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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이 어디서 임신을…' 법원서 드러난 인권 유린

송고시간2015-05-2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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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이라는 이유만으로…수십년째 계속된 소록도 비극강제단종 피해자 500여명 국가상대 소송 5건 진행중

물 마시는 한센인(연합뉴스 자료사진)

물 마시는 한센인(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1978년 국립 소록도병원에서 격리 생활을 하던 한센인 박모씨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병원에서 만난 한센인 남편과의 사랑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병원은 박씨의 임신 사실을 문제 삼았다. '한센인이 어디서 임신을…'이라며 병원 직원들은 박씨를 수술실로 데려갔다. 박씨는 강제로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남편 역시 정관수술을 받았다. 그때 박씨의 나이는 27세였다.

박씨는 35년 후인 2013년 뱃속 아이를 앗아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다른 한센인 피해자 18명과 함께였다. 법원은 국가가 반인륜적 행위를 했다며 박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배상은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 폭행·협박 동원해 뱃속 아이 강제낙태한 소록도

27일 서울중앙지법 등에 따르면 박씨와 같은 한센인 강제단종 피해자 500여 명은 현재 전국 법원에서 국가상대 소송 5건을 진행 중이다. 이 중 1심 선고가 난 3건의 판결문을 보면 한센인들이 겪어야 했던 인권 침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록도에 격리수용됐던 한센인 백모씨는 1967년 20세의 나이로 임신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기였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원장의 지시에 따라 임신 8개월이던 백씨는 강제로 아이를 잃었다.

1962년 소록도에 강제로 끌려온 이모씨는 1967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임신했다. 병원 측은 낙태를 강요했고 이씨는 과거 병원 직원에게 폭행을 당한 기억에 반항할 수 없었다. 이씨는 이듬해 다시 임신을 했지만 결국 이 아이 역시 유산당했다.

방모씨의 경우 이름도 모르는 남자 의사에게 수술실에서 낙태를 당했다. 당시 부지기수로 있던 일이었다. 몰래 임신을 해 출산했다가 병원 측에 걸려 일주일 동안 지하실에 구금당한 피해자도 있었다. 그는 주먹으로 수도 없이 구타당했다.

한센인 남성 역시 수술칼을 피하지 못했다. 강모씨는 '결혼을 하려면 단종해야 한다'는 이유로 1976년 소록도에서 강제 정관수술을 받았다. 고모씨는 1972년 소록도에서 수술을 받고 그 후 넉달간 이유없이 감금돼 곡괭이 등으로 폭행당했다.

소록도 한센인들(연합뉴스 자료사진)

소록도 한센인들(연합뉴스 자료사진)

1974년 39세의 나이로 소록도에 들어왔다가 '젊기 때문에 여성을 임신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수술을 받은 남성도 있었다. 소록도의 이러한 비극은 별다른 법적 근거도 없이 1980∼1990년대까지 계속됐다.

◇ '배상하라' 판결에도 끝나지 않는 법정다툼

국내에서 한센인에 대한 강제 단종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여수에서부터다. 소록도에서는 1936년 부부 동거의 조건으로 단종수술을 내걸었다. 거부할 경우 폭행과 협박, 감금 등이 따라왔다.

1964년 정부는 한센인 단종수술에 본인 동의를 얻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명목상의 동의였을 뿐 강제성은 여전했다. 부득이하게 출산을 했을 때는 분만 즉시 아기를 떼어놨다. 아이는 부모 얼굴을 볼 새도 없이 영아원으로 보내졌다.

물론 낙태를 거부하고 부부가 함께 격리시설 밖으로 나가서 사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이는 자살과 같았다. 밖에선 한센인을 습격·살해하는 등 혐오범죄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살려면 격리시설에 남을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현재 정부는 한센인들의 국가 상대 소송에서 "수술은 모두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았던 것"이라며 주장하고 있다. 또 그 당시 의료수준을 고려할 때 국가로서 전염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원은 그간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소록도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한센인이 수술에 동의했었다고 해도 이는 진정한 의미의 동의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법원은 또 한센병이 1960년대 이후 완치가 가능해지고 전염성이 낮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격리정책을 계속한 것도 부당하다고 봤다. 한센인 임신중절 수술은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됐다. 소록도의 임신·출산금지 규정은 2002년에야 폐지됐다.

이달 20일 한센인의 국가 상대 소송 1심 선고를 한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김종원 부장판사)는 "한센인의 본질적 욕구와 천부적 권리에 대해 합리적 대책 없이 전면적 출산금지 정책을 유지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가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동조했다"며 정관수술 피해자에게 3천만원, 강제낙태 피해자에게 4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앞선 판결에 대해서와 같이 재판부에 불복하고 항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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