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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중형 조선소 근로자들 "내년에도 출근할 수 있을까"

송고시간2016-04-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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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설비 '다운사이징' 중…"일감 올해면 끝…추가 수주 없어 막막"

중형 조선소 근로자 "내년에도 출근할 수 있을까"
중형 조선소 근로자 "내년에도 출근할 수 있을까"

(사천=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 3사에 불어닥친 '수주 절벽'과 그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 강풍이 중형 조선소엔 언제 태풍으로 변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 SPP조선 실내외 작업장이 조선업 불황 영향으로 추가 수주를 못해서인지 한산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창원·통영·사천=연합뉴스) 이정훈 이경욱 지성호 기자 =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 3사에 불어닥친 '수주 절벽'과 그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 강풍이 중형 조선소엔 언제 태풍으로 변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형 조선소들은 대부분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는데도 올들어 단 한 건의 수주 실적도 기록하지 못해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창원 STX조선과 통영 성동조선해양, 사천 SPP조선 등 중형 조선소들은 그래도 외형상으론 여전히 수주 잔량 기준으로 세계 상위권 조선사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수주가 끊기면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맞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통·폐합이나 매각 등 강도 높은 조치가 뒤따를 수도 있다는 게 조선업계 시각이다.

그만큼 중형 조선소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큰집' 보다 더 심각하다.

◇ STX조선해양…수주잔량 세계 4위에서 '몸집 줄이기' 비상

27일 오전 비가 내린 경남 창원시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에는 작업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야드를 안내한 직원은 "비가 내리면 작업도 제대로 안되고 위험하다"며 "도장이나 대블록 조립, 선박구조물 탑재 등을 하는 야외 근무 직원들이 출근했지만 회사가 조기 퇴근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대신 철판을 자르거나 잘린 철판을 조립해 선박블록을 만드는 야드내 공장안은 쇠를 가공하는 기계소리가 가득하고 용접 불꽃이 곳곳에서 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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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조선해양은 올해 신규 수주가 없는 수주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야드 전체에 선박이나 대형 블록들이 들어차 있어 빈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선박 건조가 한창이다.

일단은 이미 수주한 배를 납기내에 차질없이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가 수주가 없으면 당장 내년 하반기부터 야드가 텅텅 빈다.

추락하는 조선업 여파는 조선소 밖에서 확실히 실감할 수 있다.

몇년전만 해도 STX조선해양 근처와 이 회사 직원들이 많이 사는 진해구 용원동 일대 유흥가는 밤만 되면 조선소 직원들끼리 거리에서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STX조선해양 근처 한 횟집 주인은 "주말에나 관광객이 들를 뿐 조선소 작업복 입은 사람들은 발길을 뚝 끊었다"며 "오더라도 매운탕에 밥만 먹은 뒤 금방 가버린다"고 말했다.

STX조선해양 직원은 "조선소 직원들이 단체회식을 자주 했던 주변 횟집이나 음식점 70% 가량이 문을 닫은 것 같더라"고 귀띔했다.

불황을 일찍 겪어 자금난에 처했던 STX조선해양은 2013년 7월부터 채권단 공동관리를 받았다.

채권단은 4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붓는 대신 인력, 설비 등에 대대적인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요구했다.

채권단 공동관리 이전 STX조선해양은 진해조선소 한곳에만 정규직은 3천600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3년새 정규직을 1천500여명이나 줄였다.

올해 임금과 인력, 복지혜택을 추가로 더 축소하는 내용의 자구계획도 만들어 채권단에 제출했다.

야드에 있던 크레인 6기 중 300t짜리 2기는 관련회사인 고성조선해양에 넘겼다.

선박을 만들거나 건조한 선박을 진수할때 쓰는 플로팅독 1기는 원소유주인 STX중공업에 반납했다.

한때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4위까지 올랐던 회사가 조선호황 이전 중형 조선소 규모로 쪼그라든 것이다.

사측은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여 수주시장이 살아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했다.

회사 관계자는 "발주의사가 있는 선박회사에 견적을 넣으면 지금도 가격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며 "국내 조선소가 동남아에서 운영하는 조선소와 비슷한 수준의 원가구조를 만들 때까지 낭비요소를 철저히 줄여보겠다"고 말했다.

◇ 통영 성동조선…"수주 절벽 계속시 회사 생사 기로"

봄비가 내린 27일 오후 경남 통영시 안정공단 내 성동조선해양.

