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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르포> "한달전 심은 모, 자라지 않아…농사 절반은 망친 셈"

송고시간2015-06-1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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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량 예년 3분의 2…경기 포천 영북면 자일리를 가다"농사엔 때가 있는데...관정 설치 행정절차 너무 복잡"

목 마른 대지
목 마른 대지

(포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가뭄이 심한 중부지방의 올해 장마가 예년보다 늦어질 것으로 전망돼 가뭄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14일 경기도 포천시 자일리 갈라진 논의 모습. 2015.6.16
andphotodo@yna.co.kr

(포천=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모를 낸 지 한 달이 넘었건만 모들은 자랄 줄을 몰랐다. 지독한 가뭄에 땅이 말라붙은 탓이었다. 쩍쩍 갈라진 논 뺨 사이로 이젠 잡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낮 경기북부지역에서 가뭄 피해가 유독 심각하다는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를 찾았다. 마을에 있는 강포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 별 수 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농민들이 있다고 했다.

<가뭄 르포> "한달전 심은 모, 자라지 않아…농사 절반은 망친 셈" - 2

동네 어귀에서 만난 장덕환(60)씨는 "여기서 태어나 내리 농사를 지어왔는데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고 운을 뗐다.

장씨는 "새벽에 비가 좀 왔는데도 논에 물이 안 보이지 않느냐"면서 "처음엔 모들이 못 자랄까 걱정이었는데 이젠 이대로 다 말라죽을까 잠이 오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장씨 말마따나 간밤에 찾아온 비 손님은 아쉬움만을 남겼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영북면에 내린 비의 양은 겨우 9.5㎜를 기록했다. 평소 강수량을 따라잡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말라버린 저수지
말라버린 저수지

(포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가뭄이 심한 중부지방의 올해 장마가 예년보다 늦어질 것으로 전망돼 가뭄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14일 경기도 포천시 자일리 강포저수지가 마른 모습. 2015.6.16
andphotodo@yna.co.kr

포천시의 1∼5월 예년 강수량은 192.3㎜. 같은 기간 올해는 123.5㎜의 비가 내렸다. 68.8㎜가 덜 왔으니 3분의 1이 줄어든 격이다.

특히 지금처럼 땅속 깊이까지 메마른 때라면 적어도 50㎜ 이상은 시원하게 퍼부어야 해갈에 도움이 된다는게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장씨 부부는 올해 들어 가뭄이 심해 모내기도 지난달에서야 겨우 마쳤다.

키가 채 20cm가 안 되는 성긴 모 포기를 장씨의 아내 김현숙(54)씨가 한 손으로 쥐어 보였다.

김씨는 "원래라면 손 한 줌에 가득 찰 만큼 모가 새끼를 쳐야 하는데, 이건 처음 심은 그대로"라면서 "올해 벼농사는 이미 절반은 그른 꼴"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내기 후 상황이 악화하기만 하자 시 당국은 관정(管井)을 놔주겠다고 했는데 그 일도 간단치가 않았다. 관정은 땅 속 깊이 구멍을 파 지하수를 모으고 끌어올려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수리(水利)시설이다.

'너무 말랐네'
'너무 말랐네'

(포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가뭄이 심한 중부지방의 올해 장마가 예년보다 늦어질 것으로 전망돼 가뭄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14일 경기도 포천시 자일리 강포저수지에서 낚시꾼이 물고기를 찾는 모습. 2015.6.16
andphotodo@yna.co.kr

장씨 부부는 면적이 약 7천600㎡(2천300평) 되는 땅에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데 땅 명의가 장씨와 형제·자매들로 나뉘어 있다 보니 땅 주인을 증명하는 서류가 하나하나 다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에, 부산에 각기 떨어져 사는 형제에게 일일이 연락을 해 증명서류를 다 받아오려니 일이 복잡해졌다.

장씨는 "정부에서는 다른 것 말고 이런 절차라도 좀 간소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답답한 마음에 얼굴을 찌푸린 그는 "농사는 때가 있는 것인데 이렇게 다 따르다 보면 때를 놓칠 수밖에 없지않냐"고 토로했다.

말라버린 하천
말라버린 하천

(포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가뭄이 심한 중부지방의 올해 장마가 예년보다 늦어질 것으로 전망돼 가뭄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14일 경기도 포천시 자일리에서 하천이 마르면서 다리와 나란히 길이 난 모습. 2015.6.16
andphotodo@yna.co.kr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관정을 놓고 나서 애먼 땅주인이 뒤늦게 항의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말하자면 행정의 '묘'를 좀 살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최대한 신속하게 지원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성산이 내려앉은 마을을 돌아 강포저수지에 가봤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는 새벽에 내린 비로 흙이 젖어 있어 흡사 개펄 같은 모습이다.

저수지에 물이 없으니 수문(水門)은 다 소용 없다. 도리가 없어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던 농민들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었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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