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헌신적인 협조로 의심환자 한 명 없어농민 '판로 확보'·일용직 근로자 '일자리 구하기' 큰 걱정
(순창=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보름 남짓이나 방치해뒀는데 농작물이 어떤 상태인지 속이 타 죽을 지경입니다. 코앞에 두고도 나가보지 못했던 논밭부터 둘러봐야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환자가 발생해 마을이 통째로 격리된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의 A씨는 18일 오전 격리 해제를 14시간여 앞둔 답답한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주민이 메르스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된 지난 4일 자정께부터 평화롭던 마을의 출입이 갑작스레 통제됐지만, 문제가 없으면 18일 자정을 기해 격리에서 해제된다.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전북도와 순창군의 선제적인 격리 조치와 주민들의 헌신적인 협조로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의심환자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 주민들은 102명의 격리 대상자 가운데 단 한 명도 이탈하지 않은 채 지난 보름간의 고통(격리)을 감내했다.
정치권과 언론뿐 아니라, 정부까지 나서 모범적인 방역 사례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감옥생활이 따로 없었다"는 주민 A씨는 "이제 몇 시간 남았는데 아무 일 없이 넘어가기를 기도하고 있다"며 마을주민들의 애타는 심경을 전했다.
격리 해제가 다가오면서 이제 주민들의 마음은 온통 논밭에 가 있다.
한창 수확해야 할 복분자며 블루베리, 매실 등이 그대로 방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확이 끝난 오디는 반 남짓밖에 건지지 못했다.
A씨는 "그동안 마을 밖에 있는 밭에는 나갈 수가 없어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며 "격리가 해제되면 한밤중이지만 손전등이라도 들고 나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격리가 해제된다 해도 걱정거리는 한둘이 아니다.
복분자나 블루베리는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인력을 투입해야 하지만 '메르스 마을'이라는 낙인 때문에 일꾼을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약 주문마저 대부분 취소된 상황이니 판로를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마을의 일용직 근로자들은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이다.
긴급 생계비는 지원받았지만, 평소 소득의 반에도 미치지 못해 이미 생활비는 동나다시피한 상태다.
일용직 근로자 B씨는 "보름 남짓이나 일터를 비웠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사람들로 대체된 상태"라며 "가뜩이나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농촌지역이어서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주민 C씨는 지난 12일 숨진 51번 환자(72·여)의 안타까운 사연도 언급했다.
C씨는 "그분은 별다른 말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순창에 내려왔는데 격리 지시를 어기고 무단이탈한 것으로 발표돼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아무쪼록 좋은 곳에 가서 평안이 쉬기를 바란다"는 애도의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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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8 11:0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