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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판 '모뉴먼츠 맨', 필사적인 문화유산 보존 활동

송고시간2015-02-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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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의 문화유산 밀반출 막기 안간힘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터키와 시리아 국경에 자리 잡은 한 호텔 지하층 회의실에서 영화 '모뉴먼츠 맨'(Monuments men)의 주요 장면들을 방불케 하는 실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10일(현지시간) 시리아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고고학자들과 전문가들의 필사적인 문화유산 살리기 활동을 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로부터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 애쓴 '모뉴먼츠 맨'을 연상시키는 시리아판 '모뉴먼츠 맨'은 포격과 골동품 밀수꾼,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을 피해가며 지난 몇 달 동안 전쟁이 할퀴고 간 전국 각지를 누볐다.

고대 유물과 유적을 약탈자들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목적으로 고생을 무릅쓴 것이다.

미술역사학자들과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IS의 시리아 유물 밀반출이 지난 몇달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한다. IS에 의한 유물 약탈은 불도저를 동원하는 경우도 흔하다.

서방 정보기관에 따르면 유물 밀매는 석유에 이어 2번째로 큰 IS의 자금원이다.

보스턴 대학 고고학과의 마이클 단치 교수는 "애초 금전적 이득을 노린 산발적 절도에서 시작된 것이 지금은 테러 자금을 지원하는 조직적 국제사업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했다.

터키-시리아 국경의 호텔에 모인 사람들은 문화재 약탈에 대처하기 위한 연수를 받는 중이다. 강사들로부터 주요 유적지에 어떻게 접근해 남아있거나 사라진 것들을 기록에 남기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와 함께 약탈 위기에 놓인 유물들은 어떻게 숨기는지와 나중에 이를 쉽게 회수할 수 있도록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를 이용해 그 위치를 찾는 방법도 배우고 있다. 밀매상에게 넘어간 유물의 사진을 찍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는 수법도 교육 내용에 포함돼 있다.

고고학자 그룹의 리더는 다마스쿠스 대학 출신의 중견 학자로, 동료와 함께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다. 임무의 성격상 큰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문화유산을 나치독일로부터 지키기 위해 분투한 학자들의 비밀결사 '모뉴먼츠 맨'에 비유했다. 이들의 활약은 2014년 조지 클루니가 주연으로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상세히 묘사돼 있다.

2011년 발생한 시리아 내전은 지금까지 2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 인명 피해 못지 않게 문화적 손실도 엄청나다.

홈스와 알레포 같은 고대 도시는 잿더미가 되다시피 했다. 이 도시에 있던 로마와 그리스,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유적들이 전투와 약탈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로마 시대의 유물들이 가득한 이들리브 지역의 모자이크 박물관을 포함해 시리아의 일부 규모 있는 박물관들은 이미 약탈을 당하거나 당할 위기에 있다.

시리아와 접한 터키 남부의 시장마다 무덤에서 도난된 듯한 로마 시대의 도기들이 박스 채로 팔리고 있다.

남부 도시 가지안테프의 시장에서 만난 한 터키인 골동품상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커피잔, 오래된 동전과 조상 등등, 다수의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봐 왔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들은 소품을 팔려고 하지만 덩치가 큰 것은 도난당한 것이며 거액에 몰래 팔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시장 상인들은 소품들의 가격은 단돈 몇 달러에서 수천 달러에 이를 정도로 편차가 크다고 전했다. 문화재 전문가들과 미국 정부 관리들은 주변 지역 주민들은 물론 서방과 중국, 걸프 지역에서 온 투자자, 수집가들도 구매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시리아에서 수입된 것으로 신고된 물품의 액수는 2013년 134%가 늘어난 1천100만 달러였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미신고 물품의 액수는 이보다 수십배 높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 거래 규모는 정확히 추산하기가 불가능하지만 연간 1억 달러 수준을 웃돌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리아판 '모뉴먼츠 맨', 필사적인 문화유산 보존 활동 - 2

문화재 약탈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난 주요인은 IS의 득세다. 고고학자들과 관계 당국에서는 문화재 불법거래의 대부분은 IS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위성사진과 고고학자,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IS는 시리아의 인접국인 이라크에서도 놀랄만한 규모로 고대 유적지에 대한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고 있다. IS는 2천700년전 건설된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의 성벽 상당 부분을 파괴했다.

