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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 총기난사 '그 후 1년'…장병·주민 후유증 시달려

송고시간2015-06-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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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따돌림' 등 범행 동기 둘러싼 논란은 '진행 중'

피해 장병 유족 찾아가 사죄하는 임 병장 부모(연합뉴스 자료사진)
피해 장병 유족 찾아가 사죄하는 임 병장 부모(연합뉴스 자료사진)


(원주=연합뉴스) 22사단 GOP(일반 전초)에서 총기를 난사한 임 모(23) 병장의 부모가 2014년 9월 18일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이 끝난 뒤 피해 장병의 유가족들을 찾아가 자식을 대신해 사죄하고 있다.

(고성=연합뉴스) 이종건·이재현 기자 = 지난해 6월 21일 오후 8시 15분. 강원 고성군 동부전선 최전방 GOP(일반전초).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 '쾅∼'하는 폭발에 이어 십수 발의 총성이 적막강산을 뒤흔들었다.

총성의 진원지인 경계 초소 인근 보급로 삼거리는 매캐한 화약냄새로 뒤덮였고, 주간 경계 근무를 마치고 소초로 복귀 중이던 22사단 장병들은 신음을 토해냈다.

작전용 손전등의 희미한 불빛 너머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장병의 절규가 보였다.

1년 전 그날. 이른바 '고성 GOP 총기 난사'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장병 5명이 목숨을 잃었고 7명이 파편상 등의 상처를 입었다.

범행 직후 무장 탈영한 임 병장은 43시간 만인 같은 달 23일 오후 2시55분께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콘도미니엄 인근에서 대치를 벌이다가 총기 자해 소동 끝에 생포됐다.

◇ "잊히지 않는 끔찍한 악몽"

당시 총기 난사 사건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은 피해 장병은 대부분 전역했지만,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피해 장병은 1년여의 시간이 흘렀어도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환영과 환청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 장병인 김모씨는 "멀리서 풍선이 터지는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랄 정도로 여전히 불안감 속에서 살고 있다"며 "그때 부상당한 팔은 아직도 펴지지 않고 있지만, 생업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무장 탈영한 임 병장 수색 과정에서 사흘간 교전이 벌어졌던 고성 현내면 일대 주민들도 1년 전 악몽 같은 기억에 여전히 몸서리치기는 마찬가지다.

임 병장 수색작전 과정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대피해야 했던 동해안 최북단 명파리와 마달리, 배봉리, 대북리 주민들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사건"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들 지역 주민 540여명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6월 22일 오후 인근 대진초등학교와 대진 중·고등학교 체육관으로 대피했다.

임 병장이 체포된 23일 오후까지 하루 가까이 피난민 생활을 해야 했다. 명파초등학교도 하루 휴교를 하기도 했다.

수색 과정에서 빚어진 교전은 상황이 모두 끝나고 나서 오인사격으로 결론났지만, 당시 명파리에서는 대낮에 울린 총성에 대한 자세한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주민들은 외출도 못한 채 극도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국군 강릉병원으로 이송되는 임 병장(연합뉴스 자료사진)
국군 강릉병원으로 이송되는 임 병장(연합뉴스 자료사진)

(강릉=연합뉴스) 강릉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GOP 총기 난사범 임모 병장이 2014년 6월 26일 오후 국군 강릉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한 주민은 "탈영병 사건으로 대피를 해보기는 처음이었다"며 "당시에는 정말 무서웠다"고 1년 전을 회고했다.

장석권 명파리 이장은 "접경지역이어서 늘 긴장은 하고 살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사건으로 불안해하고 보따리를 싸서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는 미처 몰랐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임 병장의 가족들도 "하루하루 힘들지만 피해 장병과 국가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전했다.

◇ "무고한 전우들" vs "집단 따돌림이 원인"

참극이자 비극은 임 병장의 생포로 사흘 만에 종료됐다. 하지만, 비극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1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임 병장은 사건 발생 40여일 만인 지난해 8월 군 형법상 상관 살해와 형법상 살인, 군무이탈 등 7가지 죄명이 적용돼 구속 기소됐다.

임 병장 측은 1차 공판부터 최후 변론에 이르기까지 6차례에 걸친 공판 내내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범행 동기는 지속적인 집단 따돌림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인 1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2월 3일 임 병장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무고한 전우에 총구를 댄 잔혹한 범죄"라며 임 병장 측이 주장하는 병영 내 집단 따돌림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 만을 호소해 사건의 책임을 동료에게 전가하고 회피하고 있다"고 양형 배경을 덧붙였다.

임 병장 측은 항소했고, 현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임 병장의 항소심 사건 재판장과 주심 판사는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의 항소심을 맡아 1심 판단과 달리 '살인죄'를 적용한 재판부로 알려졌다.

'22사단 임 병장 총기 난사'와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건' 등 지난해 국민을 공분하게 한 군 관련 사건의 항소심을 같은 재판부가 맡게 된 셈이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할 정도로 이 두 사건은 전혀 다른 결과로 표출됐지만, 병영 내 구타·가혹행위 및 집단 따돌림이라는 닮은꼴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임 병장 측은 윤 일병 사건이 병영 내 만연한 구타·가혹행위의 심각성을 일깨웠듯이 임 병장 사건의 근본적인 범행 동기도 항소심 재판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 병장 측 변호인은 "임 병장 사건은 집단 따돌림뿐만 아니라 후임병들이 임 병장을 선임병으로 대하지 않는 하극상 문제도 있다"며 "임 병장의 범행은 분명히 중차대한 범죄지만 그 배경에는 병영 내 부조리가 작용했다는 점을 밝혀내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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