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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댄스> 탱고, 열정과 박력의 춤

송고시간2015-12-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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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채삼석 기자 = 영화 ‘여인의 향기’를 말하면 관객 대다수는 탱고를 떠올린다. 시력을 잃은 퇴역 장교로 나오는 알 파치노의 세련된 탱고 댄스가 압권이다. 운명에 좌절하는 주인공은 자살을 앞두고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어느 식당에서 여종업원과 탱고를 춘다. 직접 볼 수 없지만 후각으로 그녀를 느낀다. 힐링이 된 듯 생각을 바꾼다. “살아야겠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팽한 마피아 영화 ‘대부’ 시리즈에서 알 파치노가 맡는 배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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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은 매혹적인 탱고곡 ‘포르 우나 카베사’다. 직역하면 ‘말 대가리 하나 차이로’라는 말이다. 경마에서 ‘간발의 차이로’ 우승을 놓쳐 2등이 됐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인의 향기’는 주연배우 알 파치노의 연기력을 바탕에 깔았다. 여기에 탱고 음악과 춤을 핵심 소스로 버무려 맛깔스럽게 요리한 특별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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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성공에는 물론 촉감과 후각을 절묘하게 섞어 뽑아낸 타이틀 자체도 한몫 했을 것이다.

다른 어떤 댄스스포츠보다 탱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다. ‘탱고’ , ‘탱고 레슨’, ‘탱고 전쟁’, ‘사탄탱고’, ‘탱고 위드 미’, ‘프리다’, ‘에비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거장 감독 빔 벤더스가 제작자로 참여한 ‘라스트 탱고’도 12월 17일 국내 개봉된다.

탱고 댄스는 남미 목동들이 박차 붙은 가죽장화를 신고 스텝을 밟으면서 마을 처녀들에게 구애하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 탱고는 라틴 풍 음악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댄스스포츠에서는 라틴댄스가 아니라 모던댄스로 분류하는 특이한 종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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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다른 댄스와 달리 올라가고(rise) 내려오는(fall) 자세의 변화 없이 일정하게 진행하는 춤이다.

박효 한국프로댄스평의회장은 “열정과 박진감 자체가 탱고 댄스”라면서 “리드미컬한 음악을 몸으로 붙잡고 춤 동작을 주고받아 진행해야 진정한 커플댄스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노익장의 박 회장은 요즘도 개인 레슨과 단체 교습을 계속한다. 전성기 시절에는 ‘탱고 박’으로 통했다. 어느 댄스스포츠보다 탱고의 달인이었다는 이야기다.

아르헨티나 항구의 선창가에서 태동한 탱고는 파리와 런던 중심의 유럽 상류사회로 건너오면서 정식 댄스스포츠로 정형화됐다. 오리지널 아르헨티나 탱고와 콘티넨탈(모던 또는 스탠더드) 탱고는 그래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아르헨티나 탱고가 서정적 음악성에 강점이 있다면 모던 탱고는 동작의 박진감이 특징이다. 사냥꾼이 사냥감에 근접하면서 눈을 부릅뜬 긴장감과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의 차이다. 직선과 곡선으로 대비될 수도 있다.

남녀 댄서의 콤비네이션도 전체적으로 이마를 맞댄 듯한 A형과 허벅지 부분이 엇갈려 밀착해 날씬한 X형만큼이나 다르다.

아르헨티나 탱고는 파트너와 손을 맞잡는다기보다는 포옹에 가까운 자세로 춘다.
콘티넨탈 탱고는 악기 편성에서 아르헨티나 탱고에 독보적인 반도네온 대신 아코디언을 쓴다. 상대적으로 자그마한 손풍금인 반도네온은 아코디언보다 음색이 다소 어둡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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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전이나 아시아경기대회에 정규 종목으로 채택된 탱고는 모던 탱고의 댄스스포츠다. 그만큼 경기용 스포츠로서 손색없다. 제대로 몰입하면 땀이 비 오듯 나게 돼 운동효과도 높다. 채점 시스템도 갖춰 있다.

이에 비해 아르헨티나 탱고는 무대 공연이나 사교 파티에 더 적합하다. 춤 없이 탱고 음악만 연주하기도 한다. 탱고 댄스든 스포츠든 음악이든 심신 힐링 효과는 탁월한 편이다.

탱고를 추려면 남자 탕게로와 여자 탕게라가 있어야 한다. 인간 세상만사가 상대방과 호흡이 맞아야 성사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탱고도 다른 댄스스포츠처럼 남성이 먼저 매너 있게 신청해야 한다. 여자가 사절할 때는 합당한 이유를 말해 상대방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일단 수락하면 음악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춤을 중단하면 안 된다.

남자가 리드하고 여자는 명랑하게 따라 추는 게 바람직하다. 여성이 다소 상급일 경우 남성의 진행을 알게 모르게 도와줘야 서로 좋다.

탱고는 남녀 두 사람의 소통 속에서 진행되는 춤이다. 혼자서는 출 수 없다. IT TAKES TWO TO TANGO. 남성의 왼손이 여성 파트너의 오른손을 맞잡아 각을 세운다. 이어 시계와 반대 방향으로 박력 있게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웃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면서 탱고 등 커플댄스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유교 전통에 충실했던 조선 사회에는 상륙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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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장교들의 파티를 통해 탱고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차츰 댄스홀도 생겨났다. 남자는 대개 양복 정장이었지만 여성은 한복 차림에 탱고를 추기도 했다.(이용숙 지음 ‘춤에 빠져들다’, 2004, 열대림)

“아무나 배우기 쉬워야 하지만 까다로운 형식을 갖춰야 한다.”예나 지금이나 이런 모순을 수강생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상당수 댄스교사가 몰두하는 과제라고 한다.

댄스 교본만 보고 배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숙달된 파트너나 교사에게 기본 스텝을 배우면 금방 출 수도 있다. 댄스 교사들이 ‘쉬운 것을 복잡하게 포장하는 기술’을 시대변화에 대처하는 생존전략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인의 향기’처럼 탱고가 나오는 영화만 보고 댄스를 배울 수는 없다. 그러나 매혹적인 탱고 춤과 음악의 진수를 일부 맛보면서 상상의 나래는 펼 수 있다.

sahms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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