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교황 노벨평화상 수상무산 사연은…오바마 수상 막후알력도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루터교 주교 출신인 심사위원의 반대로 수상이 무산됐다고 노벨위원회 전임 사무총장이 폭로했다.

5일 AP통신과 영국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이런 뒷이야기는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Norwegian Nobel Committee) 사무총장을 지낸 예이르 루네스타가 최근 발간한 회고록 '평화의 사무총장'(Secretary of Peace)에서 드러났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뽑는 노벨위원회의 사무총장을 1990년부터 올해까지 수행한 루네스타는 25년간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알력을 회고록에 담았다.

사무총장 자격으로 심사위원회 회의에는 참석하지만, 투표권은 없는 그는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이 루터교 주교 출신 심사위원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루터교 주교로 지난해 심사위원직에서 물러난 군나르 스탈세트 전 위원이 요한 바오로 2세를 수상자로 선정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잇따라 조국을 방문, 폴란드 민주화 혁명의 도화선이 된 자유노조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1989년에는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접견하는 등 냉전 종식에 기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의 유력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스탈세트 전 위원은 그러나 "회고록 내용은 사실은 다르다"고 부인했다.

루네스타 전 사무총장은 회고록에서 각국 정부 차원의 정치적 압력이나 심사위원들의 '눈치 보기'와 관련한 일화도 밝혔다.

2003년 미군 주도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 한스 블릭스 전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은 2005년 후보에 올랐으나 심사위원회가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것을 우려해 탈락시켰다.

2010년 수상자인 중국 반체제인사 류샤오보(劉曉波)를 심사하는 과정에서는 중국은 물론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중국 외교관은 류샤오보가 수상하게 되면 '적대행위'라고 경고했고, 노르웨이 정부도 외무장관을 통해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루네스타 전 사무총장은 이밖에 노르웨이 총리 출신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와 관련해 잇따라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지난 3월 위원장에서 위원으로 강등된 토르비에른 야글란을 혹평했다. 또 야글란 위원장 시절 결정된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수상 결정을 유감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회고록에 대해 전현직 심사위원들은 '50년간 노벨평화상과 관련된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위원회의 비밀 준수 의무를 깨뜨렸다고 비난했다 .

루네스타 전 사무총장은 그러나 위원회의 비밀을 지킬 의무보다는 역사학자로서 의무에 따라 회고록을 펴냈다면서 더 많은 뒷이야기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는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위원회가) 최대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지만, 전직 총리나 외무장관이 심사위원인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벨평화상은 노르웨이 의회에서 뽑는 심사위원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외부 압력 등과 관련해 수상자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973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당시 베트남 외무장관이던 레 둑 토(수상 거부)의 공동수상, 취임 몇 주 만에 수상자로 선정된 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도 난민 문제와 관련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이란 핵합의 주역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 등 정치인들이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inishmor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15/10/05 11:5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