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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불신 가득한 매카시 소설 '선셋 리미티드'

송고시간2015-01-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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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인간운명은 같은 말"…대화만으로 이뤄진 극 형식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믿는 사람이라면 결국은 믿음의 샘에 이를 수밖에 없고, 그럼 더 멀리 볼 필요도 없지. 더라는 게 없으니까."(흑·65쪽)

"세상은 기본적으로 강제노동수용소이고, 이 수용소의 노동자들은 제비뽑기로 매일 몇 명씩 끌려가 처형을 당한다는 겁니다."(백·118쪽)

'서부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미국의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흑'과 '백' 두 남자의 대화만으로 이뤄진 '극 형식의 소설'이다.

소설은 자살하고자 선셋 리미티드(뉴욕~LA 급행열차)에 몸을 던진 '백'과 그를 구한 자칭 수호천사라는 '흑'의 대화로 구성됐다.

'흑'은 성경의 내용을 앞세워 '백'의 자살을 막으려 하고, '백'은 다시 자살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인물은 성경과 예수, 교도소의 악행, 톨스토이와 에드워드 기번의 저작물 등 거대한 담론과 소소한 일상을 함께 논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저자는 세상은 희망이 없으며 그래서 자살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백'의 입장에 무게중심을 더 둔다. 모든 것이 파괴된 미래를 처참하게 그린 '더 로드'의 묘사와 '백'이 바라보는 세계는 그리 멀지 않다.

<세상에 대한 불신 가득한 매카시 소설 '선셋 리미티드'> - 2

"더 어두운 그림이 늘 정확한 그림이지요. 세계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유혈과 탐욕과 어리석음의 대하소설을 읽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질 거라 상상합니다."(108쪽)

반면, '흑'은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지리라 믿는 인물이다. 예수의 속성이 결핍에 있고, 세상 또한 결핍돼 있지만, 이 세상이 고통만으로 채워지진 않는다고 굳건히 믿고 있다. '백'에게 성경을 내미는 그는 인간의 선을 믿는다.

"사람들이 대체로 처음에는 선하다고 생각해. 악은 각자가 자초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대부분은 갖지 말아야 할 것을 원하는 데서 생기는 거라고 말이야."(66쪽)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흑'은 '백'의 확고한 주장에 조금씩 무너져가기 시작한다. 다시 태어나는 걸 카프카적인 최악의 악몽에 빗댄 '백'은 "염세적 세계관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자체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분량이 짧은 대화체 소설이지만 신학과 철학 우화가 뒤섞여 있어 읽기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인간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가 소설에 배어 있다. '선센 리미티드'는 매카시의 전작인 '더 로드'나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 영화로도 제작됐다. '더 로드'를 번역했던 정영목 씨가 옮겼다.

문학동네. 144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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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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