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이 4일 일본 도쿄도(東京都) 자택에서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때 벌어진 한인 학살 관련 연구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sewonlee@yna.co.kr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대표적인 재일 한국인 사학자 1세대인 강덕상(83)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은 수교 50주년을 맞아 어려운 상태에 빠진 한일 관계를 회복하는 열쇠로 역사 교육을 꼽았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한 것은 정치의 영향도 있으나 일본인들이 한일 관계의 역사에 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강 관장은 한국 정부가 급하게 관계를 개선하려고 역사 인식에 관한 원칙을 훼손하기보다는 지금처럼 의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음은 강 관장과의 문답.
-- 재일한국인 2세로서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는 감상은.
▲ 최악이다. 전쟁 직후에도 최악이었지만 점점 좋아진다는 느낌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1970·1980년대 재일 한국·조선인의 인권을 생각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결국 지문 날인이 철폐됐다. 무라야마(村山)담화(1995년)도 나왔다. 그러나 담화가 내용대로 효과를 다 낸 것은 아니었다. 최근 일본은 점점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에는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것 같다.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일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특히 동일본대지진 이후에 이른바 '혐한'(嫌韓) 붐이 일어나고 서점에 한국을 비난하는 잡지가 쌓였다. 게다가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혐오 발언·시위)가 확산했다. 식민지배에 대한 평가를 역사가에게 맡겨야 하고,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식의 일본 총리 발언이 태연하게 보도되고 있다. 신주쿠의 신오쿠보(新大久保) 일대는 일본의 '리틀 서울'로 알려져 한때 많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지금은 한산하다. 이런 문제가 한국이 아니라 바로 일본에서 시작됐다. 최근 나에 관해 모르고 말을 걸어온 일본인이 있었다. 얘기 도중에 헤이트 스피치 문제가 나왔다. 또 '그렇게 원조를 많이 해줬는데 고맙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한다. 이런 나라가 옆에 있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고 했다. 내가 어릴 적에 '한국인은 더럽다. 저 아이와 놀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것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 국가의 정책이 변하면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따라 흘러간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이에 관해 일본인에게 어떻게 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 다른 나라가 일본의 나아갈 방향에 관해서 얘기해도 소용없다는 것인가.
▲ 모두 그렇다. 한국이 한국에서 수교 50주년, 전후 70주년이라며 한일 관계를 좋게 하는 하나의 계기로 삼자고 말하지만, 이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말로만 해봐야 어떤 실체도 없다.
-- 헤이트 스피치가 일본 내 극히 일부 세력의 문제라는 견해도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 3월 1일에 도쿄의 긴자(銀座)에서 헤이트 스피치 대집회가 있었다. 조선 민족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세계에 선전한 날이다. 그날 긴자에서 헤이트 스피치 대집회가 열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나. 누가 트럭으로 쾅쾅 경적을 울리는 야쿠자 같은 무리의 생활을 보장하고 있을까. 트럭을 동원하는 것, 사람을 동원하는 것은 돈이 든다. 어디서 돈이 나오는 것일까. 일본 사회의 어딘가가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뒤에 있는 단체가 일본회의라고 생각한다. 지금 아베 정권의 각료 대부분은 일본회의 소속이다. 그것은 단순한 보수정권이 아니다. 완전한 극우정권이다. 토대가 흔들리는 가운데 무슨 미래지향을 생각하겠나.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일본인 자신들이다.
-- 한일 갈등의 이유는 정치에 있나.
▲ 물론 정치에 있지만 동시에 일본 국민이 한일 관계, 특히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약 150년간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요약하면 역사 인식의 문제다. 일본의 관방장관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 이는 한국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대(大)테러리스트다.
-- 역사 인식 문제에서 눈여겨볼 것이 있나.
▲ 한일 관계 50년 가운데 약 20년간 서로 많이 왕래했다. 일본에서 한류가 생기고 한국에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아갔다. 이런 관계가 가능했던 것은 역시 무라야마 담화(1995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이 국책의 잘못, 식민지배로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한 걸음 나아간 역사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역사 인식이 제대로 돼 있다면 정치가가 침범할 수 없다. 일본인을 가장 움직이기 쉬운 것은 한국 문제다. 예를 들어 일본이 미국과의 관계를 바꾸려고 한다고 해서 '미국인 돌아가라'는 헤이트 스피치가 일어나겠나.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이 미·일 관계의 역사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선전하더라도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라야마담화라는 것은 쌍방의 정치인이 지혜를 모아 합의한 국제적인 공동의 토대다. 거기서 나중에 한일의 친선이 나온다. 그런데 한쪽이 이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면 건물을 짓지 못하고 토대가 무너진다. 그러면 미래 지향이 있겠는가.
-- 무라야마담화가 발표됐을 때는 일본이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고 보는 세력이 강했을 텐데 이에 대해 일본회의 같은 이들이 반동한 것인가.
▲ (과거를 반성하자는 것에 대해)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이라는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종교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일본회의인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이가 희망을 지닐 수 없게 돼 국내에서 불만이 고조했다. 그래서 국민에게 애국심을 심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를 위해 적을 만들어야 했고 그 적이 조선인, 한국인, 중국인인 셈이다. 그것이 헤이트 스피치로 이어지고 이는 일본회의의 작전으로 볼 수 있다. 왜 야스쿠니신사가 큰 문제가 되겠는가. 그곳은 메이지(明治)시대 이후 일본의 '천황'(일왕)이 세계를 침략할 때 죽은 사람을 제사지내는 장소다. 독일에서 야스쿠니 신사의 유슈칸(遊就館, 전쟁박물관)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떻게 되겠느냐. 히틀러를 제사 지내고 그곳을 총리가 방문하면 어떻겠냐. 독일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독일은 전후에 철저하게 과거를 반성했으며 그런 것(전범 미화 등)을 허용하지 않는 법률이 만들어져 있다.
