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푸틴 '정적' 넴초프, 크렘린궁 인근서 총격으로 사망(종합2보)

송고시간2015-02-28 22:58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야권 대규모 반정부 시위 앞두고 피살…"정치 살인 가능성"오바마 "잔혹한 살인" 비판…EU도 조속하고 공정한 수사 촉구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7일 저녁(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야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 크렘린궁 인근서 심장 등에 총탄 4발 맞고 즉사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이날 저녁 11시 40분(현지시간)께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동행 여성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맡은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살해 당시 넴초프와 함께 있었던 우크라이나 여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한편 사건 전후 넴초프의 통화 내용과 그의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마르킨은 "국내 정치 혼란 조장을 위한 도발,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넴초프는 사건 당일 크렘린궁 인근에 있는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나와 붉은광장 옆의 대형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사건 현장인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 남겨진 총탄을 볼 때 구경 9mm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계획적 범행으로 철저히 준비됐으며 장소 선택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수사 당국은 덧붙였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몇 달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 푸틴 "수사 당국 수장들 직접 챙기라"…야권 "정치적 보복"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공보수석)는 "푸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청부 살인이자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중대 범죄를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 경찰청 등의 수장들이 사건을 직접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도 "수사 당국이 이번 사건과 연관있는 모든 혐의자를 찾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야권은 즉각 이번 사건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규정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사건 소식이 알려지고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저명 여성 야권 운동가 이리나 하카마다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야만스런 도발이며 극악무도한 짓이자 유사 테러"라고 비난했다.

주요 야당인 '야블로코' 당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도 "최악의 범죄이며 할 말이 없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야권은 넴초프가 조직위원으로 참여했던 다음 달 1일 모스크바 남쪽 지역에서의 반정부 거리행진을 취소하고 대신 시내 중심가에서 추모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당국은 야권의 이 같은 행사 계획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 오바마 "잔혹한 살인"…우크라 대통령 "러-우크라 가교 붕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잔혹한 살인"이라고 비난하면서 러시아 정부가 신속하고 공정하며 투명한 수사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는 러시아의 부패에 맞선 넴초프의 용기있는 투쟁을 칭송하면서 그를 헌신적인 민권 수호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유럽연합(EU)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충격을 받았다"며 조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구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넴초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가교 역할을 해왔으며 그의 피살로 이 다리가 붕괴됐다"면서 "이는 우연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넴초프는 지난 2005년부터 한동안 개혁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의 비상임 고문을 지낸 바 있으며,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 교체 혁명도 지지했었다.

러시아 중부 니제고로드스크주(州) 출신으로 친서방 개혁 성향이 강했던 넴초프는 한때 러시아의 첫 번째 선출직 대통령인 옐친의 잠재적 후계자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2000년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야권 지도자로 변신, 푸틴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정부 운동을 이끌어 왔다.

cjyou@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