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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정말 나쁜 박 과장…그래도 너무 미워마세요"

송고시간2014-11-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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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생'서 구악 상사맨으로 화제…"오 과장역 탐나"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오 과장님. 안녕하세요? 이제 우리 한 팀이네."

장안의 화제인 tvN 드라마 '미생'에서 지난 주말 방송에서만큼은 단연 박 과장이 주인공이었다.

그가 한 마디만 내뱉었을 뿐인데도 심상치 않은 공기가 감지됐다.

'구악' 상사맨 박종식 과장으로 분한 배우 김희원(42)의 연기에 "소름이 돋는다", "연기력이 제대로 폭발했다"는 시청자들의 평가가 이어진다.

본인 스스로도 '박 과장처럼 싹수없는 인간이 과연 현실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다는 김희원을 19일 인터뷰했다.

김희원 "정말 나쁜 박 과장…그래도 너무 미워마세요" - 2

대기업 종합상사 원인터내셔널(이하 원인터)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미생'의 박 과장은 수식어가 많은 인물이다.

그는 대리 시절 중동 수출 1억2천만 달러 신화를 새롭게 썼고 "실적 하나는 기차게 내는 놈"으로 인정받은 중동통이다.

회사 실세인 최 전무(이경영) 라인으로 입지를 구축한 그는 영업 3팀에 파견된 이후에도 업무 시간에 내기 당구와 사우나는 기본인 생활을 이어 간다. 표리부동하고 음흉한 데다 거만하며 약자에 언어폭력, 성희롱을 서슴지 않는다.

"주변에 많이 물어봤죠. 특히 회사 다니는 사람들에게요. 정말 회사에서 이렇게 나쁜 놈이 있을 수 있나, 하고요. '그 정도는 약과'라는 사람도 있었고 (웃음) '대기업에서는 박 과장 같은 사람은 이미 해고되고도 남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반응이 다양했어요."

김희원은 연출자인 김원석 PD에게도 "대사가 과한데 그대로 연기해도 되느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회사원 생활을 했다는 김 PD의 답은 "그보다 더한 사람도 봤다"는 것이었다고.

주변의 수많은 의견 중 김희원의 마음에 꽂힌 이야기는 "대기업 시스템은 능력제이니 능력 있는 사람, 가령 한 달에 한 번씩 매출을 꾸준히 올리는 사람은 회사에서 자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은 더 기고만장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또 촬영장인 서울스퀘어 주변 직장인들의 고달픈 일상을 목격한 김희원은 "직장인들이 현실에서도 박 과장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든 만큼 내가 박 과장을 더 극적으로 부각하면 사람들의 감정이입이 쉽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 과장이 너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부분은 다소 수위를 낮췄다고.

가령 영업 3팀에 처음 출근한 박 과장이 김동식(김대명) 대리의 양복 상의를 집어던지는 부분은 과한 것 같다는 그의 판단에 따라 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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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거나 가는 눈을 치켜뜨는가 하면 두툼한 입술 사이로 이죽이죽 웃음을 흘리는 모습만으로도 '구악' 상사맨의 느낌을 실감 나게 전했다.

여직원들에게 "커피는 여자 손맛을 타야 제 맛인데"라며 끈적끈적한 성희롱 발언을 내뱉는가 하면 스마트폰 주식거래 화면을 들여다보며 "아, 이건 안 샀어야 했는데 샀네"라고 입맛을 다시는 모습은 사무실에 꼭 있을법한 박 과장 그 자체였다.

특히 장그래를 놀리던 박 과장이 장그래의 턱을 잡아당기며 협박하는 장면에서는 김희원 연기에 몰입한 시청자들의 분노가 폭발하기도 했다.

"장그래를 고졸, 계약직, 낙하산 이렇게 부르면서 못내 마음에 걸렸다"는 게 김희원의 설명이다.

"임시완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정말 즐거웠어요. 사람이 아주 진중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그리고 정말 겸손해요. 장그래스러운 면이 있죠. 그 친구랑 연기할 때 서로 의논도 많이 했죠."

김희원은 지난 2007년 하지원·임창정 주연의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 단역인 건달 김부장으로 데뷔했다. 그는 이후 영화 '아저씨'에서 악랄하기 그지없는 범죄조직 보스 만석 역을 맡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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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원작인 윤태호 작가의 웹툰 애독자였던 박 과장은 "웹툰을 볼 때만 해도 제가 박 과장을 연기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면서 쑥스럽게 웃었다.

구두로는 오래전 박 과장 역을 제의받은 김희원이 공식 제의를 받은 것은 '미생' 1화가 방영된 지난달 중순께였다고 했다.

"배역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오상식 과장 역할이 정말 탐이 났었다"는 김희원은 "그래도 웹툰에서 박 과장 에피소드가 가장 비중이 큰 데다 박 과장의 삶 자체도 굉장히 극적이라서 연기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연기 잔뼈가 굵은 김희원이지만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한 드라마인 만큼 캐릭터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그는 중동통답게 얼굴을 좀더 까무잡잡하게 분장했다. 박 과장이 장그래를 망신주려고 긴 영어 대사를 읊조리는 장면도 가볍게 찍은 장면이 아니었다.

"한국 사람이 영어를 쓰는 수준으로 해야 하잖아요.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고 콩글리시를 쓰는 것도 박 과장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한국 사람이 영어를 잘하는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 여러 사람한테 코치도 받고 꽤 많이 연습했어요."

그 부분은 결국 별도 후시녹음(ADR)을 거친 후 한 번 더 입히는 식으로 공을 들였다는 게 김희원의 설명이다.

박 과장의 부정이 밝혀지는 지난 10화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빠른 전개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김희원은 "그 장면을 찍는 날 새벽 6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쭉 이어서 20시간 이상 찍었다"면서 "소리를 하도 질러 댔더니 지금까지도 목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나쁜 박 과장"이지만 그럼에도 그를 조금 변호한다면.

김희원은 "인터넷 댓글을 안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정말 크게 이슈가 돼서 박 과장 기사 댓글을 봤다"면서 누군가의 댓글 내용을 전했다.

"누군가 박 과장 같은 인물을 안 만들려면 우리 사회가, 기업 오너가 많이 환원해야 한다고 썼더라고요. 저도 회사원들이 고생하는 것에 비해 생활이 너무 개선이 안 되다 보니 정말로 나쁜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영화 '돌연변이'를 통해 박 과장과는 대척점에 있는 정의감 넘치는 인권 변호사로 관객들을 만날 준비 중이라는 김희원은 "박 과장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김희원은 이와 함께 애교 담긴 발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제가 코미디 영화도 많이 출연했어요. 그런데 영화 '아저씨' 잔상이 아직도 남은 탓인지 제가 박 과장에 캐스팅됐다는 기사에 누군가 '영업 3팀의 다음 사업 종목이 장기 밀매냐'라고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웃음) 저를 나쁘게 봐주시지만 마세요."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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