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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여전히 계속되는 식민사관 논쟁

송고시간2015-07-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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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이어지는 상반된 주장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의 한반도 통치기간 경제·물자 수탈 뿐만 아니라 정신과 문화 측면에서도 전통을 말살하고 사실을 왜곡했다.

한국 통치 정당화를 위한 식민사관의 탄생도 그 맥락이다.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쪽에 진출해 가야에 일본부를 두어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이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일본부는 한국과 일본의 조상이 같다는 내선일체(內鮮一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으로 발전했다.

한국이 근대사회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정체돼 있었고 조선 조정이 치열한 당파 싸움에 빠져 발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식민사관이 만들어낸 것이다.

전문가들은 광복 이후 일제가 강요한 식민사관이 상당 부분 극복됐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몇몇 분야에서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대한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 재야 사학계가 불붙인 고대사 '식민사학' 문제

작년 3월 재야 사학자들은 한국 상고사와 고대사에 관한 주류 학계의 인식을 식민사학으로 규정하고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이들은 교육부 산하 역사왜곡 대응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이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를 통해 발간한 연구서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에 나오는 한사군의 위치를 문제 삼았다.

한사군은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4개의 행정구역으로 주류 사학계는 한반도 서북부에 있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재야 사학계에서는 한사군이 한반도 밖의 만주에 존재했고, '한사군의 한반도 내 위치설'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등 식민사관을 받아들인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을 펴낸 재야 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식민사관의 핵심은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는 두 가지 관점으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주류 사학계에서는 재야 사학계의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사료 해석 방법과 사실 관계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 고종과 명성황후의 재조명

민비(閔妃)라는 호칭은 과연 식민사관의 잔재일까.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저서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에서 명성황후를 민비로 지칭해 권위를 깎아내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비는 고종의 정비로 성이 민씨인 비(妃)라는 뜻이다. 을미년에 무참하게 시해되고 2년 뒤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명성황후로 추존됐다.

그러나 생전의 명성황후를 지칭하는 말로 민비보다 적확한 표현은 없다. 많은 연구자들이 민비라는 말을 사용했고, 각주를 달아 추존되기 전의 왕비를 가리킨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식민사관에 의하면 고종과 명성황후는 망국을 지켜본 수동적 인물로 비쳐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관점에서 탈피해 고종과 대한제국의 의욕적인 면들이 부각되고 있다.

다만 학계에서는 구한말 개화파를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로 나누는 것은 일본 학자들의 분류로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는 "근대사는 고대사와 달리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가 있어 식민사관이 대부분 사라진 측면이 있다"며 "세세한 부분보다는 전체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근대화를 보는 두 관점의 충돌

현대사에서는 근대화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각이 병존하고 있다.

광복 이후 4·19 혁명을 거치고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거세지면서 한국사학계에서는 식민사학을 넘어서기 위해 내재적 발전론이 등장했다. 이 이론은 일제의 침략이 없었더라도 한국이 자주적으로 근대화를 이뤄냈을 것이란 관점이다.

식민사관에 대한 강한 반발에서 출발한 내재적 발전론은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반면 탈민족주의에 주목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1970년대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를 억압과 수탈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내재적 발전론과는 대척점에 있다. 한국이 식민지시대의 경험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주장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사관의 재현'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다양한 통계자료와 실증적 분석을 통해 저변을 넓혀갔다.

1980년대부터 식민지 근대화론은 점차 힘을 얻었지만, 내재적 발전론의 학문적 대응은 미미했다. 그 결과 내재적 발전론은 조용한 주류, 식민지 근대화론은 힘 있는 비주류가 됐다.

진보, 보수와 맥이 닿아 있는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학계와 교육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지만 아직도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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