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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욕망이 넘쳐나던 그때…'강남 1970'

송고시간2015-01-1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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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온종일 내 발이 닿는 곳은 모두 내 땅이 된다. 단, 해가 지기 전까지는 출발한 곳으로 돌아와야 유효하다.

땅을 놓고 탐욕을 부리던 주인공은 더 좋은 땅을 더 많이 가지려고 계속 욕심을 부리다 결국 원점을 코앞에 두고 쓰러져 숨지고 만다. 죽음 뒤 그가 가진 땅은 자신의 몸을 뉘인 길이 2m의 구덩이가 전부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다.

유하 감독의 신작 '강남 1970'은 이 톨스토이의 단편을 1970년대 강남의 상황에 맞게 변주한 듯한 작품이다.

고아원 출신으로 넝마를 주워 파는 종대(이민호 분)와 용기(김래원)는 배고프면 라면 한 개를 나눠 먹고 추우면 서로 권투를 하며 땀을 흘리면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을 버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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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이들이 살던 무허가 판잣집이 철거되면서 우연히 전당대회 훼방 작전에 나선 건달패에 끼게 되고, 그곳에서 유일한 '가족'이던 용기를 잃어버리고 갈 곳이 없어진 종대는 건달 출신인 강길수(정진영)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서울의 중심을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기는 계획이 은밀히 추진된다. 허허벌판인 강남 땅을 헐값에 사들인 뒤 '남서울 개발 계획'을 발표해 땅값을 끌어올리고 그 차익을 대선 자금에 쓰기 위한 것.

공장에서 온종일 미싱질을 해도 일당으로 50원도 못 받던 시절, 종대는 자신을 거둔 길수 부녀와 함께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자 "내 땅 한 번 원 없이 만들어 보겠다"며 강남 개발을 둘러싼 이권 다툼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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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조직 생활에 몸을 담아 '명동파'의 2인자가 된 용기는 3년 만에 종대와 재회하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음모와 배신도 서슴지 않는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등을 연출한 유하 감독은 '비열한 거리' 이후 8년 만에 다시 자신의 "영화적 발원지"인 1970년대 강남의 모습을 스크린에 담았다.

유하 감독의 말대로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제도 교육이 어떻게 폭력성을 키워내는가를 다뤘고, '비열한 거리'에서 돈이 폭력성을 어떻게 소비하는가를 다뤘다면 '강남 1970'은 권력이 폭력을 소비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쓸 때 쓰고 버릴 때 버리는" 건달을 이용한 정치권의 음모와 야합은 건달이 걸핏하면 휘두르는 폭력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다.

유 감독은 최근 열린 간담회에서 "그 당시 땅 얘기를 통해 돈의 가치가 어떤 도덕적 가치나 민주적 가치보다 우월한 세상, 뒤틀린 자본주의 세상에 대해 역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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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고자 저 멀리 보이는 한 줄기 빛을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두 청춘의 '이유 있는' 욕망은 마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 같아 더 짠하다.

유 감독의 전작 '비열한 거리'에서처럼 자신이 살아남고자 상대방을 찌르고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처절한 액션은 이번 영화로도 이어진다. 삽과 곡괭이, 심지어 도끼까지 등장하는 영화는 곳곳에서 유혈이 낭자하다.

전작에서 권상우('말죽거리 잔혹사')와 조인성('비열한 거리')을 캐스팅해 단순한 청춘스타에서 배우로 재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던 유하 감독은 이번에는 한류 스타 이민호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뽑아 냈다.

덕분에 자기 땅을 밟지 않고 다니기 쉽지 않을 것 같던 재벌 2세 '구준표'('꽃보다 남자')와 '김탄'('상속자들')은 사라지고 가족과 함께 살 집 한 채 때문에 진흙탕에 뛰어드는 거친 청춘만 남았다. 넝마주이 옷을 걸쳐도 빈티지룩을 선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점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극 중 비열한 종대를 연기하기 위해 15㎏을 감량한 김래원은 "날카롭고 탄탄한 느낌" 속에 흔들리는 눈빛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걸그룹 AOA의 설현이 건달 출신 길수의 딸 선혜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진추하의 '원 서머 나이트'와 그룹 이럽션의 '원 웨이 티켓'('말죽거리 잔혹사'), 조덕배의 '그대 내 마음에 들어오면은'과 강진의 '땡벌'('비열한 거리') 등 음악으로 정서를 공유했던 시인 출신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혜은이의 '제3한강교',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필리핀 노래 '아낙'(Anak) 등을 골랐다.

1월 2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1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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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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