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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열병식 국기게양 호위부대가 '121보' 걷는 이유는(종합)

송고시간2015-09-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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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이후 121년 상징…곳곳서 '항일승전·민족부흥' 강조

(AP=연합뉴스 자료사진)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행사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국기게양식의 걸음 수에 담긴 의미에 관심이 쏠린다.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항일전쟁(2차대전) 승리 기념일(전승절·9월 3일)에 열리는 이번 열병식에서 국기 게양을 맡은 호위부대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에서 게양대까지 정확하게 121보를 걷는다.

121이라는 숫자는 '갑오전쟁'(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부터 올해까지 121년을 의미한다.

가장 최근 열린 2009년 건국 60주년 기념일 열병식 때 호위부대가 아편전쟁이 일어난 1840년부터 2009년까지 햇수인 169걸음을 걸었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숫자에 다양한 상징을 부여해온 중국인들의 문화를 고려하면 이전처럼 아편전쟁이 아닌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게양식 걸음 수를 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중국 역사에서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이 차지하는 의미를 통해 이 '121걸음'의 함의를 유추할 수 있다.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은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던 중국이 외국 군대에 처참한 패배를 당한 대표적인 사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중국에 '국가적 치욕'을 안긴 주체는 다르다.

아편전쟁은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 국가와 처음으로 정면 대결한 사건으로 신중국 건국 때까지 100여 년 이어진 중국의 기나긴 암흑기의 시작이 됐다. 이때의 패배로 청나라는 일련의 항구를 개방하고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

이에 비해 청일전쟁은 낯선 상대인 서구 열강이 아니라 몇 수 아래로 내려다보던 일본에 참패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을 안긴 사건으로 평가된다.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일련의 개혁조치로 서구식 군대를 키웠으나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치른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국토 상당 부분을 빼앗겼고, 이후 사실상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번 열병식이 기존처럼 국경절(건국기념일)인 10월1일이 아닌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에 개최되는 첫 열병식이라는 점과 연결지으면, 결국 '121걸음'은 청일전쟁으로 일본에 넘겨줬던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자신감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과 함께 미국과 더불어 'G2'(주요 2개국)로 올라서며 과거의 굴욕을 씻어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더는 중국을 넘어설 국가가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중국이 근대 100년간 겪은 국가적 치욕의 시작점은 아편전쟁인데 이번 전승절 열병식에서 청일전쟁을 강조한 것은 주도면밀하게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갑오전쟁(청일전쟁) 기념관에 전시된 1894년 7월24일 일본 연합함대가 청나라 북양함대를 기습하고 있는 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 갑오전쟁(청일전쟁) 기념관에 전시된 1894년 7월24일 일본 연합함대가 청나라 북양함대를 기습하고 있는 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교수는 또 "중국인의 역사의식 속에 자리한 국가적 굴욕은 서구에서 당한 것과 일본으로부터 온 경우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이번 열병식으로는 후자의 치욕을 씻고 부흥을 이뤘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中열병식 국기게양 호위부대가 '121보' 걷는 이유는(종합) - 2

중국이 전승 70주년을 맞아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나 기록물을 복원하는 등 '굴욕의 역사'를 다시 되새기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당국은 2차대전 당시 국민당 정권의 역할을 지우고, 공산당과 인민이 힘을 합쳐 일본의 침략을 막아냈다는 '승리의 역사'로 선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왔다. 반면 난징 대학살과 같이 일제에 당한 굴욕은 조명받지 못했다.

최근 수년간 일제의 만행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해온 중국 당국은 전승 70주년 행사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관련 사료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국가당안국(기록물보관소)는 위안부 관련 자료와 일제 전범 자백서를 잇따라 공개한 데 이어 최근에는 8개월간 작업을 거쳐 800여 편의 역사적 영상기록물을 복원했다고 미국 NBC는 전했다.

중국 정부는 오랜 기간 잊혀졌던 강제수용소 복원작업에도 착수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당국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에 운영했던 강제수용소 터와 건물 잔해를 최근 보존·복원하기로 했다.

생존자와 그 자손들은 '중국의 아우슈비츠'로 일컬어지는 이 수용소에서 10만 명가량의 중국 군인과 민간인이 수용돼 탄광 강제노역과 기아, 고문, 생체실험, 성폭행 등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이 수용소에 대한 학계나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연구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수용소 건물은 마구잡이로 헐리거나 공장 창고, 마구간 등으로 쓰였고 수용소 생존자 가운데 일부는 문화대혁명 때 '과거 일제에 협력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내몽골 등 변방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그러나 전승절 70주년을 앞두고 최근 이 일대를 '애국교육센터'로 지정하고 온전히 남아있는 감방 건물 2동을 복원하기로 하는 등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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