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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숲에서 쓰레기산, 다시 생태공원으로…난지도 환골탈태 14년

송고시간2016-03-0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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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쓰레기 매립지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대변신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한반도에서 저만큼 예쁜 이름을 가진 섬이 또 있을까요? 저는 '난지도'라고 합니다.

난초와 지초가 풍요로운 섬이라는 뜻이죠. 사자성어 '지란지교' 할 때 그 '난(蘭)'과 '지(芝)' 맞습니다.

아래로는 한강 본류가, 위로는 망원정 부근에서 갈라진 난지 샛강이 흐르는 제 품에서 많은 동식물이 자랐습니다. 겨울이면 고니와 흰뺨검둥오리 등 철새 수만 마리가 몰려왔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갈대 숲이 아름다워 많은 연인의 데이트 코스였습니다. 낭만적인 장면을 연출하려는 영화인들도 저를 찾곤 했죠.

하지만 불과 한 세대 전 꽃과 새의 섬이던 저는 서울에서 가장 더러운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이후 20여년을 악취와 파리떼속에 살다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젠 주민들이 즐겨찾는 생태공원으로 변신했습니다. 제 인생 유전 한번 들어보세요.

◇ 1978년 쓰레기장의 역사 시작돼

1960년대 들어 급격하게 이뤄진 도시화, 산업화로 서울은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습니다. 사람들은 경제 성장의 배설물을 쏟아냈습니다. 1977년까지 방배동, 압구정동, 장안동 등이 쓰레기 매립지로 쓰였습니다.

늘어만 가는 쓰레기 처리에 고심하던 서울시는 저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1978년 3월 18일 갑자기 저는 '폐기물처리시설'로 지정됐습니다.

제 위에 9천200만t에 달하는 폐기물이 쌓여 거대한 '쓰레기 산' 2개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를 찾아 사랑을 속삭이던 시민들은 코를 막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난초와 지초가 사라진 자리에는 먼지와 악취, 파리떼만 남았습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생긴 가스로 불이 나는 몸살도 자주 겪었습니다. 소방차로 끄기 어려워 흙으로 덮어버리려 불도저가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때론 부탄가스통이 폭발해 하늘로 튀어오르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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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산 높이가 해발 100m에 육박할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되자 서울시는 1993년 3월 저에게 모이는 쓰레기를 차단했습니다.

그러나 쓰레기 침출수는 여전히 한강으로 흘러나갔고, 대기 오염과 화재 위험도 그대로였습니다. 생태계는 이미 파괴된 지 오래였죠.

◇ 2002년 한일월드컵 계기로 다시 태어나

2002 한·일 월드컵으로 국민에게 '4강 신화'의 자신감을 심어준 축구는 저에게도 매우 고마운 존재입니다. 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공간으로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게 바로 축구입니다.

1998년 10월 제 몸 한구석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이 시작됐습니다. 이듬해 초 사람들은 면적이 3.4㎢에 달하는 저를 거대한 생태공원으로 새로 단장할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5월 저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앞 부지에는 평화의 공원이, 쓰레기 산이었던 곳에는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 들어섰습니다. 사라진 난지천도 복원돼 난지천공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서울시와 시민의 보살핌 덕분에 생태계도 점차 복원됐습니다. 2000년 438종이었던 동식물은 2013년 1천92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말똥가리와 새홀리기 같은 야생조류가 겨울과 여름을 제 품에서 보냅니다. 맹꽁이도 울음소리도 곳곳에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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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과 휴일엔 시민들이 북적이는 명소가 됐습니다. 10월에는 매일 20만명이 억새축제가 열리는 하늘공원을 찾습니다. 여름 난지연못에서 열리는 수변 음악회에도 수많은 시민이 찾아 아름다운 선율에 눈을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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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이뤄지는 생태 학습 프로그램에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죠.

무엇보다 축구로 다시 태어난 저, 축구로 흥합니다. 한국 축구의 성지로 여겨지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품은 저를 축구팬들이 특히 아낍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세계 7대 라이벌 경기로 인정한 프로축구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슈퍼매치'가 열릴 때면 4만명이 넘는 구름 관중이 몰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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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뿐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도 마련됐습니다.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사이의 마포자원회수시설은 열병합 발전으로 서울 북서부와 경기 고양시에서 나온 쓰레기를 유해물질 배출 없이 전력으로 바꾸는 기특한 녀석입니다.

제 몸 안에 남은 쓰레기에서 나오는 매립가스는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 난방 원료로 쓰입니다.

악취나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팔방미인으로 탈바꿈한 저를 직접 보고 배우러 매년 약 3천여명의 내·외국 관련 공무원들이 방문합니다. 2010년에는 UN 해비타트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모범사례로 인정받았습니다.

겉보기에는 건강해진 것 같지만 완치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아직 몸속 쓰레기를 조금씩 분해시키는 중입니다. 서울시는 2020년이 돼야 제가 완전히 회복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완벽한 생태계 복원에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 모릅니다. 난지도라는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은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갈 때까지 더 많은 사랑 부탁합니다.

<※이 기사는 봄을 앞두고 한때 쓰레기 매립지로 전락했다가 2002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해 서울 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 월드컵공원, 옛 난지도의 역사를 서울시에서 발간한 '난지도 그 향기를 되찾다' 등을 참고해 일인칭 이야기 전개 형식으로 소개한 기사입니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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