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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 ① 잼 황현민 "멤버들 비로소 화해…다섯이 한무대 섰으면"

송고시간2015-02-0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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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은 인생의 축복, 그땐 스펙터클 했죠…듀스 김성재·투투 김지훈 그리워"90년대 동료 가수들 출연 뮤지컬 기획

<※편집자주 = 지상파TV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1990년대 노래들이 다시 주목받자 음악에 녹아있던 추억들이 봇물 터지듯 드러나며 1990년대 복고 바람이 일었습니다. 이 시기 학창 시절을 보낸 3040세대는 자신들의 젊음을 장식한 옛 스타들의 소식을 궁금해했고 이 프로그램의 '시즌2'가 제작된다면 보고 싶은 얼굴들로 잼, 영턱스클럽, 노이즈, 태사자, 유피 등을 거론했습니다. 이들 중 잼의 황현민, 영턱스클럽의 임성은, 태사자의 김영민을 잇달아 만나 지난 이야기와 근황을 들어봤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1990년대를 풍미한 5인조 혼성그룹 잼(조진수, 윤현숙, 황현민, 신성빈, 김현중)은 몇몇 히트곡으로 방점을 찍고 단명한 그룹이다.

1992년 1집 '난 멈추지 않는다'로 데뷔와 함께 파란을 일으킨 후 1995년 3집까지 내고 해체했다.

사실 이 팀은 데뷔 8개월 만에 한차례 해체를 경험했다. 그로 인해 2집은 리더 조진수와 김현중이 남성 2인조로 냈고, 3집은 다시 뜻을 모아 홍일점인 윤현숙만 빠지고 남성 4인조로 발표하는 부침을 겪었다.

불과 3년 바짝 활동했지만 당시 신문에선 서태지와아이들, 현진영의 돌풍을 잠재울 신인으로 꼽히며 '난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 사랑하자', '어색한 느낌', '나만의 이유' 등을 히트시켰다.

여성 1명에 남성 4명이란 구성은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조합인데다 일본 그룹 '주'(ZOO)를 표방한 대중적인 댄스 음악은 당시 10~20대를 사로잡으며 힘을 얻었다.

잼의 멤버 황현민(42)을 최근 강남구 청담동에서 만났다. 불혹을 넘긴 그는 안경만 꼈을 뿐 한창 활동하던 때와 외모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잼이 출발 직후 삐거덕거리다 끝내 해체된 배경에 대해 "소속사에 대한 불신, 멤버간 불화 등 우린 하나가 되지 못했다"며 "무대 위에서 싸운 적도 있는데 과거의 난 처음부터 꿈이 가수가 아니어서 뭔가 부당하다고 여기면 불같이 덤볐다. 대화가 안 되는 놈이었다. '왜 그렇게 성숙하지 못했을까'란 생각을 한다"고 반성하며 돌아봤다.

해체한 지 올해로 20년이 됐지만 '마당발'인 황현민은 멤버 모두와 연락하고 있었다.

리더 조진수는 헤어 디자이너로 전직했고, 연기자로도 활동한 윤현숙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으며, 김현중은 서초구 방배동에서 카페를 운영 중이고, 신성빈은 분양 관련 일을 한다고 했다.

자신은 "2007년 '인간극장'에서 알려졌듯이 지금 19살 된 아들이 있는 싱글 대디"라며 "강남에서 클럽을 열어 성공했다가 망해보기도 하고, 부산 해운대에서 음식점도 경영하고 연예기획사를 꾸린 적도 있다. 지금은 투자 회사 임원으로 있으면서 공연 관련 일도 계획 중인데 여러 잡다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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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후 조진수와 나머지 멤버들 사이에는 서로 상처를 줬던 갈등이 아물지 않아 두터운 벽이 있었던 듯 보였다.

멤버들은 당시 조진수가 소속사 편에 서 자신들의 의견과 다르다고 여겼다. 불만을 표출하고자 1집으로 한창 인기를 누릴 때 황현민의 주도로 세 멤버가 대전엑스포 관련 방송을 '펑크' 냈고 한차례 해체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황현민과 조진수는 지난 2013년 EBS 프로그램을 통해 미얀마 여행을 떠나 화해를 시도했지만 이때도 온전히 서로를 품지 못했다. 황현민은 "정말로 울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그때 형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다섯 멤버가 진심으로 화해를 한 것 같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줬다.

