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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명 희생자 사연 세월호 기억의 벽에 '굽이굽이'

송고시간2016-04-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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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의 숲 2주년 앞둔 9일 완공식

(진도=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에 조성된 '세월호 추모의 숲'이 기억의 벽 설치를 마지막으로 완공돼 오는 9일 기념행사가 열린다.

304명 희생자 사연 세월호 기억의 벽에 '굽이굽이' - 2

5일 미리가본 세월호 추모의 숲에는 아직 잎을 틔우지 못한 앙상한 은행나무 301그루 사이로 봄 햇살을 반사하며 빛나는 기억의 벽이 우뚝 서 있었다.

'ㅅ'자 모양 기억의 벽 외부는 굽이굽이 304번 접힌 면이 만들어낸 굵은 선은 진도의 푸른 하늘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304는 세월호 희생자 수를 뜻하는 숫자다.

기억의 벽 안쪽으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라는 제목 아래 304명 희생자의 이름이 빼곡하게 음각으로 새겨졌고 그 오른쪽으로 추모 메시지가 높낮이를 달리해 적혀있었다.

"엄마, 아빠 꿈에 놀러 와서 꼬옥 안기려무나"라고 적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사연.

"우리 다음 생에도 유년시절을 같은 단원고등학교에서 보내자"고 새긴 친구의 그리움.

"선생님 나중에 만나면 꼬옥 안아주세요"라며 세월호 사고로 곁을 떠난 선생님을 기리는 제자의 사랑.

영어·수학을 잘했던 세현이, 신나게 랩을 부르던 영만이, 늦둥이 아들 원석이, 보물 1호 강민이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수십 개의 글귀로 모여 기억의 벽에서 흘러내리듯 위아래로 적혀있었다.

수많은 추모 메시지의 끝은 하나같이 "사랑해", "미안해", "그리워", "고마워"라는 말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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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벽을 둘러싼 301그루의 은행나무는 아직은 앙상한 가지만 바람에 흔들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 2주년이 되는 오는 4월 16일께면 겨울을 난 나뭇가지 틈에서 푸른 잎을 틔울 것이고 가을이 오면 세월호 참사의 상징이 돼버린 노란색의 단풍을 물들일 것이다.

오드리 헵번 아들 션 헵번의 제안을 받아 2억원을 모금해 숲을 조성한 사회적 기업 트리플래닛 측은 세월호 희생자의 숫자에 맞춰 304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으려 했다.

그러나 혹시나 은행나무가 고사해 마치 한 명 한 명의 희생자를 두 번 떠나 보내는 아픔을 가족들에게 안길까 봐 은행나무 숫자에는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의 벽을 제작한 건축가 양수인씨는 한 개인으로서는 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슬픔보다 더 괴로운 무력감을 느끼며 추모의 벽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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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총 길이는 416㎝로 세월호 참사 발생일인 4월 16일 뜻한다.

스테인리스 재질로 제작한 벽의 세 개의 꼭짓점 높이는 476㎝, 325㎝, 151㎝로 각각 세월호의 총 탑승객 수, 단원고 학생 탑승객 수, 일반인 탑승객 수를 상징한다.

304개의 주름과 평면의 경계가 만들어낸 면의 높이는 주름진 면과 평면이 나뉘는 높이인 172㎝, 75㎝, 97㎝는 탑승자, 단원고 학생, 일반인 탑승객 중 생존자 수를 나타낸다.

한눈에 보이는 유난히 낮은 비율의 단원고 학생 생존자 숫자는 벽을 한 바퀴 둘러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양수인 씨는 "추모와 동시에 이 안타까운 사건의 사실을 직시하는 것도 남겨진 자의 몫이다"고 밝혔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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