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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ECB 양적완화로 초래될 환율전쟁 대응능력 있나

송고시간2015-01-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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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유럽중앙은행(ECB)이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규모의 양적완화를 단행하기로 해 '글로벌 환율전쟁'의 불을 댕겼다. ECB는 지난 22일 열린 통화정책위원회 회의에서 3월부터 최소한 내년 9월까지 국채 매입을 통해 매달 600억유로(75조5천340억원)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기로 했다. 총 1조1천400억유로(약 1천435조1천460억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내년 9월은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최소한의 기간이며 물가상승률 목표(2%)에 도달할 때까지 채권을 사들일 예정"이라고 밝혀, 사실상 무기한으로 양적완화에 나서는 것임을 확인했다. 유럽의 기준금리는 현재 0.05%로 사상 최저수준이지만 물가 상승률은 1년 이상 1% 이하에 머물고 있다. 금리를 낮추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수단이 소진한 상태에서 한국의 한 해 예산(376조원) 4배에 이르는 돈을 직접 시중에 풀어 디플레이션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ECB의 양적완화 결정이 세계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은 이미 전대미문의 양적완화를 단행해 침체에 빠졌던 경제를 회생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올해 미국은 3.6%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있는 미국은 금리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유럽의 양적완화 착수로 금리인상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아베노믹스가 진행 중인 일본은 중의원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삼아 더 절도 있게 양적완화를 추진해 엔화 약세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최근 금리인하를 단행했음에도 성장목표 7.5%를 달성하지 못한 중국도 자국 화폐만 강세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통화 공급량을 늘리게 될 것이다. 유럽의 양적완화는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를 늦추고, 일본과 중국의 금융완화를 부추겨 경제 대국들 사이의 환율전쟁을 가속화할 수 있다. 초강대국들의 통화가치 증발 경쟁이 세계 경제 전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되는 순간이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대응이 있어야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교과서적인 대응에 집착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ECB의 양적완화기 시장 예상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며 "경제 펀더멘털을 건실히 다져가는 것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최근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인 3% 중반 대의 성장률을 유지하면 통화정책적 대응은 필요 없으며 구조개혁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안으로부터 곪아가는 한국 경제는 어떤 구조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나라 전체의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가계부채는 엄청나서 가계의 소비 여력은 바닥이다. 당장 디플레가 오지는 않겠지만, 디플레를 예약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성장률은 3.3%로 한은이 추정하는 잠재성장률 3.5%에 미달했다. 재정정책, 산업정책, 통화정책을 총동원했음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은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최근 가계부채 증가로 금융안정 리스크가 커졌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증가로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취약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아니라 가계의 건전성이다. 가계부채 증가를 걱정할 일이 아니라 가계의 부채 상환능력, 원리금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급여를 올리고 이자율을 낮춰서 가계의 상환능력을 키워야 한다. 기준금리뿐만이 아니라 체감금리까지 낮춰야 한다.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벤 버냉키, 구로다 하루히코, 마리오 드라기 같은, 지도에 없는 길을 용기 있게 달려가는 창의적인 중앙은행 총재가 나와야 환율전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경제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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