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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88%가 사상범…함경도 출신 많아"

송고시간2015-07-2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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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장, 수형기록카드 6천259장 첫 분석15세 학생부터 72세 노인까지 전 연령층 망라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수감 감옥으로 대표됐던 서울 서대문형무소에는 15세 학생부터 72세의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가 갇혔고, 같은 지역 주민들이나 한 가족이 수감된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수감자 출신 지역으로는 함경도가 가장 많았고, 수감자의 80% 이상이 소위 '사상범'인 것으로 조사됐다.

박경목(44)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장은 수형기록카드 6천259장을 분석한 이같은 내용의 논문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연구'를 올 1학기 충남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 심사를 통과했다.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는 이미 1990년대 공개돼 개별 카드에 대한 연구는 여러 차례 진행됐으나 전체 내용에 대한 통계를 내고 그 의미를 파악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인 서대문형무소에는 유관순·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약 9만명이 수감돼 고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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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감자 대부분 '사상범'…10代가 10%

1919∼1944년 기록된 수형기록카드에는 중복 인원을 제외한 4천837명의 나이, 출신 지역, 죄명, 형량 등이 담겨 있다.

카드에 죄명이 확인되는 4천630명 중 87.7%인 4천62명이 치안유지법, 보안법, 출판법 등을 위반한 이른바 '사상범'이었다.

사상범 중에서도 독립운동에 광범위하게 적용됐던 치안유지법 위반자가 2천745명(67.5%)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보안법 위반(28.8%), 소요(1.8%) 등 순이었다.

또 나이가 파악된 4천377명 중 20대가 2천517명(57.5%)으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870명(19.8%)으로 뒤를 이었다.

관심을 끄는 것은 15세 학생 11명을 포함해 10대가 462명(10.5%)이나 되고 50대 이상도 196명(4.4%)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고령인 수감자는 72세였다.

논문은 "일제에 대한 저항이 전 연령층에서 일어났으며, 10대가 참여할 정도로 이 시기는 한국인들에게 평범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수감자 연령대

구분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합계
인원수 462명 2,517명 870명 332명 152명 42명 2명 4,377명
비율 10.56% 57.50% 19.87% 7.59% 3.47% 0.96% 0.05% 100%

이와 함께 논문은 여성 수감자 카드 233장, 181명을 따로 분석해 10∼20대의 젊은 여성이 독립운동 주역으로 활발히 나섰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여성 수감자도 전체와 마찬가지로 81.7%(148명)가 사상범으로 분류됐다.

연령대는 10대가 64명(35.3%), 20대가 72명(39.7%)으로, 이들이 전체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직업이 기재된 카드 95장 가운데 절반 가량인 45명은 학생이었다.

◇ 함경도 출신 가장 많아…지연·혈연도 독립운동 참여 요인

주소 정보가 기재된 4천481장의 카드를 분석한 결과 함경도 출신이 1천391명(31.3%)으로 타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보였다. 1930년 함경도의 인구가 전국 인구의 10.65%에 불과했다.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가 1천140명으로 두번째로 많았고, 나머지 경상도·전라도·충청도·평안도는 평균 320여명이었다.

논문은 당시 함경도에는 많은 인구 이동이 있었고, 광업과 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비율이 높아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을 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함흥형무소에서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인원이 53명으로 타 형무소 이감자보다 많았다는 점, 함경도의 개방적인 지리적 특성과 강인한 생활력, 높은 교육열 등 지역성도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봤다.

수감자의 본적지와 주소지, 나이 등을 분석한 결과 74명의 수감자가 형제나 부자, 남매 관계 등으로 구성된 36개 가족 소속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가족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 출신 5명 이상이 동시에 수감된 경우도 17건, 115명에 달했다.

논문은 "중소 도시에서의 독립운동은 지역 관계망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혈연도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요인이었다"며 "대도시의 각종 저항운동에서 학교가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학연뿐만 아니라 지연, 혈연은 단순 인간관계를 넘어 식민지 지배 체제를 바꾸려는 의지를 행동으로 이끌어 내는 중요한 기반이자 연결고리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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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총동원법 위반, 독립운동 범주로 검토해야

논문은 전시에 인적·물적 자원을 통제·운용하는 법률인 국가총동원법 위반 수감자 479명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40년대부터 등장한 국가총동원법 위반자들은 지금까지 사상범이 아닌 단순범으로 분류돼 독립운동가라고 보기에 애매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논문은 수형기록카드가 '주요 사상범자 범죄 경력 및 수사 경력 자료'로 쓰인 만큼 이들도 식민지 체제를 위협하는 주요 범죄자로 관리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총동원법 위반자 479명 중 74.9%이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언도받았고, 단 한 건의 집행유예도 없었다.

또 대부분 단독이 아닌 2인 이상의 공동 저항을 도모해 일제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됐다.

논문은 국가총동원법 위반도 크게 항일 활동의 하나로 파악해 독립운동의 범주로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박 관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일제의 한국 식민지배가 평범한 사람들조차 일제에 저항해 감옥에 올 정도로 부조리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파악하게 됐다"며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선조의 도전과 희망의 역사가 살아 있는 장소"라고 평가했다.

kamj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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