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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평생 난치성 질환에도…나눔과 봉사 펼치는 이병길씨

송고시간2016-04-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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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장애인복지대상…60평생 혈우병 넘어 사랑 펼쳐

(홍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남은 생이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외롭고 소외된 이웃,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지원군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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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뛰어넘어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것은 물론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장애인이 있다.

주인공은 강원도 홍천에 사는 이병길(60) 씨다.

지체장애 1급과 희귀 난치성 질환인 혈우병 A를 앓는 그는 몸은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마음 곳간에는 사랑과 희망이 가득하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웃이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봉사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게 삶의 목표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 이름도 모르는 병과 싸운 28년

이 씨는 1956년 홍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지체장애와 함께 원인도, 이름도 모르는 병을 앓아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가벼운 상처만 나도 피가 멈출 줄 몰랐다. 강원도에 있는 병원에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한 번 병원에 가면 수혈 링거를 몇 개씩 맞고 퇴원하는 일이 반복됐다.

공부는 어머니 등을 빌려 해야 했다. 매일 아들을 등에 업고 다닌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 병세가 악화했다.

결국, 중학교 3개월이 마지막 학창시절이 됐다. 학업을 향한 집념으로 겨우 한글을 깨우쳤다.

이후 이 씨는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에서만 생활했다.

늘 라디오를 친구 삼고 책을 가까이하며 20∼30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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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가 돼서야 그는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희귀 난치성 질환 '혈우병 A'라는 것을 알았다.

혈우병은 피가 응고되지 않는 질병이다. 1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한다.

양치하다가 잇몸에서 피가 나는 등 일상생활 중 입은 작은 상처도 지혈되지 않는다. 반복적인 출혈로 관절 기능에도 이상이 생긴다.

1960년 초까지 환자 대부분이 30세가 채 되기 전에 뇌출혈 등 합병증으로 숨졌다.

진단을 받은 이 씨는 이후 방황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마음을 하루에도 수십 번 먹었다.

언제 몸 어디에서 핏줄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질병을 떠안고 살아가는 건 괴롭기만 했다.

관절은 계속 굳어가고 병세는 악화해 40세가 못돼 세상과 이별할 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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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변곡점…새로운 삶에 주어진 또 하나의 선물

그랬던 그에게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1995년 6개월간 입원치료에 치료비만 수천만 원이 나왔을 때였다.

이미 부모님은 하늘나라로 떠난 뒤였다. 혈혈단신인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간 원무과에서 그는 깜짝 놀랄 말을 들었다. '34만 원만 내면 됩니다'고 한 것이다.

'무언가 착오가 생긴 건 아닐까?' 재차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알아봤더니 군청 사회복지과에서 그의 딱한 사정을 알고 의료보호 1종을 만들어 치료비를 감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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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감사한 마음에 그는 '앞으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때부터 어려운 이웃을 찾아 손과 발이 됐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과 타 지역에 있는 병원까지 동행하고, 말벗이 됐다.

우편물 심부름도 하고 생활필수품도 사드리며 마을 곳곳에 필요한 소일거리를 떠맡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에게 2000년 또 하나의 선물이 찾아왔다.

한국혈우재단에서 외래진료 간호서비스를 지원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몇 시간씩 걸려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길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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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루가 더 주어진데 감사하며 한푼 두푼 모아 어려운 이웃에 대한 나눔과 배려도 실천하기 시작했다.

비록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지만 차곡차곡 모으고, 아껴 쓰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 있었다.

그는 매년 희망나눔 사랑의 열매 불우이웃 돕기에 성금을 내고 홍천군 무궁화장학회에 장학금을 기탁한다.

특히 신체적, 경제적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고 꿈을 접은 아이들을 도울 때면 마치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 같아 즐겁고 뿌듯하기만 하다.

그렇게 기초생활보장 수급비 70만 원 절반을 기부하고, 남은 35만 원은 또 쪼개 중증 장애인들에게 노트북, 컴퓨터, TV 등을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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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일찍이 시와 수필은 다수 입선과 장원을 했고, 강원도 장애인예술제 글짓기에서 세 차례나 최우수상을 받는 등 글짓기 부문에 두각을 나타냈다.

강원도 장애인기능경기대회 화훼장식 부문 금상을 받았고, 바둑과 장기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도 거뒀다.

지난해 홍천군 자원봉사대학을 수료하기까지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사례를 남기며 홍천군민대상 사회봉사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 씨는 20일 '제36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및 강원도 장애인복지대상'에서 자랑스러운 장애인 상을 받는다.

그는 "내가 가진 것을 떼어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기까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눔을 실천하고 나면 스스로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활짝 웃었다.

오늘도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휠체어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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