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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다툼 남매에게 보낸 판사의 '따뜻한 충고'

송고시간2015-10-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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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무소유' 인용하며 "범행이 마지막 의사표현이길"

전주지방법원 << 연합뉴스 DB >>
전주지방법원 << 연합뉴스 DB >>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한 중견판사가 유산 문제로 동생을 해코지한 60대 여성에게 선처와 함께 따뜻한 충고를 해 눈길을 끌었다.

전주지법 형사2단독 오영표 부장판사는 8일 동생 밭의 차광막에 불을 붙인 혐의(재물손괴)로 기소된 A(60·여)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유예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6월 20일 낮 12시40분께 전북의 한 시골마을에서 친동생의 밭 차광막에 불을 붙여 2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아버지의 유산 문제로 동생과 갈등을 겪다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오 판사는 판결을 내리면서 요즘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판결문에 담았다.

그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재산을 남긴 뜻은 아름다운 배려의 마음일터인데, 남긴 재산이 많든 적든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재산을 탐욕의 마음으로 취하려 하면 고인의 뜻과는 달리 형제간의 우애나 부모·자식 간의 도리는 뒷전이고 추악한 싸움의 불씨가 되고 마는 것이 오늘날의 씁쓸한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고인이 나이 든 누나로서 남매들을 위해 헌신해온 남은 어머니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고인인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며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동생인 피해자를 나무라고 행동을 바로잡아주려는 심정에서 저지른 이 범행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오 판사는 이 대목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적힌 글귀를 인용하며 남매에게 진심 어리고 따뜻한 충고를 했다.

그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나무들을,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을 꺾이게 하는 것은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가볍고 하얀 눈임을,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임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 판사는 "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피해액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법으로서 동생인 피해자에 대해 마지막 의사표현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끝을 맺었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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