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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다 네탓" '편집증' 친모, 학대 딸 숨지자 기억에서 지워

송고시간2016-03-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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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양 숨진 뒤 평정 찾은 듯…새로 태어난 딸에 대해서만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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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가혹 행위로 네 살배기 친딸을 숨지게 한 한모(36)씨는 '인천 맨발소녀', '평택 원영군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자 '악몽' 같았던 5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크리스마스를 닷새쯤 앞둔 2011년 12월 중순 딸 안모양이 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것에 흥분해 물이 담겨있는 욕조에 딸의 머리를 몇 차례 밀어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갑작스러운 안양의 죽음에 당황, 시신을 며칠간 베란다에 놔두고 처리를 고민하던 한씨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남편 안모(38)씨와 함께 진천 야산에 가 암매장했다.

결혼하기 전 사귀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보육원에서 지내던 안양이 집에 오면서 집안불화가 잦아졌다며 딸을 원망하고, 학대했던 한씨는 '천덕꾸러기' 딸이 숨지자 죄책감보다는 오히려 심리적 평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한씨가 남긴 6권 분량의 노트를 살펴본 경찰의 분석이다.

한씨 메모와 남편 안씨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경찰 수사에 따르면 한씨는 안양 암매장 이후 딸을 기억 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린 듯 했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5년동안은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생활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아동 학대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미취학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딸의 죽음이 자신을 옥죄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문득 자신이 일기처럼 노트에 기록해왔던 메모를 떠올렸다. 2011년 6월부터 써내려간 노트에는 그해 12월 안양이 숨지기 전후의 심정도 기록돼 있었다.

그는 천륜을 저버린 자신의 악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이때 한 메모를 모두 찢어 버렸다.

경찰이 확보한, 한씨가 남긴 메모에는 보육원 등을 전전하던 딸이 4살이 돼서야 같이 살면서 불거진 가족 갈등과 딸에 대한 한씨의 심경이 담겨 있다.

"애가 자꾸 거짓말을 한다"거나 "애만 없었으면…쟤가 내 인생을 망쳤다"며 딸을 원망하는 글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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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둘러싼 갈등으로 자주 다퉜던 남편에 대한 증오의 심정도 써놓았다.

한씨는 그러나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혹독하게 원망했던 안양이 숨져 사라진 뒤에는 점차 안정을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안양이 죽은 이후에는 안양을 언급한 기록은 전혀 없고 새로 태어난 막내딸을 기르며 느끼는 감정에 관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씨가 친딸로 인해 가정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면서 친딸과 남편을 증오한 것으로 보이는데 편집증을 앓는 것처럼 심했던 듯 보인다"며 "친딸이 사망하면서 원망의 대상이 사라지고 안씨와의 사이에서 딸까지 태어나면서 심리적으로 평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친딸이 사망한 뒤 쓴 한씨의 메모에는 안양과 관련된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다. 딸을 숨지게 한 어미로서 가질 법한 속죄의 표현도 없다. 안양의 존재 자체를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했던 것 같다고 경찰은 분석했다.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안양에 대한 한씨의 학대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 정도가 심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이 안양의 병원 진료기록을 조사한 결과, 가혹행위를 당해 숨진 2011년 5월과 12월 두 차례나 타박상 치료를 받은 것이 확인됐다.

계부 안씨도 안양을 그해 두 차례 폭행했다고 자백했다.

한씨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양을 베란다에 쫓아내 벌을 주며 밥을 굶기고 구타하는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다는 진술 역시 확보했다.

한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지난 18일 "하늘에 가서 부모로서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안양과 질기고 모진 인연을 맺었던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b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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