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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르포> "하늘만 쳐다보다 농사 포기할 판"

송고시간2015-06-1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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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바닥 갈라지고, 밭작물 타들어가고, 제한급수 늘고 "새끼 같은 이 것들을"…경북북부 농민들 한숨

바싹 마른 마늘밭
바싹 마른 마늘밭


(의성=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계속된 가뭄으로 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의 한 마늘밭이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짝 말랐다. 2015.6.16
leeki@yna.co.kr

(안동=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비 같은 비가 내린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농사 포기해야 합니까?"

경북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 속칭 대밭골에서 농사를 짓는 권기원(65)씨는 모내기를 마친 논만 보면 한숨만 나온다. 지난달 중순께 모내기를 한 9천여㎡ 논에는 물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모가 모두 말라죽기 직전이다.

지난 13일 오후 몇 분 동안 소나기가 내렸으나 해갈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논 바닥은 쩍쩍 갈라졌다. 일부 논에는 바람만 불어도 흙먼지가 날릴 만큼 물기가 말랐다.

비슷한 시기 모종을 심은 9천여㎡의 고추밭도 비슷한 상황이다. 매일 온갖 수단을 동원에 고추 모종에다 물을 대고 있지만 계속 시들어 간다.

장마 때가 다가오지만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물대기 작업으로 피로감은 날이 갈수록 쌓여간다.

올해 농사를 그만 포기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들 정도이다.

그러나 권씨는 "새끼 같은 이 것들을…"이라고 되뇌며 물 대기를 계속했다. 이미 모내기와 파종을 마친 벼와 고추는 어떻게 해서든 수확은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물을 대고는 있지만…'
'물을 대고는 있지만…'

(안동=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경북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의 한 논에 양수기를 이용해 물이 공급되고 있다. 이 지역 농민들은 하루 빨리 비가 오지 않으면 모든 농사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2015.6.16
leeki@yna.co.kr

권씨는 예년 같았으면 모내기를 한 뒤 콩·수수 등 작물도 파종했다. 그러나 올해는 쌀과 고추 농사에 집중하고 나머지 작물은 포기하려고 한다고 했다.

날마다 아침 논과 밭 주변에 있는 지하수 관정에 양수기를 연결해 물을 퍼올리고 있지만 물은 턱없이 부족하다.

예년에는 한낮 땡볕더위를 피해 이웃한 논과 밭의 농민들과 그늘에 모여 함께 새참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며 피로를 잊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광경은 찾아볼 수 없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농작물에 주려고 쉬는 것을 잊은지 오래됐다.

가뭄이 심해지자 권씨는 처음에 1대만 가동하던 양수기를 이제 3대로 늘렸다. 관정 수위가 낮아지고 물을 공급해야하는 농지 면적이 늘어 양수기 3대를 릴레이 형식으로 연결해야만 그럭저럭 물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다리던 비가 오기 전에 관정이 말라붙을 것만 같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경북 북부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많은 농민은 권씨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찾은 안동시 북후면의 농촌마을. 마을 앞의 논들은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갈라진 잿빛 논바닥에 말라죽기 직전의 모가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논 주인은 빨리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지 마른 논에 물대는 것도 포기한 듯했다.

낙동강 수계의 가뭄으로 경북을 대표하는 안동호와 임하호도 상류지역에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낙동강을 따라 있는 농가 대부분이 농사를 포기해야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갈라진 잿빛 논바닥
갈라진 잿빛 논바닥


(안동=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경북 안동시 북후면에 모내기를 마친 논이 잿빛으로 메말라 있다. 물기라고는 찾기 힘든 이 논의 바닥은 소규모 지진이 난 것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2015.6.16
leeki@yna.co.kr

가뭄과 싸움은 경북북부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고 있다. 울진군, 봉화군 등에서는 사람이 먹을 물이 부족한 곳도 생겼다.

5월말 기준으로 지난 30년 평균 강수량이 383㎜인 울진에는 올해는 174㎜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울진군 북면 덕구 2리, 쌍전 1리, 기성면 황보 2리 등에 사는 30여가구는 매일 10t씩 비상급수를 받고 있다.

울진읍, 금강송면 등 주민들은 용수부족을 해결하려고 최근 관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또 울진읍, 죽변면 등은 15일부터 하루 4시 30분씩 단수에 들어갔다. 울진군은 단수로 지역 주민 7천가구 2만2천여명이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봉화군 석포면 주민들도 지난달말부터 하루 2차례씩 마을을 찾는 소방차에서 생활용수를 받아 사용하고 있다.

봉화군은 산간지역인 탓에 천수답이 많아 다른 지역보다 가뭄 피해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심각한 용수부족으로 모내기가 어렵게 된 상운면 주민들은 인접한 영주시 평은면에서 물을 얻어 쓰기로 했다.

주민들은 영주시 평은면에 설치된 집수정에서 물을 끌어울 수있도록 200m 규모의 관로를 묻는 공사를 했다.

예천군의 한 마을에는 하천을 흐르던 물이 모두 말라 모내기를 하지 못한 집이 한 집 건너 한 집인 곳도 있다.

스프링클러까지 동원하지만
스프링클러까지 동원하지만

(안동=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의 한 감자밭에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리고 있다. 2015.6.16 <<안동시농업기술센터 이용덕 지도사 제공>>
leeki@yna.co.kr

게다가 고추, 담배 등 밭작물도 시들음 피해가 발생하는 등 타들어갈 조짐이다. 경북도내 농작물 시들음 피해 면적은 463㏊에 이른다. 이 가운데 벼 151㏊, 고추 85㏊, 담배 36㏊, 기타 175㏊ 등이다.

지역별로는 안동이 180㏊로 가장 많고 영주 104㏊, 울진 85㏊, 예천 23㏊ 등이다.

안동시를 기준으로 의성군, 군위군 등 남쪽지역은 그나마 안동이나 봉화보다는 가뭄에 따른 고통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이 지역 농민들도 물이 부족해 올해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이다.

15일 오전 찾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와 봉양면 문흥리. 낙동강 지류인 소하천을 끼고 있어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 농업용수 공급이 원활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수확을 앞둔 마늘밭과 이미 마늘 수확을 마치고 모내기를 한 논이 섞여 눈에 들어왔다.

논두렁을 따라 만든 콘크리트 농수로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흐르는 물의 양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농부들은 전했다.

이곳에서도 이미 모내기를 한 농부들은 그나마 한 걱정을 덜었다. 그렇지 않은 논 주인은 여름 농사 걱정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문흥리 마늘밭에서 만난 한 70대 농부는 "3∼4월에는 그래도 가끔 비가 와 마늘농사는 그럭저럭 마쳤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며 "빨리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확보하지 못해 모내기를 포기하거나 모내기를 했더라도 모가 말라죽는 논이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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