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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폐지 1년> ③흥신소는 울고 불륜 사이트가 양지로

송고시간2016-02-2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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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불륜은 금기' 가치관 변화…전문가 "제도가 늦게 변화한 것"

모텔 들어가는 남녀

모텔 들어가는 남녀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김은경 이효석 기자 = 한 쌍의 남녀가 밀회를 즐기던 모텔방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화들짝 놀란 이들은 도망가려 하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여성은 황망한 표정이고, 남성은 경찰과 함께 현장을 덮친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불륜 소재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은 이제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 지난해 2월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 행위를 처벌토록 한 형법 제241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후부터다. 대한민국에서 간통은 더이상 죄가 아닌 것이다.

연합뉴스 취재 결과 간통죄 폐지 1년간 '불륜 풍속도'는 크게 변했다. 일선 경찰은 웃고, 흥신소 업자들은 운다. 은밀하게 기혼 남녀를 유혹하던 불륜 사이트는 당당히 양지로 나왔다.

◇ 흥신소 "일감 반 토막" 울상…경찰은 "지저분한 일 없어져" 흡족

서울의 흥신소나 심부름업소는 일감 대부분을 차지하던 불륜 조사 의뢰가 줄어 매출이 거의 반 토막이 났다며 울상이다.

과거 불륜 피해자가 흥신소에 거액을 주고 조사 의뢰를 한 것은 간통죄로 배우자와 불륜 상대를 형사 처벌하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여기에 더해 합의금까지 받을 수 있어서였다. 특히 공무원은 간통 사실이 드러나면 직장을 잃을 수 있어 효과가 컸다. 간통죄와 함께 합의금도 없어져 일주일에 수백만원을 내고 '증거'를 확보할 이유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이혼 소송에는 간통죄 형사 재판과 달리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은 배우자의 불륜을 적발하고자 흥신소로 옮기는 발길이 줄어들게 한 가장 큰 요인이다.

간통을 입증하려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성관계 사실을 증명하는 등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지만, 이혼 소송에서는 불륜 커플이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하거나 모텔에서 나오는 사진만 있어도 귀책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한 흥신소 사장은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업무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이제 '명백한 증거'가 필요 없기에 흥신소 대신 그 돈으로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간다"고 한숨을 쉬었다.

심부름업체 사장도 "5년 전만 해도 잘 나가는 업체 사장은 한 달에 3천만∼5천만원 정도는 우습게 벌었다. 지금은 월평균 500만원 수준"이라며 "어떤 사장은 인터넷 광고비도 못 낼 형편이라더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지저분한 출동'이 없어졌다며 흡족한 표정이다.

간통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어서 업무량이 많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콘돔 등 증거물 확보를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지구대 경찰관은 "예전에는 '모텔 덮쳐달라'는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 안 할 수 없었다"라며 "이제는 다들 지저분한 일 안 해서 좋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 일선서의 한 형사도 "성관계가 증명돼야 유죄였으니 더러운 일 많이 했다"라면서 "이제는 불륜 관련해 경찰이 개입하는 부분은 없다. 가끔 신고가 들어오면 '간통죄 없어졌어요'라고 설명하고 전화를 끊으면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 "바람피우세요"…당당해진 불륜사이트

간통죄가 사라지자 불륜 커플을 이어주는 서비스 업체는 어깨를 폈다.

대표적인 업체가 캐나다에 서버를 둔 '애슐리 매디슨'이다. 이 업체는 간통죄가 살아있던 2014년 3월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해 접속 차단 조치됐지만, 간통죄 폐지 후 차단 해제로 서비스를 재개했다.

이곳에 가입하면 사진이 포함된 프로필을 올린다. 이어 자신이 원하는 이성의 연령대와 검색 반경을 입력해 '짝짓기' 상대를 찾는다.

명성과는 달리 이용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기자가 가입하고서 10명에게 쪽지를 보냈으나 답장을 한 사람은 2명에 불과했다.

먼저 쪽지를 보낸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외국인이었다. 쪽지 내용이 틀에 박힌 것으로 보아 남성 가입자를 붙들어두기 위한 '유령 회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흥정보 인터넷 카페의 한 이용자는 "요즘 애슐리 매디슨은 인기가 없다. 국내 서비스가 훨씬 낫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기혼자닷컴'이 대표적이다. 간통죄 폐지 직후인 지난해 3월 버젓이 사업자등록까지 하고 개업한 사이트다. 회원 프로필을 검색해보니 여성은 1천630여명, 남성은 1만4천100여명이 등록했다.

기자가 가입한 뒤 20여시간 동안 여성 7명이 기자의 상세 프로필을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이들 업체 대다수는 불륜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라 기혼자에게 안전한 소통 공간을 제공할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들 업체 사이트나 앱의 첫 화면은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피우세요', '외로움엔 기혼과 미혼이 따로 없습니다' 등의 문구로 장식돼 있다.

◇ "'결혼'만으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삶 인정해야"

과거 결혼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졌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간통뿐 아니라 이혼도 '죄'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반전됐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와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운영하는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의 2014년 설문조사에서 총 1천명의 미혼 응답자 중 '이유가 있다면 이혼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73.8%나 됐다.

전문가들은 헌재의 간통죄 폐지가 이러한 사회변화를 늦게 받아들인 것으로 평가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원래 가족의 모습은 계속 바뀌어왔는데 제도가 늦게 변한 것"이라며 "간통죄 폐지는 허용과 금기의 대상이 달라진 것이며 제도가 포괄할 수 있는 관용의 대상이 넓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옥남 실장도 "중장년층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으나, 현실은 전통적 가치와 큰 괴리를 보인다"라면서 "(간통죄 폐지는) 급진적으로 바뀌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법에서는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국내 첫 재판이 열린다. 이미 수많은 동성 연인이 사실상 혼인 관계를 유지한다. 결혼은 남녀 간의 결합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도 점차 깨지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은 "모든 삶이 하나의 방식, 하나의 제도로 존재할 수는 없다"며 "현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삶을 실천하려는 모습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때가 왔다"고 말했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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