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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원나라 사신에 엿을 내밀었나…사극속 '허구'

송고시간2015-10-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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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사극 '육룡이 나르샤', 역사-허구 줄타기 흥미진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아비는 칼 맞아 쓰러지고 자식들은 세금에 찢겨 죽고 잿가루 날리는 만월대에 통곡소리 구슬퍼라……"

6일 밤 방송된 SBS TV '육룡이 나르샤'에서 고려의 젊은 관료 정도전(김명민 분)은 도탄에 빠진 백성과 함께 울부짖듯이 노래한다.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이 노래 '무이이야'(無以異也)는 사실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작곡가 와락과 함께 수개월 전 만든 곡이다.

'사람을 칼로 죽이는 것과 잘못된 정치로 죽이는 것은 차이점이 없다'는 가르침을 담은 중국 고전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왔다.

조선 건국사를 그린 팩션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시청자들이 궁금할 만한 사실과 허구의 흔적들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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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권세가는 사람 젖으로 기른 돼지고기 먹었을까

1회는 당대 최고 권세가인 이인겸(최종원)의 대저택에 기거하는 '돼지 유모', 즉 새끼돼지들에게 젖을 물리는 여자들을 보여주면서 큰 충격을 줬다.

고려사 연구 권위자인 박종기 국민대 역사학과 교수는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람 젖으로 키운 돼지고기를 먹는 일은 실제로는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고려사를 연구하면서 그와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없다"라면서 "백성이 권문세족의 수탈 등으로 고통받았던 당대 상황을 전하고 극적인 재미를 살리기 위한 장치로 생각된다"라고 설명했다.

사람 젖으로 기른 새끼돼지 고기로 연회를 여는 이인임 일가의 모습은 엄마 젖을 먹지 못해 숨진 갓난아기와 극명히 대조되면서 고려 멸망과 새 나라 건국의 당위성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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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의 이영준 프로듀서는 "고려말 정치권력이 부패하고 백성이 핍박받는 상황이었던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그 장면을 삽입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에서는 사람 젖으로 기른 돼지를 먹었다는 주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석숭(石崇)과 함께 중국 진(晋)의 거부로 꼽히는 왕개(王愷)가 그 주인공이다.

2004년 5월 발행된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 따르면 석숭이 비단옷 입혀 금싸라기와 제호탕(한방 음료)만을 먹여 기른 통닭구이를 즐긴다고 자랑하자, 왕개는 첫 아기를 낳은 미모의 여인들 젖만을 먹여 기른 돼지고기구이를 즐긴다고 응수한다.

◇ 육룡 중 셋은 허구…이인임은 이인겸으로 재탄생

드라마는 고려 왕조를 끝내고 새 나라를 세운 여섯 용을 이성계(천호진)와 이방원(유아인), 정도전, 이방지(변요한), 무휼(윤균상), 분이(신세경)로 설정했다.

전자 셋은 실존 인물이지만, 정도전의 호위 무사 이방지와 그의 여동생 분이, 이방원과 함께 대업을 완수하는 무휼은 모두 가상 인물이다.

이방지와 무휼은 김영현·박상연 작가의 전작이면서 세종의 한글 창제를 다룬 SBS TV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육룡이 나르샤' 초반부에서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이인겸 세력은 실존 인물들을 살짝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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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국 한정환 EP는 "이인겸은 역사 속 이인임을, 그 측근으로 등장하는 길태미와 홍인방은 각각 임견미와 염흥방을 바탕으로 했다"라고 밝혔다.

고려 말기 권신인 이인임(?∼1388)은 친원 정책을 취해 친명파를 추방한 뒤 임견미, 염흥방, 지윤 등의 충복들을 요직에 앉히고 매관매직을 하는 등 전횡을 일삼은 인물이다(네이버 두산백과 인용).

이인겸을 맡은 최종원은 점잖은 얼굴 뒤로 흉악하고 독한 기운을 뿜어내는 인물을 연기한다. 1회에서는 최종원과 이성계 역의 천호진이 벌이는 카리스마 대결이 흥미진진했다.

이인겸 세력 중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는 것은 박혁권이 맡은 길태미다.

길태미는 '삼한 제일검'으로 이름난 무신임에도 짙은 눈화장에 온갖 장신구, 간드러지는 목소리 등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팩션사극인 '육룡이 나르샤'가 이인임 세력을 변형한 것은 지난해 흥행한 KBS 2TV 정통사극 '정도전'(2014)을 의식한 것으로도 보인다.

'정도전'에서는 확고한 정치 철학과 국가관을 가진 채 권력을 쫓는 이인임(박영규 분)이 악역임에도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 정도전은 원 사신에게 엿을 내밀었을까

'육룡이 나르샤' 1~2회에서는 1374년 친원파인 이인겸은 고려를 찾은 원 사신의 영접사로 친명파인 정도전을 지목한다.

정도전이 사신을 살해할 것으로 보고, 이를 빌미로 이인겸 자신에게 맞서는 친명파 사대부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운명의 날, 이인겸 측이 예상한 대로 정도전은 원 사신으로 위장한 길태미를 공격했지만, 정도전의 손에 들린 건 칼이 아닌 '엿'이었다.

정도전은 당황함을 금치 못하는 이인겸 앞에서 "원 사신이 입경하면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의기와 의분을 만천하에 보이고자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섰다"라고 외쳐 원 사신이 제풀에 도망가도록 한다.

원과 수교를, 명과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정도전의 계책이었던 셈이다.

정도전의 삶과 조선 건국에서도 중요한 실마리로 작용하는 이 영접사 파동을 역사는 다소 다르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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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영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의 '인간 정도전'에 따르면 정도전 시문집인 '삼봉집'은 아래와 같이 원사신 영접사 파동을 저술했다.

"공(정도전)은 경복흥의 집에 가서 말하기를, "나는 마땅히 원 나라 사신의 머리를 베어 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결박을 지어 명나라로 압송하겠다" 하니…… 경복흥은 더욱 성이 나서 이인임과 더불어 일을 보지 않고 공을 회진현으로 귀양보냈다."

역사 속 정도전은 드라마와는 달리 원사신 영접사가 되는 것 자체를 거부했던 셈이다.

허구가 더해진 원사신 영접사 파동은 시청자들이 감동을 넘어 전율을 느낄 정도로 명장면으로 탄생했다.

이영준 프로듀서는 "정도전이 혼탁한 세상을 뚫고 나와 민초를 대변하는 인물로 부상하는 장면이었기에 정말 임팩트 있게 만들어야 했다"라면서 "출연자만 약 350명에 이르는데다 음악도 울림을 주고자 합창단을 따로 불러 녹음했다"라고 밝혔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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