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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추모' 천경자 흔적 찾기 어려운 고향 고흥

송고시간2015-10-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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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작품 반환 갈등 후 천 화백측과 소원해져 "고향에 작품 한점 없지만 세계적 화가…기념사업 고려해야"

천경자 몇 달 전 사망…딸이 유골함 들고 다녀가"
천경자 몇 달 전 사망…딸이 유골함 들고 다녀가"

(서울=연합뉴스) 사망설이 꾸준히 나오던 천경자 화백이 최소 수개월전 사망했으며 천 화백의 딸 이혜선 씨가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천 화백의 딸 이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 집에 머물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생전 천경자 화백의 모습.

(고흥=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 22일 천경자 화백의 타계소식이 뒤늦게 전해지자 천 화백의 고향인 전남 고흥 주민들은 크게 안타까워했다.

천경자 미술관 건립을 둘러싸고 천 화백의 장녀 이혜선씨와 빚어진 갈등으로 고향과도 소원해졌지만 지역에서는 여전히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 화백이 2007년 고향에 기증했던 작품 66점은 고흥군과 이혜선씨와의 갈등 끝에 현재 이혜선씨에게 모두 반환한 상태이다.

천 화백이 태어난 고흥읍 서문리에는 생가 등 과거 흔적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해방 전 유학길에 오를 때까지 광주의 학교와 고흥 집을 오가며 오랫동안 살았지만 생가나 그가 살았던 집의 흔적도 찾기 힘들다.

가족과 친인척들도 대부분 사망하거나 고흥을 떠나 현재는 외가 쪽 고령의 노인만 소수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을 포함해 고흥군은 물론 주민들도 천 화백의 타계 사실을 모르고 있어 그동안 고향과 소원해져 버린 관계가 더욱 도드라졌다.

영상 기사 천경자 사망…유골함 들고 시립미술관 방문
천경자 사망…유골함 들고 시립미술관 방문

[앵커] 국내 미술계 최대 위작 시비에 휘말렸던 천경자 화백은 그동안 생사를 둔 논란이 잇따랐는데요. 천 화백이 수개월 전 미국 뉴욕 자택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이태수 기자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봅니다. [기자] 사망설이 꾸준히 나오던 천경자 화백이 최소 수개월전 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천 화백은 지난 1991년 자신의 작품 '미인도'가 위작 논란에 휘말리면서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는데요. 당시 피붙이같이 아끼던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고, 2003년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을 하지 못한 후 사망설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이 수당 지급을 위해 천 화백의 근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큰딸 이 씨가 이에 반발하며 예술원에서 탈퇴하는 등 외부와의 접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여름 그녀가 사망하면서 천 화백의 딸 이 씨가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천 화백은 여인의 한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습니다.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기도 한데요. 한국 화단에는 큰 자취를 남겼지만 개인사는 가족을 잃는 고통과 한 많은 사랑 등 굴곡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연합뉴스TV 이태수입니다. 연합뉴스TV 제보:02-398-4409, yjebo@yna.co.kr

천 화백과 고향과의 관계는 2007년 천 화백이 고흥군에 작품을 기증할 때만 해도 아주 좋았다.

애초 미술관을 계획했지만 예산문제로 고흥종합문화회관내에 전시관을 만드는 것으로 대신해 기증받은 작품을 전시했다.

이후 미술관 건립계획이 다시 세워지면서 건축 설계까지 했지만 이혜선씨와의 의견대립으로 사업이 끝내 무산됐다.

결국 2012년 전시관의 작품 보관에 문제가 있다며 이혜선씨가 작품 반환을 요구해 고흥군과 갈등을 빚었고 이듬해 모든 작품이 반환됐다.

이후 고흥과는 연락이 끊기다시피 했으며 고흥에서도 천 화백을 언급하는 일도 거의 사라질 만큼 그의 흔적은 희미해졌다.

고흥군도 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애도 글을 올리는 것을 검토하는 것 외에는 아직 별다른 추모사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고흥의 한 주민은 "세계적인 화가의 고향인데도 그의 흔적이나 작품 한점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은 참 안타깝다"며 "유족과 함께하기 어렵다면 지역이 자체적으로라도 기념사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

b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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