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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은밀하게 치밀하게'…오피스텔 성매매 현장

송고시간2016-03-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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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매자 위장 경찰과 '실장' 신원확인 '인증' 신경전 치열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아까 전화하신 분이죠? 방금 지나가는 모습 봤습니다.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세요."

<르포> '은밀하게 치밀하게'…오피스텔 성매매 현장 - 2

한 남성이 한 오피스텔 앞을 배회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남성이 전화를 걸어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맞는지 확인한다.

전화를 받은 남성은 고개를 돌려 오피스텔 앞에 서있는 남자가 자신이 지금 통화하고 있는 사람과 동일인임을 확인한 뒤 오피스텔로 발길을 돌린다.

지난 22일 오후 6시께 창원시 성산구의 한 주상복합 오피스텔 인근은 한산하기만 했다.

평일 퇴근시간대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1층에 길게 늘어선 상가에서조차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이날 창원중부경찰서 생활질서계 소속 경찰관 6명은 오피스텔 성매매 단속에 나섰다.

한 명은 성구매자로 '실장'(성매매 알선책)과 접선하고 나머지는 주변에서 잠복했다.

오피스텔 성매매 과정은 첩보영화를 방불하게 할 만큼 은밀하게 이뤄졌다.

'성매매 시도'는 손쉽게 할 수 있으나 '인증 과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우선 성구매자로 가장한 경찰이 한 유흥업소 소개 사이트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했다.

검색창에서 사이트 이름만 검색해도 찾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경찰은 '창원에 사는 남자라면 대부분 알 만한' 규모의 사이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사이트는 서버를 해외에 두고 있어 단속을 할 수는 없었다.

이후 창원시 오피스텔 성매매 배너를 클릭해 그곳에 안내된 실장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실장은 성구매자가 경찰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이름과 직업 등 기본 신상을 물어본 뒤 명함, 다니는 회사 사원증 등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

경찰이 '인증 과정'을 통과하자 실장은 약속된 시간에 맞춰 오피스텔 1층 현관으로 내려왔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티셔츠, 군청색 재킷을 입은 실장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아까 전화하셨죠?" "네 맞습니다."

짧은 대화가 오간 뒤 실장은 성매매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손님 올라가신다"고 말해주고 경찰에게 방 번호를 알려줬다.

경찰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안내된 방으로 올라가자 잠복하고 있던 다른 경찰들이 튀어나와 그 자리에서 실장을 붙잡았다.

혹시라도 실장이 성매매 여성에게 연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휴대전화는 바로 압수했다.

실장은 경찰이 신분을 밝혀도 놀라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네"라고만 짧게 답한 뒤 경찰 지시를 순순히 따랐다.

성구매자로 가장한 경찰은 성매매가 예정된 14층의 한 방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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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그곳에서 콘돔을 확인하고 성매매 대금 13만원을 건넨 뒤 속칭 '오피녀'라 불리는 성매매 여성을 붙잡았다.

여성에게 성매매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증거물'로 성관계 시 쓰이는 콘돔이나 러브젤이 꼭 필요하다.

성매매가 이뤄지는 방은 7평 남짓한 크기에 화장실, 거실, 침실로 나뉘어 있었다. 초라도 켠 듯 방은 향긋한 냄새로 가득했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던 성매매 여성 A(27)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옷 좀 갈아입자"며 다른 이들의 출입을 한동안 막았다.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는 내내 A씨는 화장대나 침대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냥 여기서 죽어버릴까"라거나 "사진 찍지 마라니까"라며 고함을 질렀다.

경찰이 "성매매 특별법 위반 혐의로 잡힌 것 아시죠. 임의동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고개를 푹 숙인 채 들릴듯 말 듯한 목소리로 "네"라고 힘없이 답했다.

'오빠'라는 사람에게 경찰 단속에 걸렸다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부엌 서랍에는 일회용 젓가락과 숫가락으로 꽉 차 있었다. 화장실 세면대에는 일회용 칫솔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침실 창문에는 밤에 빛이 새는 것을 막고자 은박지를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A씨는 경찰서로 연행되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생계가 막막해져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예전에 백화점 등에서 평범한 일도 해봤으나 벌이가 시원찮아 유흥업소 같은 곳에서 일하다 이쪽으로 넘어오게 됐다"며 "강요받거나 계약서를 쓰는 것 없이 자발적으로 일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고향이 광주라는 그는 "차마 고향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없어서 창원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손님은 하루에 많이 받으면 4명 정도"라며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 손님이 뚝 끊겨 많이 벌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장 B(37)씨는 "몇 년 전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할 일이 없어 이 일을 하게 됐다"며 "보통 인터넷 구인공고를 내 여성을 모집하는데 지금 함께 일하는 여성은 지인에게 소개받았다"고 전했다.

찾아오는 손님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고 치과의사 같은 전문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에 단속한 업소는 영세한 곳으로 앞으로 계속 수사망을 확대해 나가겠다"며 "이렇게 단속을 대대적으로 하면 성매매가 근절되는 게 아니라 더 은밀하게 이뤄져 수사만 어려워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귀뜸했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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