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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한달> ③ 순식간에 전국으로…원인 3종 세트

송고시간2015-06-18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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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병원명 공개'…초기 환자들 전국에 전파한국 특유의 응급실·병문안·간병 문화…병원내 감염 취약중앙정부-지자체 불협화음…지방 자원 활용 못해

<메르스 한달> ③ 순식간에 전국으로…원인 3종 세트 - 1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지난달 20일 국내 첫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방역 당국은 '국내에서 메르스 대유행은 없다'는 예측을 내놨다.

메르스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중동보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수준이 높아서 전체 사회를 뒤흔들만한 심각한 전파는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에 기댄 것이다.

방역 당국의 '장밋빛 기대'는 10일도 지나지 않아 무참히 깨졌고 메르스 환자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메르스 사태가 한달이 지나도록 수습이 되지 못한 것은 '정보 공개'를 둘러싼 정부의 오판, 한국의 특수한 의료 체계에 대한 미흡한 분석, 손발이 맞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 한발 늦은 정보 공개…환자들 전국으로 퍼져 '통제 역부족'

메르스 확진 환자가 처음으로 발생한 지난 20일부터 대중과 언론의 관심은 '환자가 다녀간 병원은 어디인가' 였다.

그러나 방역 당국은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다'며 병원명 공개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한발 늦은 정보 공개의 허점이 처음으로 드러난 시점은 지난달 28일 1번 환자(68)와 같은 병실을 사용하지 않았던 71세 남성이 6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로 판정을 받은 때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지 않은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되자 정부와 전문가들은 허둥대기 시작했고 그 순간에도 평택성모병원을 이용한 환자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채 퇴원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16번 환자(40)는 평택성모병원에서 퇴원한 후 대전의 대청병원과 건양대학교 병원에 입원했고 14번 환자(35)는 평택 굿모닝 병원을 거쳐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1번 환자가 입원한 평택성모병원에 있던 52번 환자는 당국의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한 채 고향인 전북 순창으로 내려가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국에서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속속 확인됐지만 지난 2일까지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메르스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며 병원명 미공개에 따른 고민은 조금도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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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성모병원 이름을 공개한 전날인 4일까지도 복지부는 "병원명 공개 불가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재차 밝혔다.

복지부의 확고한 입장은 다음날 '평택성모병원 방문자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손바닥 뒤집듯 변했고 여론에 떠밀리듯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명을 7일 전부 공개했지만 이미 메르스 환자의 이동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른 뒤였다.

뒤늦은 병원명 공개와 미진한 환자 추적으로 메르스 환자는 수도권은 물론 전국으로 흩어졌고 이는 결국 대한민국 전체가 메르스 불안감에 휩싸이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었다.

◇ 응급실 과밀화·부족한 간병시스템·특유의 병실구조가 전파력 키워

'환자 발생이 소규모에 그칠 것'이라고 장담하던 예측이 빗나간 결정적인 이유중 하나는 정부가 외국과 다른 한국의 독특한 의료 시스템과 구조, 문화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메르스 14번 환자(35)가 바이러스를 집중적으로 전파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이 대표적 사례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전 대변인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하루 내원환자가 150∼200명 수준이고 환자 한 명이 오면 보호자가 2∼3명씩 따라오는데 사실상 도깨비 시장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환자 수도 절대적으로 많고 아픈 가족과 지인을 보러온 사람까지 겹쳐 과포화 상태지만 아무도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응급실이 아닌 일반병실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들까지 메르스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된 것은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은 간병인, 보호자들이 간병을 전담하는 현실과 내무반실 '6인실' 병실 구조도 한 몫 했다.

2010년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간호사 1인당 담당 병상 수는 4.5인 반면 미국, 영국, 일본은 각 0.71, 0.56, 2.0이다.

의료진이 담당하는 병상 수가 절대적으로 많다보니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이동과 식사를 돕고 치료에 수반되는 각종 행위를 보호자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현재 앨라배마대학(UAB) 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조교수로 재직중인 조도연씨는 지난 16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미국에 있는 한국인 의사가 본 한국 메르스'라는 글을 통해 "한국의 6인실 및 내무반식 시스템은 한국의 싼 의료보험수가를 지탱하기 위해 만든 병실제도인데 바로 전염병의 온상"이라고 꼬집었다.

옆 환자가 무슨 음식을 먹는지, 어떤 개인사가 있는지 며칠이면 다 알 수 있는 구조에서 호흡기 질환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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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그는 "일반인들의 병원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며 "병원을 최고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오로지 환자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불필요한 인원의 방문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삐걱대는 중앙정부-지자체, 성과 경쟁에 국민들만 '혼란'

메르스 방역 실패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불협화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메르스 확진 환자를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것은 물론 지자체는 확정되지 않은 정보를 '성과 경쟁'에 떠밀리듯 발표하고 중앙 정부는 전국에서 쏟아지는 각종 메르스 정보를 뒤늦게 확인하는 사태가 한달 내내 계속됐기 때문이다.

양측의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38)를 둘러싼 서울시와 복지부의 엇갈린 주장이다.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인 삼성서울병원 의사가 최소 1천500여명 이상의 사람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고 발표하며 복지부가 정보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아 긴급 브리핑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울시의 일방적 발표로 국민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며 유감을 표시하고 모든 상황을 서울시와 긴밀하게 협의했다고 반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6일 자신의 자신의 페이스북에 메르스 1차 검사 양성이 나온 환자의 거주지와 직장, 자녀가 다니는 학교 등을 실명으로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시장은 "지자체의 특수상황에 따른 독자적인 집행 영역이 존재한다"고 반박했지만 정보 공개 전 중앙정부와 협의 과정을 거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정보 공개 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이후 메르스 2차 유행 진원지로 지목된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서도 다시 한번 재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민관합동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며 병원의 폐쇄명령권을 비롯한 전권을 부여했지만 정작 삼성서울병원에서 대규모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음에도 중앙정부는 그 권한을 신속하고 직접적으로 행사하지 않아 '전권이 삼성서울병원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삼성서울 전권부여' 논란은 15일과 16일 서울시와 복지부가 브리핑을 통해 양측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후 양측은 모두 '지금은 비난할 때가 아니다"며 투명한 정보 공유와 협력을 약속했지만, 이들의 신경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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