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지뢰·포격도발에 맞선 최윤희, 42년 군 복무에 마침표
송고시간2015-10-07 16:30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 위협 속에 (합참의장으로 재직한) 지난 2년을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침과대적(枕戈待敵,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의 심정으로 보냈습니다."
최윤희 합참의장은 7일 국방부 연병장에서 열린 전역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전역식으로 최 의장은 1973년 해군사관학교 입교 이후 42년 8개월에 걸친 군 복무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비록 몸은 군을 떠나지만 마음은 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전역식은 합참의장 이·취임식과 함께 열렸다.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군을 통솔하는 중책은 이순진 신임 합참의장에게 넘어갔다.
최 의장은 올해 8월 북한군의 지뢰·포격 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성공적으로 군을 지휘함으로써 우리 군 역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40년 넘게 군에 몸 담은 최 의장은 화려한 기록도 세웠다.
최 의장은 우리 군 최초의 해군 출신 합참의장이다. 2013년 그의 합참의장 임명은 육군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신임 의장 임명에 못지않은 파격이었다.
최 의장의 현역 복무 기간인 38년은 창군 이후 최장 기록을 세운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40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가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임기 2년을 모두 채운 것도 1975∼1977년 제14대 합참의장을 지낸 노재현 예비역 육군 대장 이후 처음이다.
경기도 화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최 의장이 대한민국 군을 통솔하는 자리에 오를지는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몰랐다.
그는 중학교 진학이 힘들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해군사관학교 시절 동기들이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해 하나 둘 퇴교할 때도 최 의장은 '달리 갈 곳이 없어' 버텼다고 한다.
그가 최근 전역을 앞두고 연 기자 간담회에서 "혈혈단신으로 이곳까지 왔다"고 토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학창 시절 그에게 힘이 돼준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 서클에 들어 클라리넷 연주에 심취했다는 그는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음악가가 됐을 것"이라고 한다.
40여년의 군 복무 기간 최 의장의 마음에 가장 큰 상흔을 남긴 것은 제2연평해전이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참모처장이던 최 의장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전사한 6명의 젊은 용사들을 자신의 가슴에 묻었다.
이를 계기로 최 의장은 북한군의 끊임없는 도발에 대한 응징 의지를 다졌고 지난 8월 북한군의 지뢰·포격 도발 때 우리 군의 단호한 대응을 주도했다.
올해 영화 '연평해전'의 상영을 계기로 제2연평해전 용사들의 명예가 드높아진 것은 최 의장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그가 이제야 "미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최 의장이 평생 사표로 삼은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이다. 충무공의 정신을 '필사즉생 정면승부'로 요약한 그는 "늘 충무공을 우러러보며 닮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최 의장은 성공적으로 군 복무를 마무리했지만 전역 이후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조사 중인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비리에 그가 연루됐다는 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 의장이 40여년의 군 복무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면 방산 비리를 파헤치는 사정당국의 검증대를 무사히 통과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후배들의 귀감이 될 훌륭한 군인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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