미국과학발전협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위성사진은 IS 대원들이 그들의 본거지인 락까의 유서깊은 건축물들을 얼마나 조직적으로 파괴, 약탈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에는 IS가 신성 모독이라고 간주하는 고대 신전들이 산재해 있다.

기원전 300년전 건설된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마리 주변은 현재 IS의 수중에 있다.. 이 곳에서는 지난 몇달 동안 무덤 도굴을 위해 1천300여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미국 쇼니 주립대학의 연구진들은 IS가 민간인들의 도굴을 부추기고 매매가 이뤄지면 이들로부터 20%의 세금을 거둬간다고 전했다. 터키의 국경도시 하타이에서 왔다는 유물 밀매상은 IS의 몇몇 분파들은 영토를 확장하면 당장 유물 거래를 통제하고 나선다고 전했다. 수지 맞는 장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로폴(유럽경찰기구) 부총장으로 일하다 현재 벨기에 연방경찰위원장을 맡고 있는 빌리 브루게만은 IS가 종래의 중개인들 대신 방대한 자체 조직망과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바이어들에게 직접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자메시지나 왓츠앱 메시징 서비스로 원매자들에게 사진들을 전송해 의사를 타진한다는 것이다.

쇼니주립대학의 시리아 유물 전문가인 암르 알 아즘은 몇몇 가치있는 유물이 약탈된 것보다는 약탈된 물량이 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약탈을 위해 유적을 파헤치는 행위 자체가 고고학적 의미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브루게만 위원장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교회와 고대 도시에서 극렬무장세력이 훔쳐간 유물 가운데 회수된 분량은 1% 도 안된다고 말했다.

IS만이 아니라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반정부 조직들도 가담할 만큼 유물 약탈은 흔한 일이 돼버렸다. 시리아판 '모뉴먼츠 맨'이 나서게 된 것은 바로 이런 현실 때문이다.

이 조직은 2012년 결성됐으며 비공식적으로 이들리브와 알레포 지역의 훼손된 유적지를 목록으로 만드는 것을 첫 사업으로 삼았다. 시리아 동료학자들은 물론 대학과 박물관, 정부 당국의 지인들을 규합했고 나중에는 유럽과 미국 전문가들도 고문으로 참여해 현재는 200명에 이르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다.

2차대전에 활동한 원조 '모뉴먼츠 맨'들과는 달리 재원이 부족하고 무장집단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들은 비무장 상태로 IS와 알누스라 전선, 자유시리아군, 시리아 정부군 등 온갖 무장세력들이 활개치는 지역들을 누빈다.

여행의 안전을 위해 지인과 정보원들은 물론 이들의 뜻에 동조하는 반군 지휘관, 밀매상들의 도움을 얻기도 한다. 시리아 정부가 반군 장악 지역의 통신회선을 끊어 전화연락은 극히 어렵다.

지난해 12월 비잔틴 제국 시대에 건설된 도시 세르질라와 알 바라에서 유적 파괴 현황을 사진에 담던 2명의 이 조직 회원 2명이 정부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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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판 '모뉴먼츠 맨'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촬영한 사진은 유럽의 고고학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되며 이들을 통해 현지의 사법기관에도 제보된다.

지난해 11월부터 터키-시리아 국경 지역의 호텔에서 이뤄지기 시작한 연수에는 당초 30명의 회원들이 초청을 받았으나 IS와의 전투가 발생하는 바람에 단 8명만이 참석할 수 있었다.

사흘간 이뤄지는 집중연수 과정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NGO) '평화를 위한 유산(HfP)'이 마련한 것이다. 강사진은 네덜란드군 중령으로 예편한 고고학자 르네 테이겔러가 이끌고 있고 연수 비용의 일부는 네덜란드 정부가 대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문화보존 작전을 벌인 바 있는 테이겔러는 "우리는 중립적이다. 우리는 적십자사의 행동준칙을 준수하며 협력하는 사람들을 매우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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