-- 한일 갈등이 갑자기 심화한 이유는.
▲ 일본회의나 일본 보수층이 긴장하게 된 가장 큰 사건은 재일 한국·조선인이 지방참정권을 요구한 것이다. 일본에 정착해 세금을 내고 있으므로 지역의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지와 같은, 국가가 아닌 지방 의회 수준의 문제는 의견을 얘기할 수 있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회의 등을 자극했다. 교과서에 위안부가 나오는 것은 나라 역사의 수치라며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지방의회에서부터 점점 공격해 올라왔다.
-- 문제의 해결이 역사 인식, 즉 교육에 있다고 본다면 일본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 자신들의 과거를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청일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일본 병사나 청나라 병사보다 한국인이 더 많이 죽었다. 러일 전쟁으로 일본은 세계 5개 강국의 하나가 됐지만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또 역사 교육을 바꾸겠다거나 식민지배를 역사가가 판단한다거나 하는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런 얘기를 함으로써 일본 보수층의 일정한 지지를 얻고 지금 그렇게 거만하게 굴고 있다. 나는 일본인이라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의 보수 정치가 중에도 훌륭한 사람은 아주 많다.
-- 한국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또 아베 총리가 올해 여름 발표할 70년 담화는 일본의 미래를 생각할 때 어떤 내용이 돼야 하는가.
▲ 한국은 무라야마 담화를 기초로 해서 오늘까지 왔으며 무라야마 담화를 훼손한 적이 없다. 나는 지금 (한일 관계에서) 한국 대통령의 태도가 현재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한다. 담화에 관해서는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그것은 일본인이 생각할 일이며 한국 정부는 지금처럼 의연하게 하면 된다. 일본에 아첨할 필요도 없으며 허들을 낮출 필요도 없다.
-- 지금이 50주년이라는 이유로 원칙을 바꾸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인가.
▲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이보다 더 나빠질 수도 없다. 50년, 70년을 미래지향으로 생각하려면 먼저 토대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토대가 흔들리는 미래는 없다. 우리가 타협할 것은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속국은 아니기 때문이다.
-- 양국 간 가장 어려운 사안이라 할 수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피해자가 점점 세상을 떠나는 상황이다.
▲ 일본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이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피해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미래에는 절대 반복되면 안 된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역사 교과서에 기록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면 좋겠다. 그러나 아마도 지금 정세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베 정권은 무너질 것이므로.
-- 한일 간에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자는 의견에 관해서는.
▲ 나는 정치를 모른다. 지금 (한일) 관계를 가장 난처해하는 것은 미국이다. 한국은 그것을 잘 인식하고 미국에 일본 쪽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미국도 일본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둘이 나뉘면 미국으로서도 극동정책을 꾸려갈 수 없다. 한일 관계에서 거래하는 것보다는 미국에 맡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문제 됐을 때도 미국이 성명을 내고 나니 일본이 심각성을 인식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위안부 문제도 그렇다. 역사 인식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것은 전후 국제사회의 이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을 전후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한 반파시즘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일본 측이 바꾸려고 하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바꾸는 것이 된다. 그것을 미국은 용납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한국의 역사 교육이나 인식에 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 재일 한국·조선인에 관해 더 가르쳤으면 좋겠다. 세계에 여러 국가에 한국인이 많이 있지만, 재일동포처럼 남북 분단의 괴로움을 견디고 전후 모국의 역사와 같은 길을 걸은 재외 교포는 없다. 우리는 식민지시대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다. 끌려왔거나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려고 왔다. 그리고 한국의 전후 문제에 가장 관심을 지녔다. 재외동포, 특히 재일동포는 조국의 번영이 있어야만 일본에서 존중받는다. 나는 줄곧 한국인으로 살았지만 그래서 일본에서 얻은 것은 없다. 취직에서 차별받고 뒤에서 손가락질당하고 '저놈들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또 경찰이 항상 주변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재일 한국·조선인 1·2세의 공통된 경험이다.
-- 머지않아 있을 일본의 교과서 검정에 관한 전망은.
▲ 아마도 (책에서) 위안부(관련 내용)가 없어지지 않겠나.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출판사가 위축해 스스로 규제하고 만다. 교과서를 채택하는 교육위원회는 역시 정부 측이므로 집필자가 양심적으로 써도 채택되지 않으면 출판사는 적자를 본다. 결국, 그만두게 되고 그런 형태로 점점 소수자가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된다. 10∼20년 전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신문에 투고하거나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없다. 인터넷의 영향 때문이다. '너 죽인다. 두 번 다시 그런 것을 말하지 마라'고 멋대로 인터넷에 글이 올라오면 심리적인 위압이 된다. 나에게도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눈도 깜짝 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다.
※ 강덕상 = 1932년 한국 경남 함양 출생. 두살 때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이주했고 약 80년에 걸친 일본 생활에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재일 한국인으로서 차별과 핍박을 온몸으로 겪었다.
강 관장은 와세다(早稻田)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메이지(明治)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히토쓰바시(一橋)대 교수를 역임했고 시가(滋賀)현립대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문제 등을 연구했으며 '간토대지진'(1975), '조선독립운동의 군상'(1984), '여운형 평전1, 조선 3·1 독립운동'(2002), '여운형 평전2, 상해임시정부'(2005), '목판화 속 조선과 중국'(2007) 등을 썼다. (취재보조: 이와이 리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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