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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는 노동? tvN '삼시세끼' 뒤에 놓인 호사

송고시간2014-11-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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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는 '웰빙의 사치'…복불복 없는 '1박2일'의 오락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유유자적'(悠悠自適)이 따로 없다.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자기 멋대로 마음 편히 사는 모습.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손수 밥상을 차려야하지만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자기 멋대로' 차리면 그만이다.

매회 손님이 찾아오긴 하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난데없이 시골에 유배된, 뼛속까지 도시인인 두 청년은 무료함에 먹는 재미마저도 시들해질 판이니 대접해야 할지라도 손님은 대환영이다.

tvN '삼시세끼'가 요리 문외한인 두 남자, 배우 이서진과 가수 옥택연의 삼시세끼 '밥상차리기 쇼'를 보여주며 매회 자체시청률 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4일 방송된 5회 시청률은 평균 7.0%, 최고 8.3%를 기록했다.

이러한 '삼시세끼'의 인기는 다양한 요인에서 기인한다. 시청자가 느끼는 재미의 포인트도 가지각색일 것 같다. 하지만 아마도 그 끝맛은 '부러움'이라는 공통된 지점을 향하고 있을 것 같다. '삼시세끼'의 뒤에 놓인 것은 지극한 '호사'이기 때문이다.

<밥하는 노동? tvN '삼시세끼' 뒤에 놓인 호사> - 2

◇ '멍 때리는 재미'

지난달 '멍 때리기 대회'라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우승자는 아홉살 소녀였다. '멍 때린다'는 것은 아무 생각을 안하고 멍하니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대회를 주최한 젊은 남녀 예술가 두 명은 "현대인들이 빠른 속도와 경쟁사회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멀리 떨어지는 체험을 하는 것이 대회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삼시세끼'에는 바로 이런 '멍 때리는' 순간이 있다. 많다. 칼국수 반죽을 하면서, 멱을 감다가, 하늘을 바라보다가, 강아지와 고양이가 노는 것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멍 때리게 된다. 이곳에는 서둘러야하는 이유가 없고 정해진 스케줄이 없다. 오로지 세끼 밥상을 차리면 된다.

아침저녁으로 지옥의 출퇴근길 속에서,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파김치가 돼버리곤 하는 많은 시청자에게 '삼시세끼' 출연자들이 자연 속에서 멍 때리는 순간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간접체험의 재미가 된다. '꽃보다 할배'나 '꽃보다 청춘'의 여정도 완전한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그들에게도 가야하는 길이, 찾아야하는 목적지가 있었다면, '삼시세끼'에는 그마저도 없는 것이다.

물론 아궁이의 불을 피우고, 채소를 키우고, 설거지도 해야한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이 프로그램에는 쉼표와 말 줄임표가 참 많다. 바쁘지 않다.

잠시의 침묵도 못견디는 온갖 토크쇼가 넘쳐나는 TV에서 '삼시세끼' 정도면 프로그램 자체가 멍 때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나와서 까불지도, 떠들지도 않아도 채널이 고정되는 것은 시청자 역시 이 한가로운 멍 때리기에 동참하며 색다른 휴식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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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푸드는 '웰빙의 사치'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돌아서면 다시 밥상을 차려야하는 게 우리네 삼시세끼의 일과다. 이는 일반 주부라면 누구나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부들에게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부가 차리는 밥상을 받는 것도 언젠가부터 '사치'가 된 세상이다. 그만큼 현대인은 바쁘다. '집밥'을 먹기 힘들다. 그것은커녕 밖에 나가서도 한끼를 그냥저냥 때우기 일쑤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먹는 시간이 길어야 얼마나 걸릴까. 그마저도 바빠 건너뛸 때도 많다. 심지어 돈이 없어서 굶는 이도 있다.

그런데 '삼시세끼'에서는 매끼를 차려서 먹는다. 메뉴도 다 다르다. 이서진과 옥택연의 고민은 오로지 '뭘 먹을까' 뿐이다. 이런 호사가 세상에 어디있을까. 반조리 상태의 음식은 안되고 재료도 조달해서 밥상을 차려야하는 수고는 해야하지만, 이런 밥상을 차리는 수고는 웰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들이 먹는 음식은 몸을 생각하는 슬로푸드이기 때문이다. 고열량 정크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기 십상인 현대인들에게 '삼시세끼'의 밥상은 웰빙의 사치가 따로 없다.

이서진은 밥상을 치우고 잠시 망중한을 때리다가 옥택연에게 "우리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짓이냐"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슬로푸드는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저소득층에서 초고도 비만이 더 많고, 그 이유가 채소·과일 등 건강식품보다 패스트푸드 섭취가 더 잦은 반면 운동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현실에서 슬로푸드는 주머니 사정 면에서건, 정신적인 면에서건 여유로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결국 '삼시세끼'가 차리는 시골밥상은, 그리고 오로지 그 밥상을 차리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이보다 더할 수 없는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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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일에 내몰린 남정네들의 분투기

'삼시세끼'가 얘기가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인공이 남정네이기 때문이다.

남자 셰프들도 많아진 지 오래고, '요리하는 남자'의 멋을 강조하는 각종 콘텐츠가 넘쳐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엌일은 여성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이서진과 옥택연이 그럴듯한 요리를 하자고 카메라 앞에 선 게 아니고, 총체적인 부엌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인 만큼 이들은 장화를 신고 다니며 청소도 하고, 농사도 짓고, 염소 잭슨에게 먹이도 준다.

아무리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혀본 철부지 아이돌 스타라 해도 성별이 여성이라면 '삼시세끼'는 발붙일 땅이 없었을 듯하다. 또 남성이라도, 평소 요리를 잘하는 이가 주인공을 맡았다면 역시 프로그램의 재미는 반감됐을 것이다.

평소 전혀 요리를 해본 적도, 관심도 없었던 두 남정네가 일일이 서울 사는 엄마에게 요리법을 물어봐가며 한끼한끼 해결해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가 '분투기'인 것이다. 손 빠른 주부라면 30분~1시간에 해치울 일들을 이서진과 옥택연은 그 몇배의 시간을 들이면서도 서툴게 한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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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불복 없는 1박2일의 오락

'삼시세끼'를 연출하는 나영석 PD는 KBS 2TV '1박2일'이 배출한 스타 PD이다. '삼시세끼'는 '복불복' 없는 '1박2일'이기도 하다.

허리 굽히고 무릎 낮춰 대접해야하는 어르신이 손님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카페라테를 마시려면 맷돌에 커피콩을 갈고 염소의 젖을 짜서 섞어야하지만, '거북이 목'이 돼 '책상 붙박이'로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는 이러한 '풍경'은 '1박2일' 캠핑의 오락이다.

까나리액젓을 마시거나 야외취침을 하는 복불복 벌칙은 없다. 하지만 그래서 밋밋한 게 아니라 그래서 푸근하고 여유롭다. 물론 밥상을 차리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하지만, 그게 노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외 다른 걱정은, 다른 해야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생계를, 내일을, 시간 대비 효과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오롯이 삼시세끼 밥상 차림에만 몰두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쩜 영원한 판타지다. 휴식을 위한 여행을 가도 우리는 어딘가를 구경해야하지 않나.

닿을 수도, 감히 해볼 수도 없는 삼시세끼의 판타지에 지금 시청자는 신선함을 느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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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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