역을 하면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단순히 '악랄'한 데 머물지 않는다. 묵직하고 풍성하며, 때로는 페이소스도 느껴진다.

심지어 그는 현재 안방극장 최고 화제의 드라마인 tvN '미생'에서도 산전수전 다 겪은,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영악한 기업 전무로 출연 중이다. 자신에서 시작된 비리로 죄없는 풋내기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 사망에까지 이르렀는데 눈 하나 꿈쩍 안하는 냉혈한이다. 몇장면 등장하지 않아도 이경영은 금테 안경 뒤로 번쩍이는 눈빛과 미간의 주름으로 화면을 장악한다. 예전에는 선함의 대명사였던 그 눈빛이 이제는 차갑고 비열하며 두려운 눈빛으로 바뀌었다는 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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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1985'에서 고문기술자 '이두한'을 연기하면서 10년 만에 인터뷰에 나섰던 이경영은 ""배우의 모습이 아닌 지난 일을 갖고 논란이 되는 게 두렵고 싫었다. 자꾸 얘기하면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서 이제 그런 얘기는 그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와 '파주' '부러진 화살' 등을 작업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이경영 씨는 고유의 개성이나 존재감보다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연기로 사랑받고 있다. 한사람이 이 역할들을 다 한 게 맞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역을 맡겨도 다 다르게 소화해내고 있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지만 이경영이라는 배우를 너무 소비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서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점점 더 늘어가는 것 같다. 악역조차 밉지 않게 해낸다"고 평가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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