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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끼리 정하는 '죄와 벌'…가정법원 청소년 참여법정

송고시간2015-04-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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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3병 훔친 10대 '후회하는 일 적어 냉장고에 붙이기' 처분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13일 오후 2시30분 서울가정법원 106호 법정.

앳된 얼굴의 학생 8명이 법복을 입고 '청소년 참여인단'이란 푯말이 붙은 책상에 앉았다. 이들은 법정 입구 쪽에 앉은 또래 비행 소년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절도 후 잡혔을 때 후회하는 감정이 들었습니까?"

"그날 이후로 매일 매일 일어날 때마다…"

"다음번에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억누를 수 있습니까?"

"다시는 이런 일을 안 하기로 했으니 오늘을 생각하며 억제할 수 있습니다."

비행 소년이 퇴장하자 참여인단 학생들은 소년에게 내릴 이행과제를 하나씩 건의했다. "가족과 교환일기를 쓰라 하자", "형사법정을 방청하고 소감문을 내라 하자" 등 다양한 방안이 오갔다.

이들은 약 45분간 논의 끝에 소년에게 총 3가지 과제를 내렸다. 판사가 이를 승인하고 소년이 잘 이행하면 소년은 재판에 넘겨지지 않고 사건이 종료된다. 말 그대로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이다.

이날 가정법원이 언론에 공개한 '청소년 참여법정'은 이렇게 정식 재판 전 청소년들이 직접 또래 비행 소년의 처분을 건의하는 제도다.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비행 청소년을 위해 가정법원이 2010년 시작했다.

죄를 지었다고 무조건 처벌하기보단 또래 학생의 눈높이에 적합한 교정 과제를 정해 교화하려는 목적이다. 이를 끝낸 비행 소년은 다시 나쁜 짓을 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 판사가 '심리 불개시'(재판을 하지 않음) 결정을 내린다.

참여인단 학생은 학교를 통해 선정된 서울 시내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으로 한 사건에 5∼9명씩 들어간다. 스스로 참여인단 재판을 받은 비행 청소년이 다른 재판의 참여인단으로 참석하기도 한다.

이들이 이날 심리한 소년은 친구와 함께 맥주 3병을 훔치고 길에 있는 자전거 자물쇠를 돌로 부수려 한 혐의로 법정에 왔다. 참여인단은 소년이 '부모에게 대견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답한 점을 들어 가족과의 관계 개선 과제들을 건의했다.

가정법원 소년2단독 엄기표 판사는 이에 소년에게 6월까지 ▲ 자기관찰 보고서·인생설계도 작성(4시간) ▲ 후회하는 일·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적어 냉장고에 붙이기(4시간) ▲인터넷 중독 예방 교육(2시간) 등 과제 5개를 내렸다.

이를 적절히 이행하면 소년은 죄를 씻는다.

가정법원은 지난해 이 제도로 심리불개시 결정 86건을 내렸다. 매년 비행 청소년 80~110여 명이 이런 기회를 얻는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소년보호 재판을 형벌이 아닌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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