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권태가 몰고 온 비극…'테레즈 데케루'
송고시간2014-11-20 07:07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특별한 동기도 없이 저지른 범죄다. 남편은 궁금해한다. "왜 그랬느냐고"
아내는 반문한다. "당신은 모든 행동에 다 이유가 있느냐고"
영화 '테레즈 데케루'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단순하다. 권태로움에 빠진 아내가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아내의 남편 살해는 미수에 그치고 그녀를 둘러싼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불행에 휩싸인다.
부유한 정치가의 딸 테레즈(오드리 토투 분)는 프랑스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지주 베르나르(질 를르슈)와 결혼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와 이웃으로 지낸 테레즈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늘 머릿속이 복잡했던 테레즈는 결혼과 함께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낙관한다. 그러나 낙관은 점점 절망으로 바뀐다. 그러던 어느 날, 테레즈는 방화를 저지르고 일탈이 주는 묘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어린 시절부터 "욕심이 많았던" 테레즈는 예정된 순서대로 삶을 살아간다. 부유한 지주와 결혼해 재산을 불리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권태로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으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그녀를 뒤덮은 권태의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만다.
유부녀가 남편을 싫어하거나 심지어 독살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는 통상 다른 남자가 연루된 치정 사건이 발생할 때 일어나곤 한다.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이 그랬고,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이 그랬다.
'테레즈 데케루'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사랑 때문에도, 돈 때문에도 아니다. 사랑 없는 결혼이 유지되는 관습에 대한 저항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보들레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괴물"이라고 표현한 '권태'가 살인 미수 사건의 근인(根因)이다.
영화는 테레즈 데케루에게 찾아온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노 감독은 그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인생과 인생을 비관적으로 봤을 뿐인 한 여인이 겪어야 했던 불행에 대해 기름기 하나 없이 건조하게 이야기한다. 예쁘지만, 예쁘지 않게 보이려 한 오드리 토투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클로드 밀러(1942~2012) 감독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밀러 감독은 암 투병 중에 영화를 완성했으며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몇 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12월4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10분.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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