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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추첨식 징병 스크린에 옮긴 한국계 미국인 감독

송고시간2015-05-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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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표 감독 '체커게임에서 이기는 방법' 전주영화제 초청

(전주=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한데 모여 기다리던 태국 청년들이 하나씩 호명되면 앞으로 나가 제비를 뽑는다.

'검은색' 또는 '빨간색'을 외칠 때마다 청년들과 주변을 둘러싼 친지들의 환호성이 터지거나 탄식이 흘러나온다.

신체검사를 통과한 남성을 대상으로 추첨하는 태국의 징병 현장이다.

한국계 미국인 조시 김(한국명 김준표) 감독은 이를 소재로 한 장편 극 영화 '체커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만들었다.

그는 이 영화로 올해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은 데 이어 전주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스케이프-스펙트럼' 부문에 초청돼 전주를 찾았다.

2일 저녁 영화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 참석한 김 감독은 "미국은 모병제, 한국은 징병제인데 태국은 그 중간쯤"이라며 "복권은 뽑으면 좋은 거지만, 이건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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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영화를 찍으려 태국어를 6개월간 매일 4시간씩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대본이 태국어로 쓰였고 배우와도 태국어로 대화해야 했는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도움을 줬다"며 "2주간 오디션 과정에 배우들이 대사를 하는 것을 보며 시나리오를 고쳐 쓰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태국의 병역제도를 소재로 삼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주제는 한 남자의 삶을 지배하는 어릴 적 형제관계와 체커게임에서 항상 이기는 방법에 빗댄 세상의 잔혹한 현실이다.

김 감독은 당초 생각했던 영화 제목은 '드래프트 데이(Draft Day·선발일)'였지만, 본질적인 주제를 생각해 바꾸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어른이 된다는 건 희생하고 포기를 해야 하는 일이지 않나"며 "체커게임을 하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청년 에익과 어린 동생 오트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친척 집에 얹혀산다. 에익은 생계를 위해 남성 매춘부 술집에서 일하지만 집안이 부유한 동성 연인 제이가 있다. 에익과 제이의 징병 추첨일이 다가오며 긴장감이 높아진다.

영화는 이 과정을 오트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려낸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란 김 감독은 자신에게도 형이 있어 현실적인 형제 관계란 어떤지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렸을 때 형과 부모님이 어른들만의 얘기를 할 때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도록 한국말로 했던 기억이 난다"며 "형이란 동생한테 친절할 때도 있다가, 갑자기 괴물처럼 굴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고 밝힌 한 관객이 제작비를 궁금해하자 김 감독은 "몇 년 전 내가 꼭 그런 질문을 하는 처지였다"며 성의껏 답했다.

그는 "35만달러가 들었다"며 "친구들이 15만달러를 해줬는데 주위에서 그걸로는 어림없다고 말리기에 '한국에 있는 아파트 전세를 빼서라도 만들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화를 하는 데 금전적으로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정말 어려운 문제"라며 "나는 영화 만드는 3년간 아무런 소득이 없었지만, 부모님과 친구들 도움으로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2일 입장권이 매진될 만큼 영화팬들의 관심을 끌었고 6일과 8일 상영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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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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