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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역사교육> ⑪역사교과서 기준 틀 잡자

송고시간2015-11-0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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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심판 아닌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집필기준 세워야""시대적 '공과' 균형있게 기술하고 독립기구가 검증해야"

<바른 역사교육> ⑪역사교과서 기준 틀 잡자 - 1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 편향 논란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무엇보다 정부가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집필 원칙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 왜곡이나 미화는 저부터 좌시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만큼 이런 의지를 뒷받침할 구체적 집필 기준을 세워 공개하고, 그에 따른 교과서 기술 내용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이나 분단 배경,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방법 등 논쟁이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명암과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다루도록 하는 등 기술방법에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촉구했다.

◇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이 기본 원칙"

전문가들은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는 지적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는 것인 만큼 그 부분부터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사진은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국가의 정통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 문제를 떠나 역사 교육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모든 역사에는 음영이 있지만 지금의 교과서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며 "잘못된 것은 반성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밝은 역사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얘기한 '이중혁명', 즉 산업혁명과 민주주의혁명을 동시에 이룬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면서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역사가 기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그러한 성공을 거뒀는지 그 인과관계를 명확하고 공정하게 사실 그대로 기술해 주면 된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인과관계를 명확히 기술한 교과서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과거사 심판이 아닌 미래시대 지향"

역사, 특히 현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늘 '심판론'에 매몰돼 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승만 초대 대통령(연합뉴스 자료사진)

과거사에 대한 평가가 아직 진행형이고, 심판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들도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과거사 기술 문제는 결국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지금의 교과서 논쟁을 허공의 새를 겨냥한 포수에 비유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허공의 새를 맞추려면 새가 날아갈 방향을 보고 총을 쏴야 하는데 지금의 논쟁은 새가 머무는 곳을 겨냥해 총을 쏘는 격"이라며 "어른들의 정치 싸움에 본래의 역사교육 목적이 전도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역사교육의 첫 번째 목적은 과거사 심판이 아닌 미래의 어젠다를 제시하는 것"이라며 "통일시대를 대비한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집필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장 코앞으로 닥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비롯해 각종 교육, 민생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형식 논리에 갇혀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기봉 교수는 "국정이든, 검정이든 단지 뉘앙스의 차이일 뿐이지 배우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며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들까지 버려선 안 된다. 이 기회에 논쟁의 판을 바꿔 서로가 타협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은 지난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지지하는 육사생들의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은 지난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지지하는 육사생들의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강규형 교수는 "김대중 정부 때도 국정이었고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도 국정 체제였는데 갑자기 국정이 절대악인 것처럼 주장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단지 국정, 검정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 면에서 잘못된 서술이 있었으면 이걸 인정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서로 다른 시각, 공과 함께 기술해야"

현대사 해석에서 가장 대표적인 논쟁 대상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 6·25 전쟁의 발발 배경,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평가 등에 대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 진영은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진보 성향 학자들은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 4월11일을 건국 시기로 보는 편이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보수진영은 대부분 교과서가 '건국의 아버지'로서의 위상보다 친일청산 실패, 독재 등 부정적 측면을 부각했다고 보는 반면 진보 쪽은 4·19혁명으로 하야한 그에 대한 박한 평가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부분은 서로 상반된 견해를 균형 있게 기술하는 방향으로 타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를 들어 5·16이면 쿠데타냐 정변이냐 어느 한 쪽으로 얘기하지 말고 같이 써주는 게 낫다"며 "쟁점이 되는 사안별로 검토하면서 좌우가 모두 용납할 수 있게 동시에 소개하는 기술을 하자"고 말했다.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한 원로 인사도 "민주주의에서 역사적 해석이 다른 건 당연하지만 그 변량의 폭이 크지 않고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토론의 장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논쟁이 되풀이됐지만 그런 토론의 장을 여태껏 본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사적 기술에서도 압축 성장의 폐해만을 부각할 것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사실에 대한 재평가를 함께 담아야 한다는 주장도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충실한 기술을 해야 한다"며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경제성장을 이룬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 역사교육> ⑪역사교과서 기준 틀 잡자 - 5

◇ "교과서 문제 다룰 독립기구 검토"

전문가들은 교육부 산하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교과서 문제를 중립적으로 다루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기술상의 쟁점 사안들을 공론화할 수 있는 독립적 성격의 기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쟁점들을 논의해 국민이 납득 가능한 범위에서 다양한 견해들을 교과서에 담고, 또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를 통해 객관성을 검증받자는 것이다.

장영수 교수는 "교과서의 내용을 검토하는 중립기구나 절차 등 보완장치를 둠으로써 국정교과서의 편향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봉 교수는 "국사편찬위원회라는 기구가 있지만 정부 산하기관이 그런 기능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교과서 문제를 다룰 독립기구를 만들어 합의의 장을 마련해 볼 수도 있다"고 제언했다.

현대사는 현재 진행형인 역사인 만큼 국사학계뿐 아니라 세계사, 경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가 이뤄지도록 다방면의 전공자로 필진을 구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y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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