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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종 문제 관련 주요 소요 사태 일지

송고시간2014-11-2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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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미국 사회의 해묵은 난제 중 하나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인종 차별이다.

주로 백인 경관의 공격에 흑인이 희생되면서 방화와 약탈을 동반한 소요 사태가 벌어져 미국 사회에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으나 흑백 간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다음은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미국 인종 문제 관련 주요 소요 사태 일지다.

▲1965년 8월 11∼17일(로스앤젤레스 폭동) =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남부 와츠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 청년을 음주 운전 혐의로 체포하려다가 발생한 사건.

청년의 형과 어머니가 경찰 항의에 가세했고, 몰려든 흑인과 출동한 경찰이 격렬하게 맞붙어 폭동으로 발전했다.

이 사건으로 34명이 죽고, 1천32명이 다쳤다. 4천만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1967년 7월 12∼17일(뉴어크 폭동) =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 흑인 택시 기사와 두 명의 백인 경찰관이 벌인 설전을 계기로 폭동이 일어났다. 엿새간 26명이 숨지고 1천500명이 다쳤다.

▲1967년 7월 23∼28일(디트로이트 폭동) = 흑백 차별에 항거하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대규모 소요사태.

43명이 희생되고 2천명 이상이 다쳤다. 이후 일리노이 주, 노스캐롤라이나 주, 테네시 주 등으로 급속히 폭동이 확산해 1967년 말 128개 도시에서 총 83명이 숨졌다.

▲1968년 4월 4∼11일(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관련 폭동) = 온건파 흑인 인권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난 후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로 최소 46명이 사망하고 2천600명이 부상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시위 진압을 위해 미 육군 82 공수사단을 파견했다.

▲1980년 5월 17∼20일(마이애미 폭동) = 백인경관 4명이 과속으로 오토바이를 몰던 흑인 아서 맥더피를 붙잡아 집단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했으나 전원 백인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의 결정으로 모두 무죄로 방면되자 흑인 밀집 지역인 마이애미의 오버타운과 리버티시티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주 방위군 투입으로 18명 이상 사망하고 약 400명이 다쳤다.

▲1992년 4월 29∼5월 4일(로스앤젤레스 폭동) = 1991년 과속으로 붙잡힌 흑인 로드니 킹이 백인 경관 4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됐다.

그러나 백인 위주 배심원단의 결정으로 재판에서 백인 경관 모두 무죄 평결을 받자 공분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53명이 사망하고 2천명 이상이 다쳤다.

흑인들은 당시 한인 상점이 밀집된 코리아 타운을 집중 공격하는 등 수십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안겼다.

엿새간 이어진 폭동을 막고자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은 물론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이 투입됐다.

캘리포니아 주 전역과 애틀랜타, 라스베이거스, 뉴욕 등에서도 폭력을 동반한 시위가 벌어졌다.

▲2001년 4월 9∼19일(오하이오주 신시내티 폭동) = 당시 19세이던 비무장 흑인 청년 티머시 토머스가 백인 경찰의 총격에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이번 퍼거슨 사건과 흡사하다.

로스앤젤레스 폭동 이후 발생한 대규모 폭동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나흘간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당시 신시내티 인구 33만명 중 46%에 달하던 흑인은 물건 약탈과 백인 공격 등으로 도시를 마비시켰고, 약 800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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