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분위기속 '전쟁' 발언까지…극적 합의 나온 경위는(종합)
송고시간2015-08-25 16:35
南 "도발 용납 못해" vs 北 "남측 주장일 뿐 모르는 일"5·24 조치 해제, 북핵, 금강산 관광 관련 논의는 없어유감표명 문제는 전반부 타결됐으나 재발방지 방안 두고 기싸움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전쟁' 발언까지 나오는 등 한때 험악한 분위기가 흘렀던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극적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배경은 이번 사태를 평화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양측의 강한 의지였다고 한다.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가운데 22일 저녁 판문점에서 시작된 협상에서 남북 대표단은 25일 새벽까지 무박(無泊) 4일간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협상장에서는 고성이 오갔고 심지어 "전쟁" 언급까지 나왔다.
◇ 南 "도발 용납 못해" vs 北 "남측 주장일 뿐 모르는 일"
남측 대표단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비롯해 북한이 자행한 역대 도발 사례를 언급하며 남측이 먼저 북한을 상대로 무력도발을 한 적이 있냐고 따져 물었다.
특히 우리측은 이달 4일 우리 장병 2명이 중상을 입은 서부전선 목함지뢰 폭발 사건은 주변 지형과 토질상 누군가 와서 지뢰를 묻었기에 발생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백히 설명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은 현장 사진까지 들이밀며 "피해자 수가 1명이든, 2명이든, 10명이든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측의 도발로 우리 젊은이 2명의 인생이 비틀린 것을 국민은 용납하지 못한다. 북한은 이에 상응한 조치를 분명히 취해야 한다"고 못박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 대표단은 "남측이 그렇게 주장할 뿐 우리는 잘 모르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과거 사례를 하나하나 들춰내 따지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갈 것인지에 집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우리측은 "현 사태의 실질적 원인이 바로 얼마전 발생했는데 어떻게 그것이 과거일 수 있느냐"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협상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이때는 (우리 대표단이) 흥분하면서 어떻게 우리 국민 두 사람이 다친 것을 그리 간단히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대표단은 목함지뢰 사건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으면 다음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대처했다"고 덧붙였다.
◇ 5·24 조치 해제나 북핵 문제는 언급 없어
김 안보실장은 지난 20일 발생한 북한군의 포격 도발과 관련해서도 아군탐지장비의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설명하며 발뺌하려는 북측 대표단을 추궁했다고 한다.
대표단 관계자는 "북한군의 소행이 명확한 이유와, 우리측의 대응사격 취지, 또 도발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김 안보실장이 '내가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다'라는 발언까지 수차례 하면서 우리 입장을 강력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 5·24 조치 해제나 북핵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북측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중단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진 않았지만 "남한도 확성기 방송 등 적대적 행위를 하는데 왜 자꾸 모든 잘못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북측 대표단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한두 차례 언급했으나, 이번 접촉에서는 남북 대화채널 복구 등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진 않았다.
정부는 일단 남북간 대화가 재개되면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를 충분히 논의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산가족 상봉 문제의 경우 이산가족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만큼 북측에 사안의 시급성을 설명하고, 개별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남북공동합의문에서 추석 개최를 적시하기로 했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양측은 24일 오전 북한이 사실상 사과의 형태로 무력도발에 유감을 표하고 한국은 대북 심리전을 중단한다는 방식으로 절충점에 도달했으나,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최종 재가를 받는 과정에서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고, 막판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 北 "굉장히 큰 결심 갖고 여기까지 왔다" 강조
박 대통령은 협상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일련의 과정을 직접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 대표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역시 김 제1위원장의 실시간 지시를 받았다.
다만 황 총정치국장 등은 도·감청 우려 때문인지 중요한 사안과 관련해선 북측 지역으로 이동해 김 제1위원장의 지침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24일 새벽 이와 관련해 우리 측에 차량 준비를 요구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황 총정치국장이 180㎞ 떨어진 평양에 가서 김 제1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지침을 받았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북측은 인민군 서열 1위인 황 총정치국장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 온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은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군사대치가 진행 중인 판문점의 남측 지역에 왔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남측이 잘 이해해야 하지 않느냐. 자신들은 굉장히 큰 결심을 갖고 문제를 풀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측은 목함지뢰에 대한 북측의 유감 표명 문제와 관련해선 비교적 초반에 타결점을 찾았지만, 재발방지 보장 방안과 관련한 이견 때문에 상당 시간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고 한다.
워낙 피말리는 대치가 이어진 까닭에 대표단 관계자들은 간간이 의자에서 토막잠을 자는데 만족해야 했다.
관행상 남북회담이 판문점 남측에서 열릴때는 한국이, 북측에서 열릴 때는 북한이 식사를 준비해 왔지만, 북측 대표단은 야식이나 간식 외에는 남측과 함께 하지 않고 판문점 북측으로 이동해 따로 식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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