"진수형과 미얀마에 다녀온 뒤 지난해 혼자 티베트에 다녀왔는데 그 누구도 미워하고 버릴 사람이 없단 걸 깨달았어요. 한 달 전 압구정동 카페에서 형을 만나 '죄송하다'고 말하자 형은 '너의 카카오스토리를 살펴보며 늘 소식을 궁금해했다'고 말하더군요. 다른 멤버들도 형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풀었어요."

사실 잼의 출발은 조진수와 당시 헤어숍을 운영하던 그의 친형 조남수 씨가 기획한 팀이었다. 처음 계획은 11인조로 꾸리는 것이었다. 미용실에서 거울을 보고 안무를 짜고 연습을 했다.

듀스의 김성재, 가수 출신 가방 디자이너 임상아, 노이즈의 김학규, 비비의 윤이지 등이 데뷔 전 이 팀에 연습하러 들어왔다가 나갔다고 한다.

"윤현숙 누나가 마지막에 들어와 최종적으로는 6명이 됐어요. 그런데 윤이지가 녹음까지 한 뒤 빠져 사실 1집에서 여자 파트는 현숙 누나와 윤이지 두 명의 목소리에요."

앨범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소속사가 없던 잼은 대성기획(현 DSP미디어의 전신)과 손을 잡고 데뷔하게 됐다.

이들의 인기는 바로 정점을 찍었다.

그는 "내 인생에 최고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데뷔 5개월 만에 무역센터 대서양관에서 첫 콘서트를 했는데 비가 어마어마하게 와 홍수가 날 정도였지만 2회 공연이 꽉 찼다. 무대 시작과 함께 다섯 멤버가 울고 있었다. 잊히지 않는다"고 기억했다.

"처음엔 신성빈이 인기가 있다가 나중엔 김현중 인기가 높았어요. 팬레터가 박스로 왔는데 현중이 편지가 압도적이었고 무대에서의 함성도 소리가 달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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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가요 프로그램 풍경도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가수가 되기 전부터 듀스의 김성재 형과 무척 친했어요. 저희보다 늦게 데뷔한 듀스가 방송 첫 무대를 할 때였는데 제가 그 무대 밑으로 들어갔죠. 방청객은 무대 밑에 있는 절 보고 소리를 질렀는데 방송에선 듀스를 보고 환호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형들 응원해주려고 들어갔다가 사장님한테 혼난 기억이 납니다. 하하."

그는 당시 함께 활동한 동료 중 1995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김성재, 2013년 사망한 그룹 투투·듀크 출신 김지훈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나타냈다.

그는 "함께 살다시피 한 성재 형은 자신의 음반 '땡스 투'에 늘 '동생 현민이'라고 써주곤 했다"며 "형이 떠난 후 가수를 그만둔 거나 다름없다. 지훈이도 내가 노래를 해달라고 하면 늘 불러줬는데 얼마 전 떠났다. 이들이 떠난 '그날'이 되면 여전히 마음이 짠하고 아프다"고 말했다.

3집 당시 이미 유부남이었던 황현민은 20대에 아빠가 됐고 이혼까지 경험해 잼 해체 이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1990년대는 가수가 된 건 축복이었지만 인생의 모든 사건 사고가 일어난 스펙터클한 때였다"며 "잼 해체 이후 모든 순간이 고비일 정도로 편한 상황이 없었다. 죽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들 생각을 했다. 지금은 책임감을 느끼며 실패한 이유를 피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터보와 S.E.S 멤버들이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한 무대에 선 것처럼 잼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지 묻자 "나도 우리 다섯 멤버가 한 무대에 서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 우리 멤버들이 어디에 있을 때 멋있는지 알아요. 저보다 멤버들이 무대에 서는 걸 보고 싶어요. 진수형이 노래할 때 멋있거든요. 훗날을 위해 각자 집에서 안무 연습 한번 해보라고 말했어요. 저도 10년 전부터는 노래방에 가면 혼자서 잼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추곤 합니다. 전 그들과 함께 할 때 가장 자신 있었던 것 같아요. 하하."

그는 지난 2007년에도 1990년대 콘서트를 기획한 적이 있는데 무산됐다며 "1990년대 가수들이 출연하는 뮤지컬로 동료들이 집이라고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는 기획을 하고 있다. 이 공연을 위해 예전에 대성기획에서 함께 있던 친구들을 먼저 모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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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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