일부 근로자들이 비를 맞아가면서 수주받은 선박 납기일에 맞추려고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근로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작업에 열중했지만 밀려드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성동조선은 다른 대형 조선사들과 마찬가지로 올들어 단 한 척도 신규 수주를 못했다.

도크가 빌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근로자들과 경영진 사이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유가 하락에 따른 전 세계 선박 건조 시장 위축으로 신규 선박을 수주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됐다.

근로자 조모(33·외업팀)씨는 "주변에서 너무 불황이라고 해서 많이 불안하다"며 "아직은 일할 거리가 많지만 계속 수주가 없다 보니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성동조선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2010년부터 채권단의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받았다.

채권단이 성동조선의 추가 지원 요청에 난색을 표명해 회사가 문을 닫을 뻔 했다가 가까스로 추가지원을 받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채권단은 지난해 말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협약을 맺고 성동조선에 2019년까지 4천2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해 자금난을 덜었다.

하지만 신규 수주가 없는 한 '밑빠진 독'에 물 붇기가 될 공산이 크다.

수주 절벽은 곧바로 구조조정, 더 나아가서는 회사가 존폐 기로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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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재 성동조선 근로자는 직영 1천900여명에다 협력사 6천여명 등 모두 7천900여명이다.

호황기 때보다 직영과 협력사 직원 모두 600여명씩 줄었다.

지난해말 자금지원을 받은 이후 아직까지 구조조정은 없다.

자율협약 이후 꾸준히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규 수주가 없으면 잉여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성동조선의 수주 잔량은 50여척 23억달러어치다.

이는 내년 상반기까지 물량이다.

추가 수주가 없다면 내년부터 빈 도크가 잇달아 나오게 된다.

경영협력협약을 맺은 삼성중으로부터 일감을 가져 오지 못한다면 매우 곤란한 지경이 된다.

성동조선은 현재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신규 수주 저조로 경영협력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국이 고강도의 구조조정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들은 언제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닥칠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다.

조 씨는 "우리나라 조선소가 기술과 품질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 1등이라는 자부심이 있어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거라 확신한다"면서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모(41·기본설계팀 과장)씨는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고 나서 말들이 많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의 요구에 선제적이고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총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수주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경영정상화를 위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성동조선 관계자는 "조선경기가 우리나라가 조선업을 시작한 1970년대 이후 가장 최악이라고 할 만큼 좋지 않다"면서 "하지만 전 임직원과 협력사들이 합심해 혼신을 다해 혁신적인 원가절감을 비롯한 경쟁력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 반드시 경영정상화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 사천 SPP조선…인원 절반 감축 "내년이 문제"

"조선업 불황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 속에 희망을 걸고 하루하루 작업에 나선다"

27일 경남 사천시 사남면 사천만 해안도로 옆에 위치한 SPP조선 실내 작업장에서 볼트와 너트 재생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곧 "SPP조선의 수주잔량이 올해 연말까지 14척인데 모두 인도하고나면 일감이 없어지지만…"이라며 말을 흐렸다.

수주잔량이 없다는 것은 할 일이 없고 결국 직장을 잃게된다는 것이란 생각이 든 때문일 것이다.

그는 "SPP조선을 인수하는 새 주인이 세계 각국에서 물량을 많이 수주해 올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날은 비가 온탓인지 바다와 연결되는 도크에서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선박의 블록을 만드는 실내작업장도 이전에 비해 인원이 줄어선지 한산한 분위기다.

실내작업장에서 강재절단작업 중인 협력업체 직원은 "해마다 20여척의 선박을 건조해 인도하는데 올해는 14척에 불과하고 인도하면나면 내년에 만들게 없다"며 한숨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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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건조의 경우 조선소와 계약한 협력업체가 대부분 작업을 맡는다.

만약 수주 잔량이 없으면 협력업체는 필요없게되고 이들 업체 직원은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게되는 것이다.

SPP조선은 파생상품 손실 8천억원 등 총 1조2천억원의 영업외손실로 2010년 5월부터 채권단 관리를 받았다.

임직원 1천300여명이던 본사 관리직 인원을 580여명으로 감축했다.

구조조정과 함께 유휴 자산재산 매각도 추진했다.

한때 3천여명에 달했던 협력업체 직원은 절반 정도로 줄었다.

이같은 SPP조선의 자구노력에도 채권단은 매각을 결정했고 최근 SM(삼라마이더스)그룹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SPP조선은 내달 SM그룹이 본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PP조선 근로자들은 SM그룹이 새 주인이 되면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문제 등이 원만하게 해결되고 내년 물량도 수주할 것